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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Aug 03. 2018

슬픔의 홍수 뒤에 무지개 같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

No.2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세월호 유가족 치유 공간 <이웃>에 대해 시인 진은영이 묻고 정신의학자 정혜신이 답하는 문답집이다. 책은 사건 이후 2015년까지 거리의 의사 정혜신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주로 어떤 치유의 방식을 사용했는지 말하고 있다. 저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종류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가 떠난 시점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엄마들, 가정이 무너질까 울지도 못하고 되려 일에 맹렬히 집중하는 아빠들, 그걸 조마조마 바라보며 자신의 슬픔을 꺼내기 힘들어 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정혜신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울게 한다. 펑펑울게 한다. 그리고 함께 운다.


책을 읽어보면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의 다양한 측면들을 보게 된다. 그 중 하나는 죄의식이다. 세월호 사건이 나고 대책위 사무실에 TV가 한 대 설치 되었다고 한다. 주로 사건과 관련된 뉴스 채널에 맞춰져 있던 TV가 시간이 지나며 어느새 드라마로, 스포츠채널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류현진이 등판하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며 몇몇 아빠들이 박수를 치며 응원을 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아이를 그렇게 보내고 TV 보며 어떻게 이러고 있을 수 있나. 나 애 아빠 맞나' 하며 순간적으로 참을수 없는 자기혐오에 휩싸였던 일도 있다고 한다. 그 아빠를 힘들게 한건 아이의 부재 뿐만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죄의식도 있었다. 또 대책위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어떤 엄마는 유가족 중에 시위에 잘 안나오는 엄마를 보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자기 자식이 죽었는데 어떻게든 힘을 내서 집회에 나와 싸워야지' 하며 미워했는데 하루는 그 열성적인 엄마가 몸이 안좋아 집에서 쉬는데 그렇게 그 잘 안나오는 엄마의 사정이 이해가 갔다고. 자식을 잃은 슬픔을 대처하는 각자의 방식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은 단면적이고 단순하지 않다. 자식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는 열심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돌보는 일들 속에서 계속해서 지치고 견디기 힘들어진다.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 거리의 의사 정혜신이 직접 나섰다. 2008년 개인병원을 운영하던 정혜신은 어느날 한 활동가의 요청을 받고 고문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상담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활동을 시작으로 2011년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가족을 위한 심리 치료 공간 <와락>으로 이어졌고 2015년부터 안산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이웃>을 시작했다. 그녀는 '상담치료'라는 유가족들이 쉽게 마음 열기 어려운 단어를 배재하고 '함께모여 이야기 나누는 마을회관' 컨셉으로 <이웃>을 시작했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이웃>에 와서 같이 집밥을 먹고 뜨개질을 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울고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떠나간 아이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조금씩 이별하고 또 진상규명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한다. 그리고 <이웃>은 또 베이스 캠프처럼 진상규명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지치지 않고 흘러가도록 유가족들과 활동가들이 재충전을 하는 공간이 되었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표면적으로는 정신의학자 정혜신을 통해 세월호 가족들의 슬픔과 치유를 말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한국사회 전체의 슬픔과 치유를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슬픔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에 능숙하지 못하다. 외면, 회피, 다른일에 집중, 망각 등의 잘못된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무시하곤 한다. 그 무시의 반복은 결국 타인공감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타인의 슬픔을 무시하거나 비난하거나 최악은 어설픈 위로로 그 사람을 더 아프게 한다. 정혜신은 세월호 사건으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걸 실시간 생중계로 보며 우리나라 전국민이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 트라우마에 빠졌다면 이웃 외국인들이 와서 우릴 위로해줘야 할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함께 서로를 위로해야 한다. 이웃과 같이 집밥을 먹고, 뜨개질을 하며, 같이 류현진을 응원하면서...왜냐하면 천사들은 다 우리 옆집에 사니까. 이 책의 또 다른 작가 시인 진은영의 시로 리뷰를 마친다.


그 날 이후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핸드폰 충전 안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커플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 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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