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출석의 비밀

by 조정환Juancho


위기다.

순탄하던 선생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 혹시 잘리는 건 아닐까?


9화 BGM) 산울림 –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거야 https://www.youtube.com/watch?v=EXzpwUNzqXo


3주차 수업 날, 강의실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수업은 10시고 지금은 9시 55분. 어 뭐지? 혹시 강의실이 바뀌었나 싶어 확인해보는데, 내 옆을 지나가는 학생 한 명. 여기 맞다. 우리는 어색한 인사 후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우리 둘은 차마 서로 쳐다보지는 못하고 자기 물건만 만진다. 으... 어색하다. 100명이 들어가도 충분한 강당을 두 명이 지키고 있을 때의 그 압도적 적막.


저번 시간에 숙제 내준 거 때문인가?

가장 먼저 든 생각. 그때쯤 나는 수업을 끌어가는 것에 익숙해진 차였다. 내 방식에 대한 학생들 반응이 괜찮아 자신감을 얻기도 했고. 그래서 숙제도 내주고 나름 욕심을 좀 부려봤는데... 그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어쩐지 11시가 지나서야 뒤늦게 하나둘씩 오더라니! 시작할 땐 1명이었던 수가 끝날 땐 20명 정도. 에이 참 아직 내가 불편한가, 미리 말을 하지. 그날 수업을 마치며 얘기했다. 앞으로 숙제 같은 거 안 낼 테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다음 주 아침 10시. 강의실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 혼자 있고 싶습니다 다 나가 주세요


수업 시작할 때는 아무도 없고, 끝날 즈음이 되어서야 하나둘 자리를 채우는 패턴이 반복됐다. 아아... 이럴 수가. 학생들이 내 수업에 안 들어온다. 이거 완전 ‘조정환 패싱’ 아니냐... 참고로 내 다음 시간은 여자 선생님이 진행하는 국어(2교시, 11:30~12:45)였는데, 20여 명이 넘는 친구들이 국어 수업은 또 다 들었다. 그렇다. 나는 외면받은 것이다.


왠지 서러웠지만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현실은 냉정하다. 위기는 바로 훅 들어왔다. 수업 마치고 강의 확인서를 쓰러 사무실에 들어가다 꿈드림 팀장님을 마주쳤다.


팀장님: 선생님, 고생 많으시죠~ 수업하시기엔 괜찮나요?
나: 아, 넵! 넵! ^^;;;
팀장님: 애들은 잘 따라오고요?
나: 아 ㅎㅎ 네 그럼요 ㅎㅎ...(ㅜㅜ)
팀장님: 선생님 책임이 막중하세요~. 검정고시 끝나고 그다음에 간담회 하거든요.



간담회를 한 후에 선생님 계약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는 이야기. 간담회라... 간담이 서늘했다. (개그 아님, 암튼 아님.) 가뜩이나 교과서 진도를 따라가지 않는 게 내심 불안한데 (3화 참조 – https://brunch.co.kr/@juancho/21) 그런 얘기를 들으니 순간 표정관리가 안 됐다. 팀장님은 나의 당황을 눈치채셨는지 너무 긴장하지 말라며 달래셨다. 그냥 고생했으니 밥 먹는 자리일 거라고. 물론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주도 달라지지 않았다. 세 명이서 시작해 스무 명으로 끝나는 수업. 내 스텝은 엉키기 시작했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말발도 잘 안 섰다. 학생들이 좀 무서웠다. 겉으로는 좋다고 하면서 실은 이렇게 냉정할 수가 없다. 나는 진지하게 걱정이 됐다. 이러다가 폐강되는 거 아닐까. 이제야 밥벌이를 구했는데, 게다가 피디 공채는 올해 아직 하나도 안 떴는데, 더 이상 편의점 들어가서 레쓰비와 T.O.P 중에 고민하고 싶지 않은데... 이 곳에서 항상 여유만만했던 터라 이 무서움이 낯설게 느껴졌다.


살아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지, 수업이 별로라면 완전히 고치리라. 은밀하게 쓱~ 한 명씩 물어봤다. “사회 수업 어때요?”


외로(?) 다들 호의적이다. 호의적인 정도가 아니라 몇 친구는 극찬을 해줬다. 다른 선생님보다 훨씬 좋다고 엄지를 치켜올리는 친구도 있었다. 아니 ㅡㅡ 근데 왜 수업은 안 오냐고 ㅋㅋㅋ 이 사랑스러운 xx야, 라고 하고 싶었지만 한발 접고 웃으며 물어본다. 아... 근데 왜 안 왔어요?(ㅠㅠ) 근데 이 친구들 대답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아~ 쌤. 수업 시간이 에러예요. 월요일 아침이잖아요.”



억;;; 수업 시간이 너무 이르단다. 그러니까 주말 내내 쉬다가 갑자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 세 글자로 월요병. ‘조정환 패싱’ 오해도 단숨에 풀렸다. 학생들의 말로는 수업은 꽤나 재밌는데, 나름대로 노력해서 온 게 그나마 11시쯤이라는 거. 나는 뭔가 놓치고 있었다.


혹시 그거 아시는지? 자퇴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학교가 싫은 이유’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괴롭다’가 3위 안에 뽑혔다는 걸. 내가 맡은 1교시 사회 수업은, 그 괴로움을 극복해야만 만날 수 있는 그런 거였다. 다리가 풀린다. 10년 전 매일매일 지각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고백하자면, 선생이 된 지금도 매주 지각 위기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피식 웃음이 났다.


학생들을 비난하지 마시라. 인간은 의외로 단순한 동물이다... (출처: JTBC)


이것이 바로 집단 지각 현상의 전말. 허탈했다. 나중에 들으니 팀장님은 매년 보시는 장면이라고. 친해지기 위해 그냥 내게 말 붙이신 건데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나. 잘하고 있다고 위로해 주셨다. 그 말은 귀에 잘 들어왔다. 마음이 편해졌다.


이번 일로 나는 몰랐던 세계를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수업 콘셉트를 좀 바꿔봐야겠다. 좀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해 보는 거야. 수업을 좀 놓쳐도 분리되지 않고 매끄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시간에 오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까. 공부는 공부대로 재미는 재미대로 둘 다 잡아야 할 텐데...


잠깐 잊었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지.

나는 정말 ‘학교 밖’ 선생님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