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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Jul 19. 2018

EP3. 오늘은 무려
화씨 93.2도 라구욧!

우리 여행에서 가장 더웠던 나라 이야기 (1)

세계일주를 끝내고 돌아와서 지인들을 꽤 만나고 있다. 한번은 혜화에서 1시에 점심약속을 잡고 4시에 또 다른 지인을 만났다가 저녁에 서울역으로 넘어가서 또 다른 사람과 저녁을 먹은 날이 있었다. 하루 3탕의 세계일주 썰 풀기. 쫌 친하다 싶고 또 상대방이 나보다 어리면 '아 맨날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얘기 지겹다~' 하고 거들먹 거리면서 시작하는데(전형적인 대한민국 꼰대 아저씨 st) 어느샌가 사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죽기 전에 아이슬란드랑 우유니는 꼭 가야돼!'(침을 퉤퉤 튀긴다) '아~ 이 날 정말 더워서 죽을뻔했지'(괜히 눈을 감는다) '스쿠버 다이빙!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 너 아직 늙지 늦지 않았다구!!!'(열변을 토한다) 하고 뽐뿌 넣는 부부사기단이 되어버린다. 원래 아내는 누구랑 대화할 때 막 끼어들거나 혼자 신나서 말을 쉬지 않고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요새 새로 알게된 아내는 세계일주 썰 풀 때 내가 뭘 좀 설명하려고 하면 여지없이 '아니 그게 아니고~' '그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면' 하고 껴드는 걸 보고 적잖이 놀라고 있다. 아니 우리 마누라가 이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신녀성이었나. 놀라우면서 가끔 무섭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가 푸는 썰에 우리가 뽐뿌오면서도 그럼에도 우리의 썰을 기다리는 이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에 오늘도 없는 살림에 성실하게 약속을 잡는다. 우리의 기억력이 아직 괜찮습니다. 혹시 몰라서 밤에 자기 전에 우리 여행 했던 순간들을 녹음하고 있는건 안 비밀.

그래 너! 아직 늙지 않았어!


화씨 93.2도(화씨로 써야 좀 있어 보이니까)라니. 이렇게 더운 날 방구석에 쳐박혀서 자기소개서나 쓰다가 아 오늘은 '여행 중 제일 더웠던 나라'에 대해서 써봐야겠다. 돌이켜보니 제일 더웠던 나라 후보에 러시아가 들어간다는건 꽤 의외다. 정확히는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 사람들이 쉽게 갖는 선입견 중 하나가 러시아는 1년 내내 추울거라는 것인데 러시아도 1년 중 더운 날들이 있다. 특히 우리가 갔던 6월의 러시아는 아직 여름이 다 오기도 전이니 횡단열차에서 에어컨은 사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컨디션은  복불복인데 운수가 좋으면 최신 기차를 탈 수도 있고 재수없으면 2차대전 때 만든 기차를 타기도 한다. 아마 우리가 탄 기차는 2차대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번 세기에 만든 열차는 아니었던게 확실하다. 더운데 에어컨이 없어서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만 의지했는데 은근히 횡단열차가 바람 좀 쒤만하면 멈추기를 반복해서 세계일주 시작하자마자 죽을 뻔 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우리 첫번째 나라였기에 아내는 돈을 최대한 아끼려고 했다. 에어컨은 없고 저 멀리 러시아 군인 오빠들의 암내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그 날 제발 콜라하나만 사달라는 유언에 가까운 내 요청을 매정하게 거절하던 아내. 그건 거의 이혼사유 급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 때 내 아내 매몰차기가 놀부 부인 못지 않았지....' 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전하고 전하는 전설이 되었다.


