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TV <체인지 데이즈>와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라는 프로그램인데, 위기의 커플 3쌍이 파트너를 바꿔가며 데이트를 하고(체인지 데이즈), 헤어진 커플 3쌍이 한 곳에 모여 각자의 X-애인을 숨긴 채 데이트를 한다(환승연애). 기존 커플 매칭 프로그램에 '스와핑' 요소를 집어넣은 게 특징이다.
스와핑 데이트... 상상이 가는가?
솔직히 정말 재밌다. 한국에서 볼 수 없던 포맷이라 신선하고, 연애+스와핑 조합이 엄청 자극적이다. 처음엔 둘을 비교해봐야지(공부하는 마음) 하고 보기 시작했다가 어느새 홀린 듯 '다음 화'를 클릭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걸 만들 수 있다니! OTT 시대이니까 이런 것도 가능하군, 감탄하기도 했다.
카카오TV <체인지 데이즈>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두 프로그램, 왜 이렇게 화제가 안 되는 것 같지?
두 콘텐츠는 '자극 덩어리'다. 그리고 젊은 시청층을 타깃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생각만큼 화제가 되진 않는다. 물론 '내 생각만큼'이다. 물론 난 빅데이터 전문가도 아니고 커뮤니티 마스터도 아니지만, 그래도 느낌으로 알 수 있지 않은가. 소재나 퀄리티를 생각하면 두 콘텐츠는 이곳저곳 바이럴이 한참 되고도 남을 텐데... 그 정도까진 유명세가 아닌 듯하다. 스와핑 소재를 크게 문제 삼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흔한(?) 폐지 청원 논란도 없고.
의문은 이어졌다. 고민 끝에 나는
콘텐츠가 놓이는 환경이라든지 플랫폼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콘텐츠 유통 플랫폼의 두 타입
요즘 시대에 콘텐츠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읽기 전용'인 A 타입과, '편집 사용 가능'인 B 타입.
A 타입에 해당되는 게 TV 프로그램이나 구독형 OTT 콘텐츠(Subscription VOD; SVOD로 부른다. Netflix, Tving, Wavve 등)다. 특징은 유료가입을 해야 볼 수 있다는 것과 '쓰기 권한'이 없다는 것. 플랫폼 설립자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회원들이 받아먹는 구조다.
B 타입의 가장 큰 특징은 '쓰기 권한'이 있다는 것. 대표적인 예가 유투브다. 플랫폼 설립자는 뒤로 빠져 있고 회원들이 콘텐츠를 주무른다. 일반 회원이 업로드도 하고 시청도 한다. 댓글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 B 타입의 확장성이 어마어마하다는 거다.'쓰기 권한'이 그렇게 만든다.A 타입 환경에선 단순 시청자인 사람들이, B 타입 콘텐츠를 볼 땐 시청자이자 홍보팀, 또 다른 제작진 역할까지 맡게 된다.본인이 원하기만 한다면!
자막 누가 쓴 건지 센스가 대단하다. (출처: MBC 오분순삭 유투브 채널)
간단한 예로,무한도전이 하던 10년 전 토요일을 더듬어 보자.
1. 18시 30분쯤 TV를 튼다.
2. 11번으로 채널을 돌린다. 무한도전이나오고 있다.
3. 출연진의웃긴 장면이나 제작진이 살린 재밌는 자막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재밌어!'
4. 메신저로 친구들과 감상을 나눈다. 아니면 며칠 후 학교나 회사에서 말한다. "저번 주 무도 봤어?"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제일 인기 있는 유투브 '피식대학' 채널을 볼 때는?
1. <매드몬스터> 콘텐츠를 클릭한다.
2. 재생과 동시에 댓글을 연다.
3. 영상을 보면서 사람들이 무슨 댓글을 달았는지 확인한다. 공감되면 좋아요를 누른다. 어떨 때는 잠깐 멈추고 댓글을 쭉 내리면서 킬킬댄다.
4. 웃긴 드립이 생각나면 나도 (대)댓글을 남긴다. 필요하면 시간 마커를 걸기도 한다.
5. 다 보면 다음 관련 영상을 클릭한다.
둘의 차이가 보이는가? 제작진 몇 명이 며칠 밤을 새워가며 <무도> 자막을 썼다면, <매드몬스터>에서는 수천 명의 시청자가 함께 시간 제약 없이 자막을 쓰고 있(!!)다.
댓글이 자막 역할을 하는데, 심지어 계속 업데이트된다. (출처: 피식대학 유투브 채널)
어쩌면 B 타입의 콘텐츠엔 '완성'이라는 개념이 없을지도 모른다.유입이 끊기지 않는 이상 댓글들은 달리고 그 안에서 계속서브 콘텐츠가 생성될 테니까.바이럴이 생기면 화제성은 자연스럽게 커진다.
다시 돌아와서, <체인지 데이즈>와 <환승연애>는 왜 생각만큼 화제가 되지 않을까? 티빙과 카카오TV는 A 타입, 즉 '읽기 전용'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둘 다 이 시대의 대표 OTT이지만, 근본적인 유통 환경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생각만큼 화제가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프로그램 그 자체보다 플랫폼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PD가 콘텐츠 퀄리티만신경 쓴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유투브가 무조건 좋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티빙 오리지널과 카카오TV, 그들만이 가지는 강점이 있다. 충성심 있는 구독자들도 존재할 것이고, 그렇기에 그들만 취할 수 있는 전략이 있을 것이다. 아 그런데 방송국에 있는 난 어쩌지?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TV? 충성심도 화제성도 모두 낮아지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