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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Jul 30. 2018

장강명, 또는 내가 그 작가를 시기하는 방식

No.1 <댓글부대>

나는 장강명이 별로 였다. 그가 쓴 책 한 줄도 읽지 않았지만. 명문대를 나와서 메이저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때려치고 소설가가 된 그 부분이 히 별로였다. 나도 명문대를 가고 싶었고, 기자도 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때려치고 소설가도 되고 싶었다. 그가 다해서. 웬지 내가 가진 모든 컴플렉스의 총합 반대편에 그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으로 내가 그보다 조금 더 잘 생겨서 극단적 살인충동은 면할 수 있었지만 찌질하고도 경박하게 그냥 '나는 부러워서' 그의 소설이라면 한 줄도 읽고 싶지 않았다. 한번은 우연히 그가 어느 매체와 한 인터뷰 같은걸 보았다. 그 기사는 '대한민국에서 소설 쓰는 일'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지면이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래가 정확한 워딩은 아니고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음. 원문 찾기는 실패)


제가 작가가 되기 전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떤 소설을 읽는지 궁금했어요. 여러가지 고민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명한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일단 유명해지기로 결심했죠.

그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그의 책은 웬만하면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너무 정확해서. 다 죽어가는 이 판을 너무 정확히 읽어내는거 같아 '저런 인간은 멀리해야지' 싶었다. 내 기준에 너무 잘난 사람이 한국문학계의 현실까지 정확히 짚어내는게 부러움을 넘어서 얄미울 정도였다. 나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던것 같다. "오냐 네 말이 다 맞다. 그렇다면 나라도 널 유명하게 만드는데 한 몫하지 않을테다!" 질투는 언제나 그렇듯 나의 '병' 이었으나 늘 그렇듯 나 하나 동참하지 않는다고 유명해질 사람이 안 유명해지거나, 성공할 사람이 성공 못하는건 아니더라. 장강명은 <열광금지, 에바로드>, <한국이 싫어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등 내는 소설마다 빵빵 터트리더니 최근에는 한국 문학계의 당선 시스템을 비판하는 르포 <당선, 학급, 계급>을 냈더라. 그냥 하는 일마다 다 잘되는 사람들. 한국문학계의 지코나 백종원 같았다. 열등감을 하나 더 보탠다.


그렇게 시기하고 부러워 했음에도 나는 왜 <댓글부대>를 펼쳤을까. 깔 때 까더라도 몇 줄은 읽고 까자는 마음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지난 주 토요일에 시작한 이 소설을 오늘 월요일에 다 읽었다. 책이 그렇게 두껍지 않기도 하지만 읽기 전에 예상했던 것처럼 글이 술술 읽힌다. 2012년 발생한 국정원 댓글 사건을 모티브로 거대권력에 의해 기획된 댓글부대를 통해 한국 인터넷 문화의 모순적인 양태를 다뤘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댓글부대의 표적이 되는 몇 개의 커뮤니티는 각각 현재 인터넷 댓글문화의 몇가지 상징적인 면을 말한다. 예를 들어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성적이고 정의로운 커뮤니티 안에 내재되어 있는 허영과 자기모순들이나 가짜뉴스에 휘둘려 정확한 팩트는 외면한 채 광적인 집단으로 변모해 종국에는 내집단 안의 희생자를 찾음으로써 개인의 책임을 모면하는 비겁한 네티즌들을 작가는 '고발'한다. 그리고 그 고발주체의 동기가 어떤 정의로움이나 사회책임 따위가 아닌 그저 '개인의 안락'으로 설정하는데 나는 그 부분이 일종의 허무주의처럼 느껴졌다. "대한민국 넷상에는 선인도 악인도 없다. 그저 돈 버는 병신과 이용되는 멍청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읽고 보니 역시 내가 시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은 작가였다.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현재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슈, 병폐에 대해 정확히 짚는 감이 있달까. 인터넷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혹할 만한 이야기를 되게 생동감있게 그렸고 그 안의 위트와 해학도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현실을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의 최종목표인가 싶어 아쉬움도 남는다. 마지막에 급하게 끝난 느낌이 들기도.그 좋은 소재를 다뤘지만 주제의식이나 구성이 '생각보다 약하네?' 라는 생각을 들게 해 나로서는 마음이 놓인다. '그래! 생각보다 대단한 녀석은 아니었어!' 하고 나는 자위했다. (찌질하다) 아무래도 내 취향은 서사가 조금 묵직하면서도 '말의 맛'을 잘 살리는 그런 쪽의 소설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천명관의 <고래>나 천명관의 <고래> 같은. 장강명은 매우 잘 쓰면서도 또 아쉬운 작가다. <댓글부대>가 그의 최고작이 아니여서 그런걸까? 그런데 또 저렇게 성실한 인간이라면 이미 다음 작품에서 아쉬움들을 한 단계 뛰어 넘었겠지.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걱정이 연예인이랑 장강명 걱정 같다. 에라 모르겠다. 아마 근자에 장강명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줄 것 같다. <한국이 싫어서>가 좋을까 <그뭄>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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