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시간이 별로 없는 데다가, 짬이 난다고 한들 그 시간을 온전히 글쓰기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배우기 바쁘다. 회사에서는 선배를 따라다니고, 퇴근 후에는 이것저것 점검한다. 프로그램과 관련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내가 무슨 일에 나서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아니면(이 순간만큼은...!) 매 순간 긴장 상태. 막내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 하지만 역시 변명을 길게도 썼다.
혹시나 글을 기다렸을 분들께 다시 말씀드리면,
매주 쓴다고 해놓고서 한참을 못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작가의 서랍' 칸에 메모식으로 저장해놓은 글감이 많습니다. 차차 하나씩 올리겠습니다.
방송에서 말하는 '기획'과 '연출'의 의미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난 이 두 단어를 자주 헷갈렸다. 기획과 연출, 대충 어떤 뜻인지는 알겠다. 뭔가를 만들어가는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둘의 차이를 설명하라고 하면 어려웠다. 그래서 자소서나 기획안을 쓸 때,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을 '기획'이라고 써야 하는지 '연출'이라고 표현해야 하는지 망설이곤 했다. 실제로 둘은 자주 혼용된다. 대학 응원단에서 대규모 행사 기획할 때나 BTL 마케팅 회사에서 인턴으로 있을 때도 사람들은 두 단어를 제멋대로 섞어 썼다.
방송국에 들어온 후, 적어도 이 필드에선 두 용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게 됐다. 그래서 둘의 차이를 정리해본다. 나처럼 헷갈렸던 사람도 분명 있을 건데 그분들을 위해서. 사전적 정의를 피하고 최대한 내 식대로 쓰는 거니까, 뭔가 틀려도 어쩔 수 없다(?!). 그냥 의견으로 받아들여주시길.
방송 프로그램 제작 과정을 크게 2단계로 나눌 수 있다.
바로 기획과 연출이다.
아주 단순화하면 이렇다.
기획은 '최초의 아이디어~ 촬영 직전의 모든 과정'이다. 일종의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단계인데, 보통 '머릿속'이나 '서면 상'으로 진행된다는 게 핵심이다. 얼마 전 종영한 채널A <강철부대>로 예를 들자면…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해봤을 것이다. ‘우리나라 군대 중 어디가 제일 셀까?’ 바로 최초의 아이디어다.
방송 PD는 이 발상을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킨다. ‘누구를 캐스팅할지’부터 캐스팅 대상을 어떻게 섭외할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부대 대결을 붙일지, 더 나아가서 제작비 규모는 얼마 정도인지, 몇 분짜리 몇 회 프로그램으로 방송할지… 최대한 직관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정한다. 아직 현실로 만들진 않았지만 그 직전까지 가는 것이다. 그 결과, '4개의 최정예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을 모아 1등 부대를 뽑는 서바이벌'을 핵심 포맷으로 한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이 ‘상상 속에서’ 완성된다. 이것이 기획이다.
물론, 아직 이 프로그램은 무형(無形)의 상태다. 이 시기의 PD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누군가를 설득할 때를 대비해서 프로그램을 활자로 옮기기도 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기획안’이다.
지망생 시절 내가 썼던 기획안들
연출은 그다음 단계다. '기획된 프로그램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갈음하고 싶은데, '메이킹(Making)한다'는 말로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선배도 있다.
예로 돌아가자. ‘상상 속의 <강철부대>’를 현실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화면에 담길 모든 요소를 다 준비해야 한다.
아주 단순한 단계부터 시작해보자. 목표로 했던 출연진에게 연락을 돌린다. 그리고 설득한다. 나와주세요. 거절당하면 대체 패널을 찾는다. 그런 식으로 캐스팅을 확정한다. 그다음엔? 스태프! 카메라, 조명, 음향 등 각 팀과 컨택한다. 의견 조율을 한 후 계약을 한다. 그다음엔? 장소! 촬영하는 데 적합한 곳을 찾고, 대여하는 데 돈이 드는지, 들면 얼마나 드는지 알아본다. 그렇게 섭외를 완료한다. 혹시나 더 필요한 게 있다면? 관련된 사람이나 기관을 찾아 협조를 구한다. 촬영 일자에 맞게 모든 것을 세팅한다. 올 스탠바이.
자, 촬영일이 도래했다. 수십 명의 사람(출연진과 스태프+α)이 정해진 곳에 모였다.
뭘 준비하면 될까? 먼저 모두가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큐시트(Cue-sheet)’라는 공통 스케줄표를 배부한다. 식사, 이동 수단도 고려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들이 불만을 못 느끼도록 도시락을 미리 시켜놓고, 이동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배차 처리를 해 놓는다. 지금 얘기한 건 기본 중 기본. 촬영을 하면서 필요한 수백 가지 요소를 준비하고 돌발 상황이 생기면 대처한다. 어찌어찌 촬영을 마무리짓는다.
그다음은? 편집. 수십 대의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 파일을 정해진 RT(러닝타임)에 맞춰 하나의 큰 이야기로 만든다. 한 번 만들면? 다 같이 확인한다. 문제는 없는지, 재미는 있는지. 그리고 또 수정. 그리고 다시 확인. 이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현실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이 연출이다.
※조정환 소신발언※ '<~맨> 시리즈'는 연출 덕에 '<뭉쳐야~> 시리즈'는 기획 덕에 성공했다. (출처: JTBC)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기획과 연출은 분리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정하기 나름이다. 예를 들어, MBC <놀면 뭐하니>에서 김태호 PD는 기획과 연출을 다 맡아서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구절절이 썼지만, 실제로 방송 제작 과정은 순서를 따질 수 없이 후루룩~ 지나간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다르다. 씬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엔 구분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윤식당>과 <커피 프렌즈>에는 모두 나영석 PD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프로그램 안에서 그의 역할은 다르다. (출처: 나무위키)
그렇다면 TV 프로그램의 기획/연출을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방송 말미에 나오는 스태프 롤을 보면 된다. 기획한 사람은 보통 '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연출은 '디렉터(Director)'나 '감독' 혹은 '연출'이라고 나온다. '기획 MBN / 제작 xx스튜디오' 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경우(드라마 <보쌈>이 그렇다)도 있다. 프로그램 기획을 방송사에서 했고, 연출은 외주제작사에서 맡은 경우다. 물론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이렇게 구분된다는 것이고, 회사마다 또 다르다.
'기획을 하고 싶은 거야 연출을 하고 싶은 거야?'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버버버 했던 적이 있다. 뜨악한 경험이다. 이 글을 읽은 지망생 분들은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며 써봤다. 다음 글도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