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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Jul 27. 2018

EP4.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거슬러 오르는

우리 여행에서 가장 더웠던 나라 이야기(2)

이집트 남부여행에서 가장 이색적인 경험은 나일강크루즈였다. 어디가서 "나 크루즈 타봤어!" 라고 자랑할 수는 있지만 상대방이 "와! 크루즈? 대박이다~어땠어? 막 타이타닉 같고 그래?" 라고 물으면 "그..그게..." 하고 답하게 되는. 지구에서 제일 싸다. 1박에 30달러. 그래도 크루즈는 크루즈.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거든.


Welcome to the Nile Cruise


세계 4대문명이라고 불리는 나일강을 크루즈로 유람할 수 있습니다. 단 아직 크루즈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하신 분들께 권해드려요. 밤마다 열리는 선상파티는....그냥 영화일 뿐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부페식으로 밥이 나오긴 나옵니다. 맛도 나쁘진 않은데 중간중간 야채가 쫌 말라 있고, 늦게 내려가면 음식이 없는 경우도 종종 있고, 젤 중요한건 이 배에 중국사람들이 한 90% 정도? 아주 약간 소란스럽습니다. 밥은 나름 먹을만 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꼭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루프탑에 수영장도 있어요. 와우! 나일강에서 수영하며 즐기는 크루즈라니! 그 막 영화에 나오는 비키니 입은 서양 언니들이 선배드에 누워 태닝하는... 생각보다 환상적이잖아! 수심이 무려 60센치나!? 자 이제 다 같이 풀에 엎드려 보아요! 어푸 어푸 두발짝 만에 벽에 도착. 분위기가 굉장히 young하군. 어머 5세 이상은 나뿐인가?

#나일강 #썬배드 #성공적


행가기 전에 나일강 크루즈를 제법 기대했다. '내 인생에 크루즈를 탄다니! 그것도 나일강에서!!' 하는 기대감으로 지인들에게 자랑하며 말했다~"너 그거 알아? 나일강에서 크루즈를 탈 수 있대~내가 그거 타러 가는거잖아~" 그러나 역시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계여행자 필수덕목인 도둑놈심보로 '어딘가에 있을거야 싸면서도 만족스런 시설. 훗! 나는 여행 고수라규!' 하는 마음. 그러나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진리는 싼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명언이다. 나름 기대했는데 살짝 실망하고 내 도둑놈심보를 반성하다가 오후 다섯시쯤 크루즈 옥상에 올라간다.

석양은 언제나 옳다


하루 한번 있는 티타임. 루프탑 바에서 커피와 쿠키를 받아 소파에 기대 앉는다. 떨어지는 해에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저 멀리 지나쳐가는 모래언덕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고대 이집트는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산자들의 도시, 서쪽은 죽은자들의 도시로 불렀다는데 내가 보고 있는 저 풍경은 죽은 자들의 것일까 산 자들의 것일까. 문득 내가 지금 산자와 죽은자들의 경계를 크루즈로 달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구나 생각한다. 꽤나 우아한걸? 중간중간 저 멀리 마을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약간은 노래 같고 또 주문 같은 아랍어의 향연. 어디서 오는 소리일까? 죽은자들의 마을이거나 산자들의 마을에서 오는 소리겠지. 기도는 죽은자들을 위한것인지. 산 자들을 위한것인지. 뱃머리에 남자 셋이 자리를 깔고 무릎을 꿇는다. 머리를 바닥에 댔다가, 일어나기를 반복. 기도를 끝낸 노인이 두 다리를 펴고 앉아 나일강을 한참 바라본다. 그는 무어라 기도했을까, 무엇을 보고 있을까. 이 배의 안전? 가족의 평안? 신에 대한 사랑? 나도 한참을 난간에 매달려 노인을 훔쳐본다.

살람 알라이쿰


푸석푸석한 나일강의 바람. 그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소파에 기대 누워 차양막 너머의 하늘을 본다. 차양막을 뚫고 들어오는 뜨겁다 못해 따가운 아프리카의 햇빛. 설명할 수 없는 무슬림 국가 특유의 냄새같은 것도 나는 느낌. 웅성웅성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저 멀리 마을에서 온 이집트인들이 작은 모터보트로 크루즈를 좇아와 직접 염색한 스카프, 옷, 기념품 따위를 강 수면에서 4층 옥상으로 아슬아슬하게 던진다. 중국인들이 그 모습이 재밌는지 사진을 찍고 지갑을 연다. 그 먼 거리에서, 달리는 배들 사이에서 물건과 돈을 던지고 받는 모습이 한 편의 서커스같고 또 짧은 필름 같다. 중국인들이 우리보다 낫구나 시끄럽지만, 이집트인들을 보고 히히덕 거리지만, 쓸 때는 또 확실히 쓰니깐...

그들이 파는 것보다 파는 행위 자체에 더 흥미가 가는


해는 지고 중국인들과 또 한바탕 시끄럽게 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눕는다. 나일강 크루즈라니. 나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경계를 유유히 거슬러 올라간다. 꽤나 시끌벅적하고, 푸석푸석하고, 평화로운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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