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년 같은 칠월 장마의 그치지 않을 더위와 물기가
오니汚泥처럼 변비처럼 창자 가득 찰랑찰랑 괴어 들면
나는 악다구니도 없이 발버둥질 마저 않고
겁 많고 가난한 어린아이처럼
고분고분 문을 걸어 잠그고 수조 같은 사각의 방 안에 꿇어앉아
계절의 살처분을 기다리고만 있다.
꾸벅꾸벅 밀려드는 파도 같은 졸음에
이리저리 멀미하며 탈진한 내 육신은 이제
가소롭도록 얕지만 완전히 가라앉기 위한
고요한 자결을 감행하여
고작 갯강구의 먹이 되고
끝내 시커먼 개흙이 되어
저 탁한 너울 속에 흩어지고 말리라.
2
반 평짜리 생가죽 늘려 만든 내 육신의 주머니는
몇 개 트이지도 않은 크고 작은 구멍들을
스스로 폐廢하여 질식을 기도企圖한다.
그 속에 얼기설기 조립된 뼈들과 가련한 살점 사이로
물과 그리고 물처럼 생긴 것들이
고이고 고이고 고이며 결코 흐르지 않는다.
펄펄 끓어오르는 체액들과 쉰내 나는 배설물과
혈액 같은 눈물이나 담즙 같은 가래침, 고름 같은 정액의 범벅에
꾸르륵 가라앉아 익사체가 될 준비를 마친 사이
보라, 기어이 계절의 계획대로 되어 가는 것을
뻐끔거리는 입술 틈으로 중년의 구취가 피어오르고
괴사하는 살덩어리의 구린내가 세포 틈마다 농축되는 사이
자꾸만 픽픽 실신해 바닥에 눌어붙는
물먹은 내 몸뚱이를
아내는 냉큼 건져다 성수동聖水洞 깊은 수심 속에
첨벙
던져 넣는다.
3
성수동은 잘 있더군요.
터줏대감 같던 카페와 옷 가게 몇 개가 인사도 없이 뜯겨나갔고
띄엄띄엄 공업사 간판이 걸려있던 건물들은
또 무슨 꿍꿍이속인지 장막을 뒤집어쓰고 숨었고
사람들의 걸음을 멈춰 세우는 커다란 그림들이 새롭게 그려졌고
길고 길었던 아스팔트 포장 공사도 드디어 끝을 맺으면서
어딘가에서 나는 초행길의 미시감未視感에 현기증이 나지만,
영원히 허물을 벗는 비련의 수생동물처럼
성수동은 말라죽지 않고 잘 살고 있더군요.
나는 주말 오후 내 그곳을 둥둥 떠다니며
맑은 세수를 하고 입안을 상쾌히 헹구고
딱지를 긁어내고 진물을 닦아내었습니다.
축축이 젖은 발을 뭍으로 꺼내어 집으로 향하는 그 길에
성수동이 길게 또 짧게 다시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거나
버얼건 물비늘을 껌뻑껌뻑 내 발 앞에 비추어
비밀스러운 모스 부호로 안부를 전해옵니다.
나는 괜찮다고.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그러니 이 길 위의 그대들은 어떠하시냐고.
몇 번이고 집으로 돌아서는 길을 막아서며
기별을 묻고 또 물어옵니다.
그대들 모두가 이 길 위에서 축성祝聖 받아 고아 아니면 호로새끼로 태어났다고
탯줄에 목을 감아 말라 죽거나
향수병鄕愁病에 머리 처박고 익사해 죽거나
싫증도 병이라면 병인가 먹고 싸고 자는 일에 이골이 나면
그곳 노상路上에 엎어져 서울시민들의 밑창에 납작이 밟혀 죽을 거라고
그러면 그 말라붙은 가죽을 벗겨다 백일 밤낮을 무두질 두드려 온순하게 핏기가 빠지고 나면
당신네들 관棺에 신고 들어갈 구두 한 켤레씩 만들어 주겠다고
이 연무장길 위에 우두커니 태어난 그대들은
제 생명이랑 이기지도 못할 전쟁 치를 채비에 바빠서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처럼 죽을 새끼는 여기 한 놈도 없다고
그러니까 여기 성수동의 물길 따라 구르고 굴러
마침내는 닳아 없어지는 작은 조약돌처럼 살다가도 괜찮다고
찰랑찰랑 발목을 간질이며 위로를 해옵니다.
4
나는 허리를 굽혀 그 성스러운 멸균의 물방울을 이마에 찍어 바르고
내 몸에 깃든 악마 같은 슬픔들을 구마驅魔하였습니다.
몸 가죽이 아예 뒤집어지도록 토하고 또 토하고
입 밖으로 똥구멍이 쏟아져 나와 오열하고
비탄의 방언들이 거리에 성가처럼 울려 퍼지고
오장육부 찌든 오욕을 씻어낸 물로
성수동의 골목과 골목이 모조리 홍수에 잠길 때까지
내 속을 박박 씻고 씻고 또 맑게 헹구어
다시 그만큼의 술을 촉촉이 채워 넣었습니다.
술은 무색무취하였고
따라서 나의 육신은 다시금 순결해졌습니다.
맑게 갠 두 눈을 들어 왔던 길을 돌아보니
어제 왔던 사람은 오늘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오늘 나와 어깨를 스친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만
그래서 나는 그 길 위에서 조금도 외롭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