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안목해변에서의 긴 산책
강릉에 대한 소박한 애착이 있었다.
아주 젊던 어느 몹시 춥던 겨울, 강릉 경포대의 높은 파도를 먼발치에서 하염없이 넋잃고 바라 보던 날, 강릉 바다와 사랑에 빠졌었다.
마음이 건조해지고 팍팍해 지면, 유독 강릉 바다에 대한 갈증이 올라오곤 했는데, 그렇다고 해수욕을 즐기는 강릉이 아닌, 한적하면서 다소 쓸쓸한 바다 산책이 그리웠었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파도에 삼켜질 듯한 산책이 아닌, 먼발치에서 황량하기도 한 바다를 조망하는, 하여 그 넓은 공간에 마음 한가득히 쌓인 묵은 먼지를 툴툴 털어 날려 보내는 그런 개인적인 의식을 치르는 강릉 바다가 그리웠다.
어제는 비도 내려 주셔서, 갑자기 계절의 손바뀜을 온몸으로 느끼던 요즈음,
더 겨울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족과 함께한 강릉 안목 해변에서의 여유로운 저녁 한나절.
부쩍 많아진 까페와 사람들.
해변 여기저기서 소박한 불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여의도 불꽃놀이 소식이 시끌벅적했던 그제, 그런 화려한 불꽃놀이는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둘 셋 모여 치르는 작은 의식이 소중해 보였다.
어쩌면 인생의 단면들도 불꽃놀이일지 모르겠다.
순식간에 끝나는 불꽃놀이 후의 허전함과 또 순간 밀려오는 또 다른 불꽃놀이에의 갈증.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도 늘 동시에 함께 한다.
강릉에서의 긴 산책이 문득 다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