문제의 그 콜라 아니 환타 아니 짝퉁 환타. 얼마나 더웠으면 멀쩡한 사진에 음료수병이 막 흔들린다. (feat.귀여운 애기 발꼬락)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후보일 뿐 제일 더운 나라는 아니었다. 러시아 외에도 그리스, 쿠바, 멕시코가 후보에 있었으나 결국 이집트를 가장 더운 나라로 꼽았다. 다합 첫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침 7시쯤 공항에서 다합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서 보았던 길. 퍽퍽한 모래 바람, 모래언덕들 사이로 난 2차선 도로, 어쩌다 한 번씩 보이는 낡은 트럭 택시들. 아주 작은 점 하나의 구름도 없는 깨끗한 하늘 위에 가끔 독수리가 아닐까 하는 새 한 마리가 유유히 날았다. 나중에 들었는데 다합은 1년에 한 번 비가 내리는 도시였다. 1년에 한번만 비가 와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 군데군데 서 있는 검문소에 무장한 군인들을 보며 흠칫흠칫 놀랐었다. 저들이 들고 있는 소총에는 과연 실탄이 들었을까? 혹시라도 말이 통하지 않아 총기사고가 나는건 아닐까. 그 때 아내 아이폰으로 외교통상부에서 문자가 왔던 것 같다. '이집트 시나이반도 여행 위험 지역' 그렇게 위험하다는 시나이반도에 있는 작은 도시 다합은 여행자들 사이에 '블랙홀'이라고 불린다. 한 번 들어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힘든 곳. 세계여행에 대해 신나게 떠들 때마다 빼 먹는 법이 없는 다합. 블루마블의 무인도 같은 곳이다. 주사위를 던져 쌍쌍이 나와야만 탈출할 수 있는 그런 곳. "그 홍해 바다 알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건넜다는 그 바다. 거기가 다합이야. 바다 건너 바로 사우디아라비아가 보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싸게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이야!" 한 5미터만 나가면 갑자기 수심 100미터가 되버리는 블루홀이 있는 곳, 다이빙이 끝나고 아주 운이 좋으면 먹을 수 있는 'Yes I'm famous 코샤리' 그리고 참치와 고추가루를 섞어 먹었던 오르카(다이빙 샵)의 특제 컵라면.


너무나 더웠고...너무나 시원했던 다합, 홍해
마! 이기 다합의 백종원이다! 

다합에 대해서만 써도 글 하나가 나오겠다. 그 글감은 아껴 두었다가 오늘처럼 더운 날이 또 오면 살아있는 닭을 잡았던 정육점과 비둘기 고기를 먹었던 날들에 대해서 또 써야지. 우리의 이집트 여행은 다합-카이로-아스완-룩소르-후루가다-카이로 순이었다. 카이로에서는 인생 양고기를 먹었고 남들 다 가는 피라미드에서 흔한 인증샷들을 찍는 평범한 여행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호스텔에서 만났던 한 한국인 여행자였다. 우리가 머문 곳은 이집트니까 당연히 가격이 저렴했고 조식으로 팔라펠(고기 고로케 같은 요리)이 나왔던 호스텔이었다. 거기다가 스텝들이 하나같이 친절했던 곳. 카이로 최악의 문화 중 하나는 남부 지방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야하는데 안전상의 이유로 외국인들은 현지인의 3~4배의 가격을 내게 하는 시스템이다. 원가의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이집트 현지인이 대신 표를 사 주는 수밖에 없는데 그 호스텔 스텝들은 제 일인 것처럼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만큼 그 호스텔은 가격대비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곳이었다. 6층에 엘리베이터 없는 것만 빼면... 


저 델리만쥬 같이 생긴게 바로 팔라펠!


우리도 15킬로 짜리 배낭을 매고 중간에 두번을 쉬면서 헥헥 대고 올라갔다. 겨우 고지를 점령하고 한 숨 돌리고 있는데 저 아래에서 18, 개, 소 따위의 육두문자가 남발한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여자애였는데 독특하게도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세계여행자였다. 그 친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타의 세계여행자와 다르게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 때 그 때 다 사서 택배를 보내는 위대한 여행자였다는 것(이 부분을 아내는 특히나 부러워 했다)과 또 하나는 우리가 나눴던 이집트인 뒷담화에 대한 것이다. 카이로의 도로체계를 보고 혀를 내두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단 8차선 정도의 넓은 도로에 차선이 없어서 다니는 차들이 아찔하게 주행한다. 그리고 그 넓은 도로에 보행자 신호등도 거의 없는지라 이 8차선의 도로를 보행자들은 재주껏 무단횡단을 해야 한다. 거기에 탈 때 내릴 때 말 바꾸는 택시기사들까지. 참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내 뱉으며 6층 호스텔을 등반한 그 친구와 우리는 몰상식한 이집트인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 한 시간 정도 신나게 까대면서 살짝 친해졌다. 그런데 나~중에 우연히 그 친구 블로그에 들어가서 카이로 관련한 포스트 하나를 봤는데 내용은 대충 이런거였다. #카이로 친절한 이집트 친구들 #3천년 역사의 도시 #행복한 세계일주. ㅋㅋㅋㅋㅋ 그 포스팅을 보고 나와 아내는 빵 터졌다. 글틔 힘든건 힘든거고, 이집트인은 최악이어도 블로그의 나는 행복하지. 카이로 하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보다, 카이로 박물관 미이라들 보다, 그녀가 먼저 떠오른다. 더운데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녀가 보낸 택배들은 무사히 다 한국에 왔을까. 


쓰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다. 가뜩이나 더운데 긴 호흡의 글은 읽는이들로 하여금 살인충동을 일으키기 충분하니 내일 이집트의 나머지 도시들 아스완-룩소르-후루가다에 대해서 써야지. 히히 신난다. 내일도 글 쓸 주제들이 있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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