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성 없는 글감들 소개
■ 인생은 <워킹데드>
끝을 알고 보는 드라마는 노잼이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엔 차이가 있다. 내 마음가짐에서 생긴다. <워킹데드>를 보기 시작할 때, 나는 넷플릭스에서 시즌 9까지 나왔음을 이미 알았다. 이걸 언제 다 봐ㅠㅠ 너무 갈 길이 멀었기에 나는 10초씩 넘겨가며, 때로는 나무위키로 스토리를 훑어가며 skip했다. 그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하루키 단편을 읽다가도 소설 분량의 어느정도인지 확인하는 나를 발견한다. 한 50페이지니까 전철에서 다 읽어야지, 이건 80페이지니까 다음에, 하는 식으로 계산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데 한글자 한글자 느낀다기보다는 그저 '때운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경험적으로, 끝을 알고 보면 뭔가 몰입이 안 된다.
내 인생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내년에 언시 생활이 끝난다는 걸 알면 그 사이엔...' 그저 잘 때우고 왓챠에 별점 4개 정도 주려고 읽는 것처럼. 어디서 월급이나 쌓을 걸 생각하며 스킵스킵스킵.
인생은 워킹데드보다 길다. 언제 끝날 줄 안다고 전전긍긍하는 게 맞나 싶다. 73살 쯤에 내가 죽는 걸 안다고 하면 나는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 거리 차가 주는 감흥의 낙차
바다를 따라가다 이번엔 숲길. 한참 헤매다 보니 풍력 발전기를 지나간다. 풍차처럼 선풍기처럼 관람차처럼 긴 막대기가 돌아간다. 멀리서 봤었을 땐 아주 천천히 가던데. 그 밑을 지나가니까 무섭다. 우웅윙~ 나를 찍으려는 도끼 같다. 엄청나게 큰 자이로 스윙 조각이 칠 것 같다. 저게 삐끗하면 나는 즉사야.
둔해 보이던 풍력 발전기의 움직임이 압도적이다. 얘는 그대로 도는데. 찰리 채플린이 그랬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세상이 그렇다. 거리 차가 감흥을 바꾼다고.
■ 발 딛기 위해 풍경을 볼 수 없다
부르튼 내 윗 발바닥. 오래 걸었다. 걸음마다 쓰라리다. 아픔을 인지한 후부터는 풍경을 볼 수 없다. 안 본다. 울퉁불퉁한 바닥만 본다. 지금 나는 산길 같은 현무암 위. 비포장 도로를 지날 땐 온 신경이 발바닥에 쏠린다. 안 아프려면 잘 딛어야 한다. 디딜 곳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 나는 주변 구경을 할 수 없다. 걸으려면 발 밑을 볼 수밖에.
이제껏 내가 왜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을까. 왜 여기 와서 여유가 생겼을까. 내가 디딜 곳만 생각하느라 바빴으니까. 그게 너무 쓰라린 과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