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앓느니 쓰지 Jul 18. 2018

EP2. #미국 #총기 그리고 #시민

공화당 지지자에게 들었던 총기 합법화 이야기

되도 않는 자소서를 쓰다가 '그런 되도 않는 것을 쓰면서 그것 좀 썼다고 지쳐서' 되도 않는 브런치 글을 써 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시험공부할 때는 전화번호부도 재밌고, 당장 내일까지 완성해야할 기획안 빼고는 노벨문학상도 탈 수 있을 것 같다는걸. 이미 완벽한 직업을 갖고 있는 인간이더라도 몇 년에 한번이라도 자소서를 써보길 권한다. 그 짧은 글 한 편에 '내 인생이란게 이리 보잘 것이 없고 누추하였구나' 하는 끝없는 '자괴감 폭발'의 블랙홀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간다. '혹시나 (뽑아줄지도) 몰라 하고 쓰는 자소서'를 다시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런 자소서 쓰는 사람을 뽑는 회사는 글러먹었을거야' 하고 글을 쓰는 나를 넘어 혹시라도 그 글을 뽑아줄 회사까지 도매급으로 비난하게 된다. 에라이 이럴 때는 여행 글이나 끄적이는 거지.


이 글은 저번주엔가 쓰다가 '대체 나는 뭘 쓰고 싶은거지?' 하고 그만 둔 글에 대한 미련이다. 그래서 이 글이 끝날 때쯤 읽는 사람들도 '그래서 너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하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쌩뚱맞게 '미국 총기 합법화' 라는 거대담론에서 시작한다. 미국 여행을 하기 전에 미국에 가면 꼭 물어보고 싶은 주제들이 있었다. 가령 '미국이 마약문제로 시끄럽다고 하는데 내가 본 어떤 기사에서는 그게 미국 내 저소득층이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웬만한 병들은 다 약으로 해결하다 보니 의약품의 마약 성분 같은 것 때문에 쉽게 마약에 빠진다는데 사실이야?' 같은 어디서 주워 들은 질문거리 같은게 있었다. 왜 그런 캐릭터 있지 않은가 후질구레한 츄리닝만 입고 동네를 기웃기웃 거리면서 코 찔찔이 애들한테 지구온난화나 유엔평화유지군 같은 되게 심도있지만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터는거' 좋아하는 그런 형. 그런 형이 미국에 가기 전에 궁금했던 주제 중 하나가


'그렇게 똑똑한 미국이 왜 아직 총기 합법화를 폐지하지 못하는 거야?' 하는 그런 질문이었다.


황소 불R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고 합니다!_뉴욕_월스트리트


우주의 기운과 츄리닝 동네형의 미친 결단력으로 결국 미국에 다녀 왔다. 대학교 논술문제로 '미국 내 총기합법화에 따른 사회문제에 대한 본인의 의견과 해결방안에 대해 논하시오' 따위의 주제가 나올거라고 가정하고(저는 암모나이트 05학번 입니다만) 미국 가기 전에 이 주제에 대한 근거 같은 것을 조사했더랬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산업적인 측면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미국=천조국 이라고 알기만 알지 '왜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는 아내한테 나는 '에헴' 하면서 맨스플레인을 했던 적이 있다. 그게 그러니까 미국은 '국방비'로 '천조원'을 쓰는 나라라서 천조국이라는거야.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십억백억천억조십조백조천조. 바로 그 천조를 써서 천조국이라는 거다. 국방비로 천조를 쓰는 나라. 그리고 전세계에서 누구보다 산업에 대한 이해가 빠른 나라 미국에서 '총기'는 내수시장에서 엄청나게 굳건한 산업의 한 축을 맡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학교에서 수십명을 죽이고, 교회 예배 시간에 기관총을 드르륵 긁어도 그 산업을 폐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노동과 연결되면 이것은 더욱더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그 안에서 무기로 밥벌어 먹는 미국 내 노동자들이 결코 적지 않다. 아무리 수십명이 죽어나가도 수 만명의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미국은 숫자에 누구보다도 강한 나라니까. 그러나 그렇게 노골적으로 산업적인 측면의 총기합법화를 주장할 수는 없으니까 다른 방식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근거들을 만들어냈다. 가령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개척자들의 총기 위에 세워졌으며 미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는 몇가지 논리들 같은 것. 그러나 누가 뭐래도 가장 큰건 '산업' 곧 '돈' 때문이라는건 유치원 다니는 우리 조카도 안다.

미국은 '나라'보다는 '사회'에 더 관심이 간다

여기까지만 쓴다면 굳이 츄리닝 형아가 미국에 다녀 온 의미가 별로 없다. 그냥 구글이나 유튜브 같은데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실들. 그러나 '별거없지만 심층적이고 싶은 사나이' 츄리닝 오빠는 아주 운좋게도 미국 동부에서 본인을 '공화당 지지자' 라고 밝힌 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한 인간의 정치 성향이라는게 두부 자르 듯 쉽게 쪼갤 수 없다. 가령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만 동성애 합법화를 지지하는 보소주의자나, 공기업 민영화는 찬성하지만 대기업 지배구조는 철저히 비난하는 진보주의자처럼. 내가 만난 그 사람도 공화당 지지자이지만 '총기 합법화'를 완전하게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총기합법화를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세력 대부분이 공화당 지지자들이기에 미국총기협회 협회장을 직접 만나볼 수 없다면 그래도 건너 건너 건너 건너 건너서 공화당 지지자에게 물어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미국은 왜 총기 합법화를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질문에 앞서 내가 설명했던 '산업적 측면'의 답변을 해줄 거라고 예상한 내게 그의 대답은 약간은 '신박' 했다.


