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삐져나온 생각 몇 가지

통일성 없는 글감들 소개

by 조정환Juancho


'PD 공채 필기식' 작문을 안 쓴 지 꽤 됐다. 작문 스터디 쉰 지도 3개월, SBS 떨어진 이후엔 스터디 자체를 안 했다.


그래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기록한다. 글감을 발견하고 에버노트 앱으로 저장! 매주 스터디할 때는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데 정작 아무것도 안 하고 탱자탱자 놀 때 뭐라도 쓰고 싶어진다. 인생의 아이러니.


올레길을 걸으면서도 글감을 떠올렸다. 길 위에서 멈칫멈칫했다. 잊어버릴까 봐. 그때그때 저장해야 한다. 안 그러면 99%의 확률로 까먹는다. 멈춰 서서 하바드 스프링노트에 펜으로 적거나,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으로 보낸다. 글감들은 아침과 밤에 정리. 소재끼리 묶어보고 주제로 나눠본다. 나름의 편집 방법이다. 이전 글 12개는 그렇게 탄생했다. 아직 몇 개는 기다리는 중.


하지만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 놈들도 생긴다. 단상(斷想)이라 딱히 더 쓸 내용이 없거나, 글감 자체가 재미없는 경우가 그렇다. 나중에 보면 이걸 왜 메모했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안 생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 인생은 <워킹데드>

끝을 알고 보는 드라마는 노잼이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엔 차이가 있다. 내 마음가짐에서 생긴다. <워킹데드>를 보기 시작할 때, 나는 넷플릭스에서 시즌 9까지 나왔음을 이미 알았다. 이걸 언제 다 봐ㅠㅠ 너무 갈 길이 멀었기에 나는 10초씩 넘겨가며, 때로는 나무위키로 스토리를 훑어가며 skip했다. 그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하루키 단편을 읽다가도 소설 분량의 어느정도인지 확인하는 나를 발견한다. 한 50페이지니까 전철에서 다 읽어야지, 이건 80페이지니까 다음에, 하는 식으로 계산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데 한글자 한글자 느낀다기보다는 그저 '때운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경험적으로, 끝을 알고 보면 뭔가 몰입이 안 된다.

내 인생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내년에 언시 생활이 끝난다는 걸 알면 그 사이엔...' 그저 잘 때우고 왓챠에 별점 4개 정도 주려고 읽는 것처럼. 어디서 월급이나 쌓을 걸 생각하며 스킵스킵스킵.

인생은 워킹데드보다 길다. 언제 끝날 줄 안다고 전전긍긍하는 게 맞나 싶다. 73살 쯤에 내가 죽는 걸 안다고 하면 나는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 거리 차가 주는 감흥의 낙차

바다를 따라가다 이번엔 숲길. 한참 헤매다 보니 풍력 발전기를 지나간다. 풍차처럼 선풍기처럼 관람차처럼 긴 막대기가 돌아간다. 멀리서 봤었을 땐 아주 천천히 가던데. 그 밑을 지나가니까 무섭다. 우웅윙~ 나를 찍으려는 도끼 같다. 엄청나게 큰 자이로 스윙 조각이 칠 것 같다. 저게 삐끗하면 나는 즉사야.

둔해 보이던 풍력 발전기의 움직임이 압도적이다. 얘는 그대로 도는데. 찰리 채플린이 그랬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세상이 그렇다. 거리 차가 감흥을 바꾼다고.
■ 발 딛기 위해 풍경을 볼 수 없다

부르튼 내 윗 발바닥. 오래 걸었다. 걸음마다 쓰라리다. 아픔을 인지한 후부터는 풍경을 볼 수 없다. 안 본다. 울퉁불퉁한 바닥만 본다. 지금 나는 산길 같은 현무암 위. 비포장 도로를 지날 땐 온 신경이 발바닥에 쏠린다. 안 아프려면 잘 딛어야 한다. 디딜 곳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 나는 주변 구경을 할 수 없다. 걸으려면 발 밑을 볼 수밖에.

이제껏 내가 왜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을까. 왜 여기 와서 여유가 생겼을까. 내가 디딜 곳만 생각하느라 바빴으니까. 그게 너무 쓰라린 과정이었으니까.


버릴까 했지만 살린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 보는 것도 나름 좋다. 뭐가 됐든, 삐져나온 생각들을 모아봤다. 얼마 안 남았다. 여행도 끝나가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