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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Aug 20. 2018

박웅현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자

No.8 <여덟단어>

언제나 좋은 마케팅에는 모방하는 경쟁사가 뛰어

'강연'이 미디어의 주요 의제가 된지는 꽤 되었다. TED가 되게 힙하게 느껴진 이후 한국에서는 그 모방으로 세바시가 만들어졌고, 정치권에서 나꼼수가 강연형식으로 신선한 정치쇼를 선보이더니, 말하기의 진짜 전문가 김제동은 서슬퍼런 블랙리스트 시대에도 '걱정말아요 그대'를 111회나 제작하고 종방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문화에 익숙했던 나는 그런 강연열풍 현상을 보며 사람들을 웃겼다가, 울렸다가, 강하게 말하기도 하고 위로하다가 결국에는 돈을 뜯어내는 -토크콘서트는 주로 입장료와 광고수익으로 돈을 벌고 설교는 대부분 듣는 이의 죄책감을 매개로 돈을 번다- 방식의 엔터테인먼트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름 30년간 교회를 다니며 결국 설교 잘하는 목사가 내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닳았을 무렵 이 나라에 토크콘서트 광풍이 부는걸 보고 '아 사회가 드디어 교회를 벤치마킹 하는구나! 역시 언제나 좋은 마케팅에는 모방하는 경쟁사가 뛰어드는 법이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도, 박웅현도 그런 선입견의 책상 위에 펼쳐졌다.



만약 강의 몇 번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정리해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길을 묻는다고?

<여덟단어>를, 광고인 박웅현을 어떻게 소비하든 그것은 독자들(혹은 청중들)의 몫이다. 천재적인 카피라이터로 그의 재능을 빨든, 탈권위적이고 배려심 넘치는 인생 선배로 그를 선망하든 각자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박웅현이 있는 법이다. 내게는 '광고쟁이는 상품을 팔리게끔 포장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도 있다. 가끔 화려한 포장은 상품 자체의 결함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 포장을 잘할수록 광고쟁이는 능력있다고 찬사를 받는다. 그런 광고쟁이에게 우리 인생의 길을 물어도 되는걸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그의 강연과 책도 인문학이라는 그럴듯한 부실상품에 메이크업을 하고, 각도를 조절해 촬영을 해서, 화려한 필터를 씌워 올린 Instagram의 피드는 아닐지.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다. 목사와 광고인 중 나는 어느 쪽을 덜 신뢰하는 걸까?

 

여덟단어보다 더 의미있는

그런 합리적인 의심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내가 즐겨 씹어먹은 박웅현의 자아는 '딸아이의 아빠'로서의 박웅현이다. '어쩌면 사기일지도 몰라' 하며 반신반의 째진 눈을 치켜뜨다가도 딸 아이와의 추억을 신나서 이야기하는 박웅현을 볼 때 약간은 그 경계가 허물어졌다. "인간은 30대에 돈자랑을 하다 40대에는 성공자랑을 하고 50대부터 자식자랑을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일반적인 의미가 '내가 우리 아들을(딸을) 이렇게 번듯한 직장 다니는 아이로 키워냈지'에 있는데 박웅현의 자식자랑은 딸과 함께 진심으로 즐겼던 클래식이었고, 딸과 함께 나눴던 진지한 대화들이었고(종종 저건 잔소리나 꼰대아닌가? 생각했지만 뭐...), 딸아이에게 이번 주가 마지막 한 주인것처럼 사랑하자고 나눴던 말들이다. 이 좋은 말 대잔치 같은 책 속에서 - 그래서 뭔가 부담스러운 - 그의 딸은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의 딸의 인생이 궁금했고 부럽기도 했다. 내가 그의 딸이고 싶었다.


흥분하지 않아도 돼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인생의 여러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다고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표본으로 삼을 만한 책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나는 당장에 유레카를 외칠 정도의 감흥은 아니었다. 이런 대단한 책 읽고 흥분하지 않는게 스스로 감수성 고자 인증하는건 아닐까 두렵다가도 어쩌겠나 안되는건 안되는거라고 생각한다. 흥분은 억지로 되는 영역이 아니니까. 읽다가 좋은 말들을 몇 개 적어놓기는 했다. 인생은 기니까 지금 당장보다 박웅현의 말이 내게 더 의미있게 다가올 날이 있겠지 하고 넘어간다. 내게는 호들갑보다 의구심이 더 가치있다. 또 사짜보다는 초짜가 나으니까.


좋은 말 몇 개

우리가 못 보는 이유는 우리가 늘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처럼 삽니다" "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하고 그걸 옳게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건 뭐냐, 바로 돌아보지 않는 자세입니다.


우린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 우린 언제든지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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