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차와 마주치지 않는 즐거움

짱 좋아

by 조정환Juancho

역시 걷길 잘했다.


일단 빌딩과 자동차가 안 보인다. 이것들과 같이 사는 게 지긋지긋하던 참인데.


빌딩은 시야를 가로막는다. 빌딩 숲보단 탁 트인 광경이 좋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창 밖을 보며 스트레칭도 하고 싶은데, 보이는 건 아파트와 상가들. 숨이 턱 막힌다. 잘못하면 남의 집 베란다 훔쳐본다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자동차는 걸음을 위축시킨다. 우리 집은 교차로 앞에 위치해 있어서, 동네 슈퍼를 가는 데도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횡단보도 가는 길엔 인도가 따로 없다. 한 트랙을 자동차와 사람이 같이 쓴다.


은근 스트레스다. 전철역 가는 길, 5분도 안 걸리는데 나는 힐끔힐끔 뒤를 돌아봐야만 한다. 혹시 차가 날 치고 가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엔진 타는 매캐한 냄새와 경적소리는 덤이다. 왕복 8차선 거리에서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짜증 나는지... 도시에 살려면 마땅히 견뎌야 하지만, 어쨌든 마음 편하게 걸어본 기억은 없다.


올레길엔 없다.


올레길은 기본적으로 차로를 따르지 않는다. 직선 아니고 곡선이다. 꼬불꼬불하다. 골목길을 뺑뺑 돌아가거나, 마을과 마을 사이 갈대밭을 가로지르거나, 산을 탄다. 나는 18번 올레길 중간부터 걸었다.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동네로 갔다가, 부처님 계신 사찰을 지나친다. 가파른 오르막길도 있지만 어느새 해안가를 걷고 있는 두 발. 오오 변화무쌍한 거 보소... 끊길 듯 꼬불꼬불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른다. 그런데 그동안 고층 빌딩 하나 마주치지 않았다. 특히 차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다.


새로운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며 생각했다.


여기까지 와서 굳이 쌩-하고 옆을 지나치는 자동차를 마주치고 싶지 않다. 그 차들은 마치 나보다 먼저 성과를 거둔 친구들 같다. '아직도 그러고 있어?'라고 눈치 주는 사람 같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씨름하는 경쟁자 같기도 하고, 휙휙 바뀌는 세상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난 여유를 가져 보려고 제주도 온 거잖아. 그니까 그냥 묵묵하게 걷기로 한 것이다. 내 발로 직접 딛고, 꾹꾹 눌러 담으며 기억하려고. 그리고 그게 나한테 맞다. 헐떡거리는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좀 살아 있는 것 같다. 역시 기분 좋다. 상쾌함과 기분 좋은 피곤함이 함께 몰려왔다.


계산해보니 하루에 20~25km 정도 걸을 수 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더 힘을 주면 30km까지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멀리 걷기 대회'를 나간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