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미안해
(본 글에 포함된 내용은 창작된 소설의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등을 포함한 이 소설의 모든 요소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창작물입니다.)
AB 화학의 모든 직원이 월요일 꼭두새벽 같은 아침 7시에 강당에 모였다. 평소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이른 시간에 출근했으니, 모두가 불만에 웅성웅성 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룹 부회장 엄민용이 직접 주례를 직접 맡은 자리였기 때문.
최근 그룹 주력 사업으로 야심차게 추진해 오던 배터리 사업이 나락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어 모두 70년대 새마을 운동처럼 이른 출근이 반강제 됐고, 먹구름이 가득한 어수선한 그룹 분위기도 한 몫 한다. 하루가 다르게 그룹 모 회사가 모 회사를 합병한다는 둥, 팔린다는 둥 뒤숭숭한 루머와 뉴스가 도배를 하고 있어, 들은 소식들을 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부회장 엄민용은 AB 그룹 총수 엄모순의 사촌동생으로, 그룹 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연단에 올랐다. 직원들은 눈꼽이 아직 달려있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척’ 한다. 강당 안은 초조함과 지루함이 뒤섞여 있다.
주말에 ‘너네는 알현도 못할’ 유명 스님과 세상에서 가장 비싼 녹차 다기에 ‘너네는 구경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할’ 녹차 마신 얘기를 염불처럼 늘어 놓는다. '지난주에는 교회갔다고 하지 않았나?' 다들 의아한 듯 하지만 ‘너는 짖어라’하며 그룹의 암울한 미래 걱정과 자신들의 일자리 걱정에 수심이 가득하다.
엄민용 부회장은 아랑곳없이, 자기 어머니 기일이어서 (직원들은 아무도 만나본적도 없는) 지 어머니 사랑을 예찬하는 얘기, 자기 자식들 사진을 또 보여주며 (모두 안물안궁인) 지 가족 얘기를 한시간 가까이 세뇌시키듯 강의한다. 꽃노래도 한두번이지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러다 뜬금없이.
"당신들하고 나하고 차이가 뭔지 알아요?"
엄민용이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직원들은 모래?하며 서로를 쳐다본다.
‘당근 무식하고 가난한 너네는 모르겠지’ 하는 듯 엄민용 부회장은 스스로 답을 내렸다.
"당신 아버지는 열심히 안 살았고, 우리 아버지는 열심히 살았잖아?"
순간, 직원들 사이에 어색한 썩소가 나오려다 이내 정색하며 쑥 들어간다. 엄민용은 본인이 재벌인 것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듯 피를 토하듯 열변을 토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 주인공 A, 말년 부장은 고개를 휘저으며 속으로 되내인다. "정말, 초딩도 아니고…."
그는 친구에게 어제 들은 초딩 유머를 떠올렸다.
(초딩) '나의 꿈: 재벌 2세.
(초딩) 나의 걱정거리: 아빠가 노력을 안 해서 걱정이다.'
마치 어제듣고 썩소를 날렸던 농담이 현실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총수 엄모순과 마인드가 똑같군," A는 혼잣말을 내뱉으려다 참는다. "자수성가형 재벌이 아니라, 꿀 잘 빤 재벌 N세라고."
엄민용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는 자신이 재벌인 것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떠든다. 그의 아버지는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본인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싸이코패스(Psy)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민용은 눈에 힘을 주며 연단에서 내려왔다. 마치 자신의 연설이 대단한 깨달음을 주었으리라는 착각에 빠진 듯했다.
앉아서 들을 때는 ‘너는 짖어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직원들은 그의 앞에서 억지 미소를 지으며 충성 맹세를 해야한다. 아카데미 남우, 여우 주연상은 저리가라다. 그들의 마음은 피곤함과 체념이 가득했지만 얼굴은 천국의 종소리를 듣는 듯한 아련함과 경외의 눈빛으로 가득하다. 꼬리를 치며 흔드는 모습이 처량하다. 태어난 자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니까.
A는 한숨을 쉬며 마음으로 아들에게 얘기한다.
"아들아, 아빠가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