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듬을수록 더 별로인 것 같지?

몇 번의 시사가 거듭되다 보면

by 조정환Juancho

TV 프로그램 한 회차가 방송에 나가기까지

보통 2~3번의 시사 과정을 거친다.


시사가 뭐냐면,

더 나은 완성본으로 만들기 위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편집본을 틀어놓고 진행하는

일종의 품평회다.


작가님들이 코멘트를 내거나

메인연출(작가) 혹은 CP(책임 프로듀서) 같은 헤드 선배님들이 수정 방향을 말하면

편집한 피디 쪽에서 이를 참고해서 다시 수정,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드는 식이다.


'오프닝 재밌긴 한데 좀 길어서 본편이 죽는다. 줄이자.'

'이 시바이('얘기 덩어리'란 의미의 은어)는 안 산다. 빼자.'

'촬영 때 그 얘기 좋았는데 왜 빠졌지? 한번 붙여보자'

'아깝지만 이건 논란 여지가 있으니 아예 버리자.'


이런 말들이 2~3시간동안 오고 간다.

듣기에 따라 기분 상할만한 멘트들이 오가기도 하는데

프로그램을 더 매끈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임을 다들 알기에 보통 뒤탈은 없다.

다들 프로인 것이다.


<주간산악회> 팀도 시사를 회당 세 번씩 했다.

나로서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거듭될수록 미묘하게 찝찝했다.


분명히 어느 시점엔가

3번 수정된 편집본이 최초의 가편보다 별로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분명히 다듬어지고 완성도도 높아졌는데... 그랬는데...

그만큼 밋밋해진 느낌??


똑같은 걸 두세 번 보면 감흥이 떨어지긴 한다.

난 촬영 현장에도 있었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알고 1,2차 편집본도 봤으니까.

근데 뭐랄까. 뭔가 크게 흠잡을 순 없지만


너무 다듬어지니까, 첫 가편이 갖고 있던 고유의 색깔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본 오디션 프로 출연자 중 최애는 버스커버스커. 노래 못한다고 탈락될 뻔 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으레 그렇듯이

1차 예선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출연자가 등장한다.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 나온 거야?' '기성 가수들보다 낫다' '찢었다... 미친 존재감'


하지만 본선에 오른 출연자의 무대, 생각보다 밋밋한 경우가 많다.

채 드러나지 않았던 '부족한 실력' 때문도 있겠지만

'프로가 되기 위해 고쳐야' 한다는 심사위원의 평가-시청자의 훈수를 따르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아마 그런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어느 시점에 출연자는 느낀 것이다.

본인이 극찬받았던 그만의 특이함이, 알고 보니 위험 요소이고 심지어는 탈락의 빌미가 될 수도 있음을.

그래서 조금씩 자신의 퍼포먼스를 고친다. 불특정 다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조금 더 대중적으로 성공하고자.


그러나 본선 무대를 본 시청자는 실망스럽다. 그리고 생각한다. 뭔가 실력은 늘었지만, 어수룩한 예선 때 모습이 제일 좋았는데. 왜 바꿨지?


마스터본을 보며 왜 사라져 간 오디션 반짝 스타들을 떠올랐을까. 이 완성본엔, 첫 가편을 보고 내가 느꼈던 신선함과 발랄함 그리고 잔재미가 여전히 있을까... 물론 1차 가편과 마스터본을 같이 틀어놓고 '어떤 게 더 낫냐'라고 묻는다면 열이면 아홉은 후자를 고를 테지. 부정 못하겠다.


그래도 내가 알게 된 건 이런 거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이 놈의 무기(강점)가 뭔지 확실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 하나로 못 정한다면 둘, 그것도 안되면 셋, 우선순위에 따라서! 그런 담엔 팀 차원에서 공유한다. 그 무기 중심으로 힘을 합쳐 갈고닦는다. 지나고 보니, 우리가 바로 이 포인트를 놓쳤다는 생각이 든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수정도 좋지만, 프로그램 색채를 더 짙게 만드는 방향을 찾는 시간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요즘 같은 시대에는 과감하게 수정해도, 비약이 있어도 된다. 보는 사람들이 이해할 것이다. 유투브 예능들이 이음새가 어설픈데도 폭발적 인기를 끈 이유가 그런 거니까. 지금 같은 콘텐츠 전쟁터에서는 확실하게 통하는 카드가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내 위치가 '아무것도 모르는 우매한 봉우리'일지도 모른다


누가 그럴지도 모른다.

'어쨌든 넌 시사하는 방식이 별로라고 말하고 있는 건데, 웃기고 있네. 얼마나 해봤다고~ 뭘 안다고 말이야~'

하하, 맞다.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지. 실제로도 많이 모른다.


하지만 난 그냥 반대의 생각을 해봤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결국 PD가 자신의 조각을 깎아내서 완성품을 만드는 건데

분명 더닝-크루거 곡선처럼, 지난한 과정을 지나야만 기억에 남는 역작이 나오는 걸 수도 있겠지만

모든 프로그램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난 좀 더 과감한 쪽을 택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