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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Jul 18. 2021

왜 카카오TV엔 유투브만큼 손이 안 갈까?

'읽기 전용' 콘텐츠와 '편집 사용 가능' 플랫폼

연애 프로그램 2개를 재밌게 보고 있다.


카카오TV <체인지 데이즈>와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라는 프로그램인데, 위기의 커플 3쌍이 파트너를 바꿔가며 데이트를 하고(체인지 데이즈), 헤어진 커플 3쌍이 한 곳에 모여 각자의 X-애인을 숨긴 채 데이트를 한다(환승연애). 기존 커플 매칭 프로그램에 '스와핑' 요소를 집어넣은 게 특징이다.


스와핑 데이트... 상상이 가는가?


솔직히 정말 재밌다. 한국에서 볼 수 없던 포맷이라 신선하고, 연애+스와핑 조합이 엄청 자극적이다. 처음엔 둘을 비교해봐야지(공부하는 마음) 하고 보기 시작했다가 어느새 홀린 듯 '다음 화'를 클릭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걸 만들 수 있다니! OTT 시대이니까 이런 것도 가능하군, 감탄하기도 했다.


카카오TV <체인지 데이즈>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두 프로그램, 왜 이렇게 화제가 안 되는 것 같지?


두 콘텐츠는 '자극 덩어리'다. 그리고 젊은 시청층을 타깃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생각만큼 화제가 되진 않는다. 물론 '내 생각만큼'이다. 물론 난 빅데이터 전문가도 아니고 커뮤니티 마스터도 아니지만, 그래도 느낌으로 알 수 있지 않은가. 소재나 퀄리티를 생각하면 두 콘텐츠는 이곳저곳 바이럴이 한참 되고도 남을 텐데... 그 정도까진 유명세가 아닌 듯하다. 스와핑 소재를 크게 문제 삼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흔한(?) 폐지 청원 논란도 없고.


의문은 이어졌다. 고민 끝에 나는

콘텐츠가 놓이는 환경이라든지 플랫폼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콘텐츠 유통 플랫폼의 두 타입


요즘 시대에 콘텐츠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읽기 전용'인 A 타입과, '편집 사용 가능'인 B 타입.


A 타입에 해당되는 게 TV 프로그램이나 구독형 OTT 콘텐츠(Subscription VOD; SVOD로 부른다. Netflix, Tving, Wavve 등)다. 특징은 유료가입을 해야 볼 수 있다는 것과 '쓰기 권한'이 없다는 것. 플랫폼 설립자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회원들이 받아먹는 구조다.


B 타입의 가장 큰 특징은 '쓰기 권한'이 있다는 것. 대표적인 예가 유투브다. 플랫폼 설립자는 뒤로 빠져 있고 회원들이 콘텐츠를 주무른다. 일반 회원이 업로드도 하고 시청도 한다. 댓글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 B 타입의 확장성이 어마어마하다는 거다. '쓰기 권한'이 그렇게 만든다. A 타입 환경에선 단순 시청자인 사람들이, B 타입 콘텐츠를 볼 땐 시청자이자 홍보팀, 또 다른 제작진 역할까지 맡게 된다. 본인이 원하기만 한다면!


자막 누가 쓴 건지 센스가 대단하다. (출처: MBC 오분순삭 유투브 채널)


간단한 예로, 무한도전이 하던 10년 전 토요일을 더듬어 보자.


1. 18시 30분쯤 TV를 튼다.

2. 11번으로 채널을 돌린다. 무한도전 오고 있다.

3. 출연진의 긴 장면이나 제작진이 살린 재밌는 자막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 밌어!'

4. 메신저로 친구들과 감상을 나눈다. 아니면 며칠 후 학교나 회사에서 말한다. "저번 주 무도 봤어?"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제일 인기 있는 유투브 '피식대학' 채널을 볼 때는?


1. <매드몬스터> 콘텐츠를 클릭한다.

2. 재생과 동시에 댓글을 연다.

3. 영상을 보면서 사람들이 무슨 댓글을 달았는지 확인한다. 공감되면 좋아요를 누른다. 어떨 때는 잠깐 멈추고 댓글을 쭉 내리면서 킬킬댄다.

4. 웃긴 드립이 생각나면 나도 (대)댓글을 남긴다. 필요하면 시간 마커를 걸기도 한다.

5. 다 보면 다음 관련 영상을 클릭한다.


둘의 차이가 보이는가? 제작진 몇 명이 며칠 밤을 새워가며 <무도> 자막을 썼다면,  <매드몬스터>에서는 수천 명의 시청자가 함께 시간 제약 없이 자막을 쓰고 있(!!)다.


댓글이 자막 역할을 하는데, 심지어 계속 업데이트된다. (출처: 피식대학 유투브 채널)


어쩌면 B 타입의 콘텐츠엔 '완성'이라는 개념이 없을지도 모른다. 유입이 끊기지 않는 이상 댓글들 달리고 그 안에서 계속 서브 콘텐츠가 생성될 테니까. 바이럴이 생기면 화제성은 자연스럽게 진다.


다시 돌아와서, <체인지 데이즈>와 <환승연애>는 왜 생각만큼 화제가 되지 않을까? 티빙과 카카오TV는 A 타입, 즉 '읽기 전용' 플랫폼이 때문이다. 둘 다 이 시대의 대표 OTT이지만, 근본적인 유통 환경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생각만큼 화제가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프로그램 그 자체보다 플랫폼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PD가 콘텐츠 퀄리티 신경 쓴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유투브가 무조건 좋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티빙 오리지널과 카카오TV, 그들만이 가지는 강점이 있다. 충성심 있는 구독자들도 존재할 것이고, 그렇기에 그들만 취할 수 있는 전략이 있을 것이다. 아 그런데 방송국에 있는 난 어쩌지?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TV? 충성심도 화제성도 모두 낮아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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