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고도 완전한 표절을 위하여

by 후안

우리는 표절하리라.

영원토록 너와 나는,

뼛속까지 벗기고 영혼까지 베낄 것을

이에 선언하노라.


잘라도 잘라도 줄어들지 않는

여기 순백의 파피루스 위로

먹이든 붓이든 들고 나와 모여라.


우리 세상 모든 말들을 꺼내어

대문자 소문자 존댓말 반말 예언 방언 전설 욕설

옥신각신 내 것 네 것 가리지도

출처를 캐묻지도 배후를 의심도 하지 말고

인후에서 손끝에서 과로의 핏방울 튀어

글자판에 필기구에 흠뻑 적실 때까지

쉼 없이 모사하고 필사하여

언어를 세습할 것이다.


무한히 작문되고 독해되는

이중나선의 두루마리에

원초의 언어로 벌거벗고 드러누워

우리는 겁없이 번식하며

활자를 찍어 나갈 것이다.


문자가 음성과 몸을 스치고

복문이 단문을 벗기고

합자가 파자로 다리 벌릴 때

호모 로쿠엔스에게 훔친 유전자를

서둘러 식자하고

교열도 조판도 필요 없이

힘껏 압인할 것이다.


오자 탈자 비문 쌍소리 가리지 않고 달려나와

모음들이 몸을 오므려 밴대질 치거나

자음들이 획을 뻗어 비역질 붙거나

차라리 저들 간에 흘레붙어 배 불러오고

짝 잃은 동의어끼리 눈 맞아 상피 붙거나 말거나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우렁차게 난교하며

글씨 뿌려 새끼 치리라.


그리하여 시간의 멀고 먼 어느 날에

네 필체와 내 문체와

창조주의 서명이 똑같아진 어느 날에


원본도 사본도 창작도 도작도

모조리 사라지고

우주에 딱 하나

완벽한 문장 한 줄 쓰여진다면


우리 함께 그곳에 닿아

마침내 펜이 멈추면

더 이상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고

영영 언어를 다물자.


콧바람으로도 노래하지 말며

살랑 몸짓으로도 서로 말 걸지 말자.


침묵의 시공

천체의 불언

문맹 되신 하느님

그곳에서 말의 중력은

다시 말끔히 태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