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퀴즈 예능의 3단계
<신서유기>는 재미있다.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고, 별생각 없이 킥킥거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끝나 있다. 사실 뻔하다. 연예인이 퀴즈 풀다가 밥 먹고 기상 미션하고 하는 게 전부다. 근데 빵빵 터진다.
<신서유기>처럼 퀴즈나 게임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들 여럿 있다. 무한도전 후속으로 나왔던 MBC <뜻밖의 Q>나 KBS에서 정규 편성된 <옥탑방의 문제아들> 등. 근데 다 실패, 시청률도 낮고 평가도 좋지 못하다. 문제 내면 풀고, 성공하면 좋아하고, 틀리면 아쉬워하는 장면 다 거기서 거기인데... 왜 <뜻밖의 Q>는 노잼, <신서유기>는 꿀잼일까.
결국은 제작진의 설계 덕이라고 생각한다. <신서유기>가 웃음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굉장히 잘 짜인 배구 전술 같다. 배구에서 이기려면 강력한 스파이크가 필요하다. 그런데 스파이크를 위해선 토스가 좋아야 하고, 토스를 위해선 리시브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신서유기>는 3박자를 모두 갖췄다.
영화 <올드보이>의 최민식은 15년 동안 자기를 감금한 유지태에게 살의를 느낀다. 만나면 잘근잘근 씹어 없애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그를 만났을 때 정작 죽이지 못한다. 유지태의 한마디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날 죽여버리면 ‘왜’를 알 수가 없잖아요? 15년 동안 당신을 가둔 이유를... 그래도 괜찮아요?" 왜가 이렇게 중요하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없어도 있어야 한다. 설득을 하는 입장이라면 말이다. 경쟁자들 사이에서 시청자의 선택을 받아야 사는 TV 프로그램에게 명분은 중요하다. 왜 하는지 모르는데 시청자가 굳이 봐야 할까?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A: 야 나랑 퀴즈 좀 해
B: ???
A: 자, 문제 낸다
B: 갑자기?
A: 일단 들어봐
B: 듣긴 뭘 들어. 왜 하는지 알려줘야 할 거 아냐.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퀴즈를 왜 풀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옥탑방에 가둔다, 10문제를 맞히기 전까지 퇴근하지 못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납득이 되는가? 도무지... 갇힌 출연자도, 보는 시청자도, 이유를 모른다. 동기부여도 몰입도 쉽지 않다.
사실 제작진이 노린 이유는 ‘그게 재미있으니까’일 텐데, 처음 보는 시청자가 어떻게 믿나. 그래서 퀴즈와 게임을 하는 명분이 필요하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단순한 매개만 있으면 된다. 머리를 똑똑하게 해 준다거나 선물을 쏜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신서유기> 시즌 1을 보자. ‘죄를 지은 것들(?)이 만나 가지고 서쪽으로 여행 가는’ 서유기처럼 이들도 떠난다. 제일 큰 죄를 지은 손오공 역할을 ‘상암동 베팅남’ 이수근이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성숙하고 죄를 뉘우칠 것이라고 말한다. 여행이 시작되고, 손오공 무리가 모험을 한 것처럼 출연진은 제작진이 배치한 게임과 퀴즈를 맞닥뜨린다. 한번 통하면, 다음부터는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시청자가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신서유기 웃기더라, 라는 소문이 한창 돌았다. 시즌 2부터는 게임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다.
나는 평소에 KBS <1대 100>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들이 1대 100에서 나온다고 하면 그 주엔 볼 것이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탈락할지 보고 싶은 것이다. 반대로 상금을 타길 간절히 바랄 수도 있다.
왜 하는지 납득이 됐는가? 다음은 누구냐의 문제다. 퀴즈만 풀면 재미없다. 웃음을 줘야 하는 프로그램은 이를 노려야 한다. 누가 푸는지 궁금해야 하고, 뭔 이야기를 할지 기대가 돼야 재미로 이어진다.
세 가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호감도, 실제 인물과 캐릭터의 싱크로율, 그리고 케미의 다양성이 그것이다. 궁금하거나 웃긴 사람이 나와야 보는 건 당연하다. 자연스러움도 중요하다. 출연자의 실제 성향과 캐릭터가 일치할수록 몰입도가 생긴다. 케미는 재미를 극대화한다. <신서유기> 내 강호동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지만, 그가 다섯 명이면 60분이 단조롭지 않겠는가? 따라서 피디는 출연자 면면을 본다. 개개인이 어떤 스타일을 갖고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동기를 얻는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대인관계를 구축하는지 파악하고 캐스팅을 진행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재미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신서유기>는 시즌 3부터 예능인 반 非예능인 반 구도다. 밸런스가 절묘하다. OB와 YB, ‘1박2일’과 ‘非1박2일’ 멤버 등 다채롭게 갈라진다. 웃음의 패턴도 다양하다.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은 앞선에서 익숙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1박2일에서 숱하게 보여준 그 웃음이다. 뒤에 선 송민호, 피오, 안재현은 신선함을 덧붙인다. 이외의 답변과 친구 케미 등이 ‘이외의 꿀잼’을 낳는다. 앞의 두 프로그램과 비교해보자. 베테랑에 치중된 캐스팅, 시청자는 쉽게 식상함을 느낀다.
결국 핵심 포맷은 퀴즈와 게임이다. 핵심 포맷이 재미있어야 프로그램에 힘이 생긴다. <신서유기>의 퀴즈는 어떨까. 얼핏 보면 대충 만드는 것 같지만 몇 개의 원칙을 고수한다. 그게 ‘텐션’을 만들고 웃음을 자아낸다.
하나, 상벌이 확실하다.
맞추면 제대로 주고, 틀리면 제대로 뺏는다. 기상 미션에 실패하면 밥을 못 먹는 식이다. PD는 멤버들에게 진짜 원하는 것을 적으라고 한다. 기회는 한번, 퀴즈를 풀어 ‘용볼’만 다 모으면 선물해준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허풍이 아니다. 송민호가 ‘멤버들과 <꽃보다 청춘>을 찍고 싶다’고 말하자 <꽃보다 청춘 – 위너 편>이 탄생할 정도니까. 이쯤 되면 다들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날 것의 리액션이 남는다. 참고로 <뜻밖의 Q> 제작진은 성공 시 소정의 선물을, 실패 시 쟁반 꿀밤을 출연진에게 제공했다.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둘, 고민할 시간을 안 준다.
기회는 단 한번, 짧은 시간 안에 답해야 한다. 소원을 위해서 꼭 맞춰야만 하는 출연자. 그 모습에 시청자도 긴장한다. 쉬운 문제에도 실수 연발, 좀처럼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 끝이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들과는 결이 다르다. 한 예로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뻔하다. 이렇든 저렇든 10번 문제까지 풀어야 프로가 끝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지부진하면 제작진이 끊임없이 힌트를 준다. 시청자는 문제를 맞힐 마음도, 출연자를 볼 마음도 잃어버린다.
<신서유기>가 재미없는 분들도 있을 테고, <뜻밖의 Q>나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부디 불쾌해하지 마시고, 그냥 의견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합니다... 열심히 썼지만 써놓고 보니 좀 그렇다. 웃긴 게 그냥 웃긴 거지, 이유를 굳이 따지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분명히 있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재미를 설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일찌감치 준비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써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