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앓느니 쓰지 Aug 10. 2018

EP5. 포르투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벤치에 나란히 앉은 노부부와 이제 막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포르투는 사랑스러움으로 넘쳐나는 도시다. 두로강이 대서양을 향해 흐르고 강 옆으로 깎아지르는 비탈을 따라 와이너리와 식당들과 가정집들이 옹기종기 곳곳에 모여 있다. 우리가 포르투를 여행하던 시기는 12월 초였는데 제법 추운 날씨에 거리의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빨리빨리 걸었지만 되려 식당, 카페, 와인바에서는 그 특유의 아름다운 포르투칼어가 노랫소리처럼 흘러나왔다. 우리나라로치면 ㅇ 받침이 유난히 많은 포르투칼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중에 하나라고 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은 대개는 무섭게 들리지만 포르투칼어는 늘 상냥하고 활기차게 말이 탁구공처럼 통통 튄다. 낭창낭창하게. 니냐니뇨하게. 맑고 깨끗하고 자신있게






특별히 맛있는걸 먹지 않아도, 대단한 유적지에 가지 않아도 해질녘 즈음 두로강변에 나가 지는 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포르투 여행은 충만하다. 쌀쌀한 강바람에도 제법 많은 젊은이들이 잔디에 앉거나 더러는 누워서 강으로 떨어지는 빠알간 해를 한참을 바라본다. 강물을 향해 해가 점점 기울어질수록 노랗던 해가 점점 붉게 물들고 연인들의 거리도 가까워 진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한참을 제잘거리다가 해가 다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더러는 파두를 들으러, 더러는 달지만 쌉싸름한 포르투 와인을 마시러 간다. 도시에 야경의 빛이 조금씩 스며든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밤이 시작된다.






그 아름다운 도시 포르투에서 우리가 가장 사랑한건 강변의 노을도 번화가의 야경도 아니었다. 도심에서 트램으로 30분 정도 가면 나오는 마토지뉴스 해변과 그 옆에 있던 포르투 시민공원이었다. 다른 유명한 해변들과 달리 마토지뉴스 해변 앞 전망좋은 자리에는 호텔이나 리조트가 없었다. 대신 투박한 아파트 몇 채 덩그라니 군데군데 있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해변의 주인이 관광객이 아니고 오롯이 동네 사람들의 것이라는 사실에. 모래사장 여기저기 요가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반려견 산책시키다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이웃들. 역시나 아름다운 포르투갈 말이 파도소리와 적절히 묘한 하모니를 낸다. 우리도 그 해변에 스카프를 깔고 잠깐 눕는다. 세상 평화롭고 권태로운 한가함. 가끔 그 날의 그 느낌을 찾아보려 애쓰지만 늘 실패한다. 아마 그 날은 실제가 아니었을지도.






그리고 우리가 가장 애정하는 포르투 시민 공원. '나만 알고 싶은' 이라는 수식어가 결국 세상 사람 다 알게 하는 역설적 해학이 되는걸 알고 있음에도 여기는 정말 나랑 내 아내 둘만 알았음 좋겠다. 어차피 이 브런치가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으니 '나만 알고 싶은' 하고 맘에 없는 수사도 괜찮지 않을까. 나랑 아내랑 이 브런치에 모여드는 몇몇 구독자들만 알고 싶은 인생공원. 이 공원은 어떻게 보면 되게 심심하게 넓은 잔듸밭이 군데군데 있고 얕은 둔덕들이 모여 웅덩이 모양이 투박하게 계속되는 공원이다. 그 얕은 둔덕에는 이름은 잘 모르겠는 가시나무 숲들이 있어 해질무렵 가시나무 가지들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아름답다. 벤치가 많지 않아 사람 구경하기 쉽지 않은 심심한 공원 저 멀리 노부부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얘기나누는 그런 되게 비현실적인 공간. 바로 옆에 마토지뉴스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하나도 강하지 않아 간지럽다. 언덕을 뛰어내려 오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들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포르투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두로강의 노을을.

황량하고 평화로운 번화가의 야경을.

나란히 앉은 노부부와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포르투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앓느니 쓰지 인스타 : @changyeonlim



매거진의 이전글 EP4.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거슬러 오르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