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빗속으로 침수된다.
물이 물을 목졸라 죽인다.
마른 육신 눕힐 여기 흙바닥에서부터
두 발로 밟고 올랐던 삭막한 산꼭대기 끝까지
와르릉 해일 같이 피고름 들이치고
아버지는 순식간에 휩쓸려
외이도를 표류하고 나비굴에 조난한다.
힘 잃은 담배 연기 빠져나갈 틈도 없이
비바람이 광란하는 새시 유리창을 활짝 열고
아버지의 젖은 등이 뒤돌아 서 있다.
방주에 탑승 못한 늙고 홀로된 두발짐승의 발목에
뭉툭한 묵음의 닻줄이 휘어 감긴다.
물속으로 물이 잠긴다.
해구의 바닥은 축축한 난청 지역.
아버지는 나의 호출에 더는 응답하지 않는다.
눈과 눈 뒤로 귀와 귀 사이로
이제 운하처럼 툭! 물길이 터진다.
좌뇌와 우뇌가 침수되어 눌어붙는다.
물먹은 뇌하수체 부풀어 노른자처럼 터지고
전두엽이 뒤인지 후두엽이 옆인지
머릿속은 이제 길치 천치가 되어
나는 내 안에서 공명하며 길을 잃는다.
한쪽 눈의 수정체가 반대편으로 출렁 흘러넘친다.
시간의 난시, 어제와 오늘이 가물거린다.
내가 나인지 나의 아들인지 기억이 실명하고
너를 미워했는지 아니면 죽도록 사랑했는지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비 내리는 날의 노래를 빌려다오.
불협하던 내 처량한 악보들은
이제 모두 가라앉아
내겐 남은 노래 더 없는데
비는 이제 두 번 다시
그치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다 한다.
빗소리가 빗소리를 가린다.
땅의 이름이 지워진다.
바다가 바닷속으로 잠긴다.
지도의 명분이 씻겨 나가고
집 잃은 뭍짐승들이 허공에서 질식사한다.
수해 입은 해초들이 해저에서 고사하면
목마른 고래마저 아사하여 멸종한다.
해령 위로 고대의 돌을 밀어 올리던
지친 시시포스의 간과 폐가 두 동강 나고
배 속으로 출렁출렁 물이 스며들다
끝내 배고픔에 수몰되어
지구의 중심으로 추락한다.
안식의 바닥에
쿵
마른 등뼈를 댄다.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썩고 썩는 일만을 남겨둔다.
크고 작은 물벌레들이 갈가리 찢어 삼켜
먼지 만한 똥덩이 뱉어 뿌리고
이제 서로 몸을 마저 갉아 증거인멸하며
썩은 흙이거나 태초의 진귀한 원소로 되돌린다.
기쁘다.
물의 행성이여.
모조리 잠기었다.
나와 나의 아버지의 그리고 너의
코에서 입에서 눈에서 오장육부에서 쏟아져 나오던
피떡 머금고 눌어붙었던
더러운 휴지조각들도 이제야 모조리 떠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