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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Dec 26. 2022

나보고 트로트를 하라니

맘대로 안 되는 회사생활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할 때가 있다.


주로 외모와 연관된 상황에서.

애매한 조명과 거울 앞에서 적나라한 내 피부(주름...)를 마주하거나, 면도를 하루 안 했을 뿐인데 거뭇거뭇 수염이 꼴 보기 싫게 나있을 때. 그럴 땐 '관리해야겠네....'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렇지만 가장 어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은,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음에도 한 템포 멈추고 숨부터 고르게 될 때다.


열받거나 짜증 나는 일이 생기면

말이나 행동이 먼저 나갈 법한데 뇌가 선수를 친다.


'이렇게 하면 나한테 도움이 돼?'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는 글이라든지 댓글 의견이 분분한 뉴스를 읽어도 열받기보다는 '이게 왜... (난리...)?'로 시작된다. 감정이 먼저 움직이거나 동조하기보단 '그럴 수도 있었네~' 생각하고 넘어가게 된다.


얼핏 현명해 보일 수 있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게,

이런 태도는 체념이나 순응을 쉽게 낳는다. 무기력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부조리나 불합리 앞에서도 뜨뜻미지근할 뿐.

웬만한 일도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넘겨지는 것이다.

그때마다 새삼 '내가 나이를 좀 먹었나?' 싶다. 약간 슬픈 느낌으로다가.


피크는 회사 생활하면서다.


방송국에 들어간 후 연출로 거쳤던 두 프로그램


어느새 입사 1년 반.

수습 끝나고는 예능 한번, 그리고 교양 한번 했다.

이제는 내가 회사에서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배우고 이뤄낼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원해왔던 것과는 차이가 났다, 꽤나 많이.

내가 결국 파보고 싶은 장르는 서바이벌이고 크게는 젊은 예능인데, 지금 회사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닥 할 것 같진 않고.


돌파구가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 좀처럼 마음이 경쾌해지지 않았다.


물론 나는 아직 저년차매 순간이 트레이닝이고 모든 경험이 자산이다. 내가 무슨 프로그램 가릴 처지도 아니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어른'이니까(...). 거치는 곳마다 뭔가를 얻어가려고 애써왔다. 내게 도움이 되는 길을 만들자고 다짐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지내다보니 의미 없이 시간만 축내는 최악의 상황은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그렇다고 트로트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


회사의 사정으로 나는 3달간

트로트 쇼 프로그램 제작 팀에 합류당해(...) 버렸다.


글을 올리는 지금은 이미 종영했다

트로트라니.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관심조차 없다.

다른 채널이나 우리 쪽에서 트로트가 나오면

"또야? 와 진짜 또로트"라고 진절머리 치던 난데.


그렇지만 난 정말 어른이 된 걸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음이 정리된다.


여기서 맡게 될 일은 프로그램의 후반부 작업.

다행히 이전 팀들에서 한 일과는 겹치는 롤이 아니다.

게다가 고작 2년 차인 난, 이론적으로는 알 지언정 과정을 직접 맡아해본 적은 별로 없다.  

이 기회에 A부터 Z까지 해볼 수 있다면, 이득이다.


다방면에서 모자라고, 메인 PD가 믿고 맡기기에는 아직 경험도 스킬도 부족한 나. 일단 먼저 더 익혀야 한다.


당장 원하는 걸 할 순 없지만,

어쨌든 여기서 내 걸 제대로 만들고 하나씩 쌓아나가면

기회는 한 번은 온다. 그러니깐...



지망생 때보다 지금이 더 와닿는다.


'어른'이라는 단어를 앞세운 무기력한 순응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서도, 스스로는 최대한 담담하게 임해 보기로 다.


오케이 가보자고~


타협에는 '언제든 오케이'란 태도지만 하고 싶은 걸 포기할 마음은 절대 없다.


그런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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