달도 눈먼 어느 밤이었나
산을 넘어 달아나는 길에 나는
우편함에 납물 가득 채우고
나조차도 영원토록
짐작 못 할 곳에 깊이 매장하며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고 완전하게
세상을 폐廢하고 싶었다.
그러니 오늘 그 빈틈을 후비고
속을 긁어내어가며
기어이 날아드는 이 부고의 고집과
그 주인의 뻔뻔한 이름을
나는 또 용서 못하겠다.
반송처를 비운 채 허락도 없이
내 오랜 안부를 묻는
그 버릇없는 반성문을
손안에 부적처럼 꼭 쥐고
나는 읽고 또 읽고 며칠을 읽고 또 읽어
죽을 때까지 잊지 않으려 외우고 또 외우면서
좆같이 살다가
좆같이 죽었다고 쓰인
그 흐릿한 몇 줄의 비문非文을
나는 영영 잊지 않으려고.
오보라고 할까 봐
세상에! 다시 살아나서
지금 내게 달려오고 있다는 흉문凶聞이
또 한 장 도착할까 봐
아직 기별 없는 남은 부고장의 생사마저
사실 나는 이제 도통 흥미가 없어서
다시 우편함에 젖은 흙을 채워
깊은 물속으로 던져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