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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Aug 13. 2018

교세라를 존경하는 배달의 민족이라니

No.5 <왜 일하는가>

최근에 어떤 두 사람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계열사만 200개가 넘는 거대기업인 교세라의 명예회장인 이나모리 가즈오의 인생과 경영철학을 이야기 하는 책이다.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심플하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미칠 수 있고, 미친 사람들은 결국 어떻게든 그 일에서 성과를 낸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가 시켜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일을 하는 동안 놀랄만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열중한다" 이런 내용의 책이다. 회장님의 말씀에 무릎을 탁탁치며 일을 사랑하지 못했던 내 지난 인생을 반성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마음 쩌~~~기 깊숙한 곳에서 나는 반론한다. "회장님 그래도 일이 인생에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면 인생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요? 회장님 혹시 워라....벨....이라고" 이노오오오옴!!! 기모노 입고 건버섯 가득한 대노하는 회장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카이지의 그 회장님 얼굴이.

일본 회장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재밌는건 내게 이 책을 추천해준 두 사람이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와, 같은 회사 마케팅실 장인성 이사. 배달의 민족이라니. 배민신춘문예, 배민문방구, 배민치뮬리에 등 하는 일 마다 센스있는 기획으로 사람들에게 무한 사랑받는 기업의 임원들이 추천하는 책의 메세지가 "Working hard, more hard, always working!" 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배달의 민족은 또 직원 복지가 좋기로 유명하지 않는가. 주 35시간 근무(월요일 1시 출근), 가족 기념일 조기 퇴근제도, 도서비 무한지원(가장 부러운 제도) 등등 이런 시스템을 만들고 실천하는 배민이 존경하는 그룹이 교세라라니 어디서 아이러니 타는 냄새 안나나요?


처음에 나는 배민이 겉으로는 그럴듯한 기업이미지를 표방하고 안에서는 직원들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조선 기업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봉진 대표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듣고 이내 마음이 바뀌었다. 아래는 예스 24 팟캐스트에 출연한 김봉진 대표의 이야기 축약본이다.

배달의 민족은 배달음식을 시킬 때 사람들이 전단지를 보고 시키는 당연한 시스템을 어플로 가져오자는 취지로 시작한 비지니스였어요. 초기에 그럼 어떻게 전단지를 다량 확보할까 하다가 초기 멤버들끼리 송파구, 강남구 일대에 전단지를 줏으러 다니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이거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국에 전단지 모으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했죠. 이 프로젝트를 저희끼리 '대동여지도 프로젝트' 라고 부르기로 했죠.


<배민다움> 이라는 책에서 보면 인터뷰어인 홍성태 교수는 김봉진 대표가 습관적으로 "그 때 그거 할 때 참 재밌었는데 말이죠"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위에 말한 배민의 일화나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다시한번 교세라 회장의 가르침을 생각해 본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가르침의 핵심은 사실 Work hard가 아니라 Love working에 있었다. 일을 사랑하면 결국 그 일을 잘하고 싶어지고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도 회장님의 말을 A부터 Z까지 무분별하게 수용한건 아니었다. 애초에 제조업의 시스템을 인터넷 서비스업에 적용한다는건 어리석음의 소치다. 배민은 교세라의 정신을 가져왔다.


회사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복지는 높은 급여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경험입니다

장인성 배달의 민족 마케팅실장이 어떤 강연해서 한 말이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 말인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경험'을 주신다니요. 무급으로라도 일해보고 싶습니다! 급여는 높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경험을 받지 못하는 회사가 얼마나 많은가. 많은 대기업 신입직원들이 취직하고 몇 달 안돼 일을 그 만 두는 이유가 그런데 있지 않나. 지난 주에 갔었던 장인성 이사의 강연 후에 사람들이 하는 질문도 이런 것이었다. "직원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드신 이사님의 노력을 존경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회사 환경에 있는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교세라 회장님의 주옥같은 조언도, 배민 임원들의 강연들을 들어도 힘이 빠지는 이유는 이 지점이다. (여기다가 너무 배민 빠는 글을 써버렸는데 저 그렇게 빠 아닙니다. 그저 요즘 '쪼끔'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을 뿐)


그러나 결국 <왜 일하는가>를 뻔한 꼰대의 자기자랑으로 읽을지 '일'에 대한 한 인간의 고차원적 성찰의 결과로 읽어낼 지는 결국 독자의 선택에 달렸다. 나도 책을 읽고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회장님 말씀 잘 알겠어요 그런데 그런데...하고 의문의 꼬리를 계속 이어가게 된다. 아마 한 때 나도 일을 사랑해보고자 다짐한 적이 있었는데 좌절하고 타협했던 그 기억의 굴레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겠지. 우리 이 책을 성경처럼 읽지도 <시크릿>처럼 읽지도 말자. 우리는 다 죽기전에 한번쯤 일을 사랑해보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아마 딱 이 한마디를 남기는게 맞는 것 같다.


"일을 사랑해보고 싶습니다. 노력 중입니다. 응원해 주세요."

회장님의 주옥같은 말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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