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항전' 성격을 띠는 올림픽이, 철 지난 패러다임으로 취급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홍철 아저씨는 96년 애틀랜타에서 은메달을 따고 "국민 여러분께 보답을 못해 죄송하다"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 '개인의 성과'와 '국위선양'을 동의어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고, 메달리스트에게 주어지는 병역 특례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늘었다. 이번엔 코로나 문제도 겹쳤다. 일본 국민들도 개최를 반대했다는데... 여러모로 올림픽이 호감을 사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막상 개막하니 올림픽은 흥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랬다.
스타가 탄생했고, 팬덤은 커뮤니티를 달궜고,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어째서였을까! 개막 전까지는 흥행의 조짐도 없었던 것 같은데. 뭔가 다른 차원의 이유가 있을까?
어쩌면 시청자들이 '연출'에 너무나 지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콘텐츠 업로드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시장이 엄청나게 치열해졌다. 주목받아야 산다. 콘텐츠 제작자는 살아남으려고 애를 쓴다. 이것저것 시도한다. 조금 더 멋진 모습을, 조금 더 극적으로, 조금 더 재밌게. 하지만 그 노력은 연출 과잉으로 흐르곤 한다.
관찰 예능에 '진짜 관찰'이 없다는 걸, 이제는 시청자도 다 안다. 연출진이 심어놓은 아이템, 작가진이 정해준 대사. 짜인 듯 딱딱 맞아떨어지는 상황... 그렇게 만들어진 VCR, 스튜디오에서는 '억지 텐션'으로 받는다. 과한 리액션, 과도한 웃음, 인위적인 드립들. 한편으로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재밌다고 쳐다보는 것들이, 알고 보면 광고나 다름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개그와 콩트 사이에 끼워져 있는 상품들. 결국엔 상품을 비추기 위해 이런 이야기들을 깔아 놓았구나. 이런 시대에 그런 전개, 너무 흔하다. 뭔가 지친다.
윤색된 이야기에 물린 사람들은, 다시금 진짜를 원한다. 좀 얼기설기하더라도 조작 없는 상황을 찾고, 비록 출중하진 못해도 상황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싶은 것이다. 그러다가 마주친 올림픽.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과 예측할 수 없는 경기가 이어진다. 와씨, 어떻게 이래. 시청자는 그렇게 매료된 게 아닐까. 리얼한 상황과 진정성, 새삼스럽게 새로움을 느끼면서.
일하는 와중에, 틈틈이 기획안을 쓴다.
누가 시킨 건 아니다. 언젠간 내 꺼 해야할 날이 오니까, 지금부터 준비한다는 마음이다.
먹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보고싶어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일단 해야 할 것, '진짜 상황'의 느낌을 줘야 한다. 사실 그런 장르를 내가 보고 싶어하는 거기도 하지만... 뭐 어쨌든, 그러려면 출연자가 진심으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이야기다. 방송국에 들어와서 보니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