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사소한 발견들

공간 이야기, 제주도의 명패와 사업장

by 조정환Juancho


걷다 보니 계속 발견하게 된다.

내가 사는 도시와 올레길 동네의 차이.

사소하지만 눈에 띄는 이 곳의 특이점들.


주로 공간(空間)과 관련되어 있다. ‘공간 활용법’이라든지, 공간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간단히 소개해자면...


1. 대부분의 집 문에 명패가 붙어있다.


직사각형 모양에 이름을 파 놓은, 그 명패 말이다. 저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대체로 힘이 들어가 있다. 나무판을 삐까뻔쩍 코팅해 놓은 것부터 멋스럽게 흰 바탕으로 칠해 놓은 것까지. 그 안에는 집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방식 또한 제각각이다. 심플하게 한글로 이름 세 글자만 적은 것도 있고, 부부의 이름을 함께 담은 명패, 가족관계까지 소상히 새겨넣은 명패도 있다. 국가 유공자 표시를 새겨 넣은 집에선 일종의 자부심까지 느껴진다.


요컨대 ‘이 집의 주인은 나야’라고 선언하고 있다. 신선했다. 요새 통 못 본 풍경. 도시에선 ‘명패 붙어 있는 집’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구식이 되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연말에 잘 팔리는 책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2020년 키워드로 ‘스트리밍 라이프’를 꼽았다더라. 음악, 영화, 프로그램, 심지어 부릉부릉 차까지. 이제 우리는 ‘소유가 결여된 소비’를 한다.


집을 놓고 봐도 그렇다. 많은 경우 ‘우리 집’은 진짜 우리 집이 아니다. 특히 아파트와 빌라, 오피스텔처럼 쌓아 올린 건물들. 빌린 공간일 뿐이다. 진짜 집 주인은 공간을 스트리밍한다. 세입자들에게 내주고 돈을 받는 구조. 이 시스템은 점점 전문화되고 있다. 그러니 ‘이 땅의 주인은 나야’라는 말은 조금 쑥스럽거나, 많이 씁쓸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리 흉흉한 세상에 명패를 붙여 놓은 풍경도 왠지 위험해 보인다. 개인 정보 유출될까 택배에 붙어있는 송장도 파쇄하는 시대인데.


여기엔 아파트 같은 구조물은 별로 없고 그 땅을 온전히 집 주인이 가진다. 그걸 증명하는 게 명패다. ‘소유의 종말’을 거부하는 일종의 징표...! 그래서 나는 명패로 가득 찬 동네를 지나며 묘한 편안함을 느꼈다. 이렇게 안도하면서. 아마도 여기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겠구나. 집집마다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일 거고, 은근히 쌓인 신뢰도 있겠지, 뭐 이런.


2. 응대 공간과 생활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식당과 카페를 정말 드문드문 만나게 된다. 한 시간에 한번 꼴? 왜냐면 이 길은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지금 말하는 식당과 카페 이야기는 SNS에서 핫한 맛집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지친 와중에 식당이나 카페를 발견하면 무척 반갑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면 민망해지는데, 도시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손님 테이블에 자리를 펴 놓고 쪽파 까고 있는 아주머니들, 카운터 너머 집 안 화장실에서 발가벗고(!) 목욕하는 아기, 매장 음악을 잠깐 멈추고 유치원에서 온 전화를 받는 카페 사장님, 창고에 다 들어가지 않아 삐져나온 집안 살림까지...


누군가는 얼굴 찌푸려질 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서비스 정신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받아들였다. 동네 특성상 이 영업장은 곧 그들의 집이기도 하다. 한번은 허름한 성게국수집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물질하는 곳과 집과 가게 간의 거리가 채 10분도 안 걸릴 정도로 가까웠다. 또한 여기 종업원은 해녀 사장님의 딸이고,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도 모두 친척이다, 손님은 대부분 이웃. 가끔씩 나같은 외부인이 찾아올 정도니까 여기는 망고플레이트 리뷰나 네이버 블로그와는 애초에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런 풍경도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도시의 삶에 익숙한 분이라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3. 낯선 얼굴과 의문의 현수막


올레길19코스 중간이었나 걷고 있는데 가정집 담벼락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큼지막한 얼굴 사진과 함께 문구가 붙어있었다.


‘안녕하세요, 올레길 걷는 걸 좋아하는 이 집 주인 ㅇㅇㅇ입니다. 여행자 분들은 지금 여기쯤(약도)을 걷고 계십니다. 목적지까지 △△km 정도 남았으니 조금 더 힘내십시오!’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 동네는 이런 곳이구나. 마주치는 이 없어도 같이 걷고 있는 느낌.


그렇지만 여기에 확실히 밝혀둔다. 옛말에 그랬다. 항상 보면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자기가 다 아는 듯 말한다고. 주저리주저리 썼지만


사실 난 겨우 며칠 걷고 호들갑 떨고 있는 ‘제주도 뉴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