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외국인>과 <현지에서 먹힐까>
창의적인 생각을 구체화해 실행까지 옮겼던 경험을 작성해주세요. (1500자 이내)
자소서를 쓰다 보면 이런 질문 자주 마주친다. 요새 트렌드다. 일반 기업이든 방송국이든 ‘창의적’ 인재를 원하는 것이다. 자, 그렇담 워드를 켜서 써볼까. 음... 그런데 뭘 쓰지? 저마다 갈고 닦아온 창의력을 금방이라도 꺼내 보일 것 같지만, 막막하다. 도무지 창의성이 뭔지 모르겠다. 배운 적도, 그거에 대해 얘기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난감하지 않는가. 창의성이 대체 뭐냐고 당신에게 묻는다면 말이다. 사전에 나오는 뜻을 외운다 한들 개운해지진 않을 거다. 그래서 써본다.
내가 생각하는 창의성이란, ‘다시 한번 되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주 만나 농구하는 형들이 있다. 대부분 30대 중후반으로 나보다 한참 위. 운동이 끝나면 편의점 앞에서 ‘음타(음료수 타임)’를 가지는데 이때 형들의 근황을 듣곤 한다. 주로 회사, 가족, 돈, 그리고 차 이야기다. 그 날도 대화는 중고차에서 시작해서 딜러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러다 형들의 시선이 잠깐 나에게 머물렀고. “너는 면허 없어?”
아, 형 저 아직 없죠~. 갑자기 나는 대화의 중심으로 등극. 안쓰러움, 의아함, 그리고 한심함이 섞인 눈빛이 느껴진다. 짜식아, 남자 시키가 ... 아직 멀었네 ... 니 지금 몇 살이지? ... 남자가 차가 없으면 ... 쉽지 않지, 확실하거든 ... 그래, 근데 아직 뭐 학생이니까 ... 너도 다 알게 될 거야 (!!!) 형 아는 동생이 중고차 딜러인데 말야 ...
무방비 상태에서 당했다. 지금은 안 필요한데요...? 돈도 없는데요...? 라고 되물었지만 그건 마음 속에서만. 겉으로는 실실댔지만 사실 찜찜했다. 지금의 나에겐 차가 필요 없는데, 남자는 반드시 차가 필요한가? 물론 점점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굳이 지금부터 있어야 하는가.
누구에게나 이런 경우 있지 않은가? 그럴 때 한번 되물어보자. 진짜 그래? 답은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두말할 필요 없이 맞지’ 이럼 패스. ‘정말 그럴까?’ 요 생각이 든다면 한번 파고들어보자. 거기서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으니까. 이 프로그램들처럼.
‘한국인은 한국어를 잘 안다.’ 여기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을까? 그렇담 이 문장은?
‘외국인은 한국어를 못 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터지만 “그거 완전 편견인데?”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당연한 그 사실이 정말 당연한 게 맞냐며, 빈틈을 파고든 프로그램이 있다. MBC Every1의 <대한외국인>이다.
'한국인 출연자가, 한국인보다 더 한글을 잘 아는 외국인 10명을 차례대로 이기면 우승하는 퀴즈 예능.'
<대한외국인>의 핵심 포맷이다. 한글 퀴즈인데 한국인이 도전한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생긴다. 1단계의 외국인은 단어도 몇개 모르지만, 챔피언 벨트를 쥐고 있는 10단계 할아버지는 무려 46년째 한국어를 연구하고 있는 한국어 번역학과 명예교수. 방식도 단판승부 서바이벌, 먼저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기회를 얻는다. 텐션이 한껏 올라간다. (퀴즈의 재미 이야기는 ‘<신서유기>는 왜 재밌을까?’ https://brunch.co.kr/@juancho/7 를 참고하세요!) 이래도 한국인이 이길 거라 자신할 수 있겠는가.
한국인 패널들이 외국인에게 한글로 깨진다. 상식도 깨진다. 정확히 말하면 상식이 상식이 아니라 편견임이 밝혀진다. 내가 풀면 이길 수 있는데 혹은 내가 풀면 이길까 하며 집중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신선하다. 새롭다. <대한외국인>은 참 창의적이다.
<현지에서 먹힐까>의 시작도 비슷하다. 자장면의 원조는 중국이고, 우리가 먹는 중국음식은 실제 현지에서 먹는 것과 다르다는 상식들. 거기에 조금 더 보태면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외국에서 만든 중국 음식을 먹겠냐.’같은 말들까지. 프랑스 사람이 담근 김치를 상상해보자. 음... 맛있을까? PD는 되물었다. 그게 뭐? 왜, 한번 진짜 그런지 해보면 되지. 그래서 이연복 셰프를 중국으로 보낸다. ‘한국의 중식 요리사가 중국 현지에서 영업하는 이야기’. 컨셉이며 핵심 포맷이며 진행이며 기획의도며 프로그램 제목까지, 한 문장으로 다 정리된다.
시청자는 이연복 군단의 영업 준비를 본다. 오, 맛있겠다. 근데, 진짜 통할까? 궁금해진다. 현지인 반응이 이어진다. 어라, 잘 먹네. 자신이 생각했던 상식이 사실은 편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아, 이거 완전 신박한데? 사실 출연진은 그저 하던 거 하는 거다. 이연복 셰프는 하던대로 요리를, 나머지 멤버는 하던대로 일을 한다. 흐름도 <윤식당> 시리즈와 똑같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 시작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식과 편견은 한 끝 차이다. 둘의 경계도 항상 달라져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럼 되묻자. ‘진짜요?’라고. 의외로 생각이 확장된다.
남자가 차는 몰 줄 알아야지. 정말로? 아닐 수도 있잖아. 기념일에는 선물을 줘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아이돌은 음악을 못한다? 정말? 조용필보다 신인 걸그룹이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도 있잖아? 이런 건 어때, 아이돌이 춤 없이 가창력으로만 승부한다면? 그런 의문을 담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창의성이 담길 수 있지 않을까? 상식인지 편견인지 되묻는 작업이 필요하다. 편견이 완고할 수록 큰 기회다. 그 완고한 벽에 반전을 주면 효과도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물론 '창의성=성공'은 아니다. <대한외국인>과 <현지에서 먹힐까>에 대한 평가도 제각각이다(개선하고 싶은 점, 아쉬운 점도 있지만 여기엔 적지 않는다). 그러나 창의성은 주위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 신선한 기획안은 필기 시험에서 눈에 띄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은 금세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다. 내가 제작과 연출을 하게 됐을 때 갖고 싶은 감각이다.
또 주저리주저리 썼지만 슬그머니 걱정된다. 항상 마무리할 즈음엔 패기가 사라진다. 창의성이 여기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창의적이라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참고만 해 주세요.
꽤나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창의성을 증명해야 한다. 문제는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막막할 수 있다. 그럴 때면 이 글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상식과 편견부터 구분해보는 것이다. 되물으면 된다.
진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