"미국 내의 총기협회 소속 지지자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누구나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대전제는 곧 '나도 총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연결되요. 이 두려움이 굉장히 어리석은 논리에서 나온 가치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 두려움으로 미국은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절대 사람의 육체를 터치하지 말라'고 교육합니다. 그런 교육은 결국 '타인을 쉽게 대하지 않는 자세'로 연결되고 타인의 성향, 이익, 공간에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시민을 양성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총기라는 무시무시한 사회 공동의 공포를 통해서 '배려'라는 민주시민의 덕목을 배우게 되는거죠. 물론 이러한 교육이 '총기 소유'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미국 특유의 '타인을 침범하지 않는 개인주의'의 시작이 '누구나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는 대전제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는 공화당 지지자이기는 하나 총기 소유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미국에 살지 않는 사람은 쉽게 "미국 사람들 왜 이렇게 어리석어?" 하는 주제에 대해 실제 미국인들의 가치관을 설명해 주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설명한 총기협회의 주장이 굉장히 억지스럽다고 생각한다. 배려심 이라는 사회 규범을 조성하기 위해 총기라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도구를 들여온다는게 과연 상식적으로 맞는 논리인지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번주에 갑자기 미국 총기 합법화 주제가 생각났던건


한국으로 돌아온 뒤 경험했던 몇 가지 몰상식한 사건들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착륙을 하려는데 내 뒷 좌석에서 소란스런 사건이 일어났다. 승무원이 '이제 착륙을 하니까 앞에 놓여진 테이블을 올려 달라'고 몇 번이나 승객에게 설명을 하는데도 승객은 들은체 만체하고 버틴다. 거의 무릎을 꿇고 읍소하듯 설명하기를 두 세차례 그제서야 느긋하게 테이블을 올리는 승객의 뻔뻔한 작태. 저번주에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을 하고 포인트카드 적립을 위해 핸드폰 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갑자기 우유 하나가 쑥 들어온다. 우리 순서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뒤에 있던 손님이 우유를 쑥 내민 것이다. 뭐지? 원래 이런건데 고작 377일 외국에 있었다고 새삼스레 이런 상황들이 다 불편해 진건가?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을 지하철에서 훑어 본다든지, 아무리 사소한 실수더라고 부딛힌 사람들한테 '죄송합니다' 한 마디 하지 않는 이런 몰상식의 연속이 몰상식인지 모르는 '총기없는 나라'의 국민들. 이 정도면 미국의 총기를 가져다가 '민주시민의 배려심'을 하나하나 가슴팍에다 새겨야 하나.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오싹해진다. '그렇다고 총기를 들여오자는 거냐' '그럼 대체 이 국민성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지?' '됐고 얼른 재취업이나 해야지.'


다시 한 번 거듭거듭 강조하지만 이 글은 '미국 내 총기 합법화'를 두둔하려는 의도가 1도 없는 글이다. '직접적으로 설명하며 떠 먹여주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혹여나 생길 오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말하자면 '총기를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를 만드는 미국과 총기는 없어도 종종 아니 매우매우 자주 몰상식한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는 한국을 비교' 하는 글을 하나 써 보았을 뿐이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는거니까.


생각지도 못하게 미국을 4주씩이나 여행했다. 세계여행 28개국 중 가장 위험한 나라를 꼽으라면 하루가 다르게 테러가 터지는 이집트도, 눈 깜빡할 새 강도가 코 배어간다는 브라질도 아니고 아름다운 나라 미국이었다. 미국에 가기 전에도 총기는 무서웠고 여행중에도 '갑자기 저 사람이 총을 꺼내서 난사하면 어떻게 하지?' 하고 늘 경계태세를 잊지 않았다. 4주 동안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천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총기 소유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본 것도 나름의 운이었다. 아마 미국의 총기 합법화 여론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미국 내 민간 총기소유가 완전하게 금지되는 날을 기대한다. 그리고 제일 좋은 나라는 '총기' 없어도 '배려'를 배우는 나라들이겠지. 총기를 통해 '타인의 신체를 함부로 범하면 안된다는 인식'을 철저히 교육한다는 것을 알았고, 미국인 전반에 걸쳐 그러한 가치관이 스며들었으니 이제 위험요소는 빠져도 되지 않을까. 물론 '돈'을 생각하면 쉽지 않겠지만...


제가 처음부터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나도 몰라요 임마. 위에 쓴 말들 다 맥거핀이야.





집순이(아내) 인스타 @k.mang
않느니 쓰지(남편) 인스타 @changyeonlim
매거진의 이전글 EP1. 좋은 여행은 언제나 공부하고 싶게 만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