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파도, 바람, 어둠

첫날밤 그냥 자기 아쉬워서 나갔다가

by 조정환Juancho


저녁 9시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방은 10개도 넘는데 손님은 나 혼자였다. 배도 고프고, 이대로 잠들기는 싫어 가방만 내려놓고 숙소를 나왔다.


바다 끝까지 가고 싶었다. 마침 저 끝에 등대가 있었다. 갈 수 있는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식당이며 카페도 불이 꺼져 있었다. 동네는 마치 버려진 것 같았는데, 관광객이 없어서 을씨년스럽게 변한 건지 원래 으스스해서 사람의 발길이 끊긴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이곳은 관광객이 북적이는 동네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11월이니까.



제주도 바다는 압도적이었다. 파도는 거대했는데 다행히 방파제들이 간신히 등대를 보호해주었다. 바람 탓에 다리가 자꾸 휘청거렸다. 게다가 열 발자국 앞이 보이지 않는다. 무서워졌다. 바다가 나를 삼킬 것 같은 기분. 내가 여기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나라는 존재는 그대로 사라지겠구나. 비명은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치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가끔 뉴스에서 천재지변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볼 때마다 그들의 억울함을 상상하곤 했다. 태풍에 집이 떠내려 갔다거나 지진으로 죽게 된 사람 이야기 같은 것들. 와, 정말 하루아침에 삶이 무너지다니 얼마나 아까울까...


하지만 바다를 맞닥뜨려보니 이건 억울의 차원이 아니다. 순리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인간이 그저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여기에 위태로운 문명을 쌓았을 뿐이다. 깜깜해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니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괜히 숙연해지고... 자연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아무것도... 더 있다가는 몸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 것만 같아 떠밀리듯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같은 자리에 나가보았다. 파도와 바람은 여전했다. 나를 삼킬 듯.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섭지는 않았다. 어제 와 봤다고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어둠이 사라져 저 멀리까지 잘 보여서인지.


어쨌든 파도, 바람, 어둠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만 없는데도 마음이 든든하다. 용기가 생겼달까... 문득 그런 생각까지 이어졌다.


요 몇 달, 아니 요 몇 년 내가 불안에 떨었던 건 앞이 보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 모습을 등대 가는 길목에 앉은 고양이 한 마리가 구경한다. 어디에서 사는지도 모를 고양이 한 마리.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난 패딩을 입고도 으슬으슬한데 얘는 참 춥지도 않은가 보다.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얘, 너 이름이 뭐니. 물어봐도 눈만 깜빡일 뿐이다.


넌 무섭지도 않니? 참~

둘째날이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