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한 친구가 유투브 하고 있길래 물어봤다. 요즘 뭐 많이 봐요? 거창한 건 아니지만 ‘미래의 시청자 트렌드를 파악할 필요가 있겠군’ 뭐 이런 생각이었다. 그러자 하나둘씩, 나중엔 옆에 있던 친구들까지 너도나도 말해준다. 오, 메모할 준비. 이거랑요 저거랑 요거도 있고요. 아 이게 진짜 대박이고요... 와! 근데!
다 처음 듣는다. <와썹맨> 말고는 낫띵... 모르는 채널이 너무 많구나 싶더라. 참고로 나 유투브 맨날 본다. 게다가 명색이 피디 지망생인데...
새삼 나이 차를 느낀다. 나 스물아홉, 학생들은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반. 그래 봐야 같은 20대고 그래 봐야 열 살 차이지, 라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다르다. 알아들을 수 없던 어른들의 말도 이제 이해가 된다. 그 언젠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우리들을 보며 했던 말들, ‘야, 너네들은 화장 안 해도 예뻐. 왜 멀쩡한 얼굴을 못 살게 구냐’ 이제 의미를 알겠다. 그럼... 나 어른 된 거야?
학생들에게 놀라는 점 하나 더. 인생을 심플하게 산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느끼는 대로 말하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한다.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면 자퇴할 수도 있지! 그치? 이런 식이다. (9화 ‘출석의 비밀’ 참고 - https://brunch.co.kr/@juancho/27 ) 다르게 표현해보면 현재에 집중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용기가 부럽다. 명랑함이 좋다. 마치 신입생 때의 프레쉬함...! 주량을 모르는 신입생은 쓰러질 때까지 마시는 법이다. 종종 망신을 당하고 흑역사를 남기고 나면 슬슬 몸을 사린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점잖을 뺀다. 복학생이 된 것이다.
나?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뭐가 무서운 지도 조금은 알겠다. 하지만 그만큼 뭔가 잃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명랑함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린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무게를 잡을 수 없었는데 이제는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는다. 모르는 게 줄어드니 시간은 빨라진다. 복학생의 1년은 신입생의 일주일이다.
그리고 유독 그때가 아쉽다.
2016년 여름의 나. 멕시코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놀만큼 놀아 졸업을 앞두고 있는 데다가, 돈은 없었고, 문대생이라 내세울 타이틀도 없었다. 취업이든 시험이든 뭐든지 준비를 해야 주위에서 걱정은 안 할, 그런 분위기였다. 집안의 경제력은 가라앉고 있었고. 그래도 꾸역꾸역 갔다. 장학금을 따내고 알바와 과외를 닥치는 대로 해서 돈을 마련했다. 그래야만 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뭔가 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마냥 취직하기는 싫다. 구체성이 결여된 꿈이 내내 지속됐고, 실체를 알아야만 사회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환점이 필요했다.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마음을 다잡자, 결정하자. 고민이 다 해결될 거라고 믿으며 멕시코로 떠난 것이다.
근데 왜 그때의 내가 아쉽나. 그렇게 떠나고 나서도.
손나 바카나! 멕시코에서 반년 산다고 해서 일생일대의 고민이 단번에 해결될 리가 없잖아!
좀처럼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 능력도 키우고 견문도 넓히고 나를 찾고 싶은 마음. 한국으로 돌아갈 때 크게 달라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 시선을 미래에만 두고 생활했다.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그대로면 어떡하지. 여기서 이렇게 한 다음에 한국에 돌아가면 이걸 꼭 하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획만 짰다. 괴로운 적이 많다. 아쉽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저당 잡혀 산 기억.
단과대 농구 팀에서 뛸 때 찍은 사진들. 재밌는 기억도 많이 남아있다.
‘El pasado es un país extranjero.’ 멕시코에 있을 때 메모한 문장, '과거는 낯선 나라와 같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그때의 내가 낯설다. 뭘 그리 전전긍긍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이 친구들처럼 심플하게 생각했음 좋았을텐데.
그래도 멕시코에서의 방황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하나에 천착한 덕에 고민도 해결되었고, 보다 명확한 목표도 생겼다. 다시 한번 나에게 8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충분히 쓸 수 있는 여행 경비가 있다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여유가 언제 생기려나. 인생은 엇박자의 연속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