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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탭 열기' 증후군

by 조정환Juancho

난 크롬 브라우저 '새 탭 열기'를 애용한다.


인터넷 서핑이 본디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라, 필요한 정보를 발견했다가도 이내 더 유용한 사이트를 마주치기 일쑤고, 급한 일이 생겨 이전과 전혀 상관없는 검색어를 입력하기도 한다. 느닷없이 연예인 근황이 궁금해져 SNS라도 접속할라치면 [뒤로] - [앞으로] 키를 번갈아 눌러야 하는데 이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럴 때 유용한 게 바로 새 탭 열기.


원하는 만큼, 필요한 창을 얼마든 킵해둘 수 있다. 시간 낭비도 번거로움도 안녕.


새 탭 열기와 함께하는 인터넷은? 꿀잼


지난밤 태블릿을 켰을 때도 띄워진 탭이 10개가 넘었다.

놀라울 일도 아니었지만, 그날만큼은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다.


긴 휴가를 마무리하던 주말 밤이었기 때문이다.

근 한 달 만에 기기를 열어본 터. 이전의 서핑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난


'강동구 한의원'을 검색한 거지?


또 있다. 농구 칼럼이 적힌 블로그와 철 지난 연예기사.

대체 이 페이지를 왜 켜놨는지도 모르겠다.


답답한 건 내용을 확인조차 못하는 경우였다.

'장시간 미접속'으로 계정이 튕겨버려, 네이버 로그인 페이지만 남아있는 것이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지만전 내역은 사라지고 시작페이지로 리디렉션 된 상황. 뭐였을까. 한 10분 고민에도 사라진 기억이 돌아오진 않는다. 결국 포기.


별안간 어이가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기록은 순전히 내가 남겨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름 필요해서 사방팔방 열어놨던 죄다 '로스트 테크놀로지' 행이라니. 심지어 뭐였는지조차도 모르겠는? 당황을 넘어서 약간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바본가 나. 별 일도 아니었지만 기분이 별로. 암튼 쫌 그랬다.


허나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잊고 있던 즈음

다시금 '새 탭 열기'를 떠올리고 말았다.


우연히 경력직 PD 모집 공고를 발견했을 때였다.

'써볼까?' 하고 클릭하자 맞닥뜨린 한 문장. '지원동기를 쓰시오'.


OH SHIT... 나도 모르게 나왔다. 지, 원, 동, 기. 너무 생경한 단어였다. 어떤 일에 오래 몰입하다 보면 최초의 이유를 잊어버리곤 하는데, 그게 내 경우였다.


'왜 하고 있지?'는 없어진 지 꽤 오래됐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와 '어떻게' 해야 하는지로만 꽉 차 있는 나.

PD로서의 시작을 떠올려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고작 몇 년 안 됐으면서.


그러고 보면 난 지난 몇년을 '새 탭만 열며' 살아온 거 아닌가?



방송국에 입사한 지 햇수로 5년.

막연히 '입봉을 대비해서 뭐든지 다 배운다'며 다짐하기에는 연차가 좀 쌓였다.


씬의 지형도 계속 바뀐다. 홍상수 영화처럼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린 일의 연속. 한 작가님이 그러셨다. "피디님 연차에 여기(다른 조직) 오시면 입봉하실 수도 있어요" 굳이 그런 말 아니더라도 안다. 유투브 콘텐츠 회사에서는 팀장 급으로 내 연차를 원한다. '그 정도 했으면' 팀원 여럿을 관리하고 시리즈를 책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만치 시간이 흘렀다. 시나브로.


그 사이에 난 '전진'만 생각했다. 응당 그래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내 앞에 놓인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진심을 다했다. 매 순간 중요하다고 여기며. 그러나 내가 열었던 탭을 다시 볼 새는 없었다. 불안함도 없었고. 내가 그만큼 배우고 얻으니까.

밖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고.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시. 회피하지 마. 사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몰입감'과 '월급'이 주는 안정감에 젖어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저 앞으로만 가려고 하는 건 위험하다. 앞을 정확히 확인하며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딨는지도 모르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르니까.


'지원동기' 한 단어에 난 이렇게 흔들리고 말았다.


때마침 알고리즘에 뜬 쇼츠. 결국 내가 해나가야 한다. (출처: 유투브 '성시경의 만날텐데')


2021년 4월, 방송사에 입사하고

매거진 이름을 [가라앉는 배에 올라탄 후안초]라고 지었다.

그때의 마음을 떠올린다. 왜 그렇게 지었는지.


가라앉는 배에 올라탔던 나.

배를 새로 만들거나, 만들지 못하면 수영해서라도 나아가야 한다.

그런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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