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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Jul 29. 2024

판결도 니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글에 포함된 내용은 창작된 소설의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등을 포함한 이 소설의 모든 요소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창작물입니다.)


엄모순 회장의 항소심 패소와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분할액 판결로 AB그룹은 허리케인이 지나간 중국 쑤촨성 마냥 쑥대밭이 된듯 하다.


우리 주인공 A부장은 직원 라운지에서 동료들과 잠시 티타임을 가지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근무층인 19층을 누른다.


‘띵’


벌써 19층인가 하는데, 중간에 잠시 23층에 서는 엘리베이터.

익숙한 색깔의 유니폼을 입은 청소용역업체  아주머니가 탄다.

아주머니가 눈을 못마주치시고 약간 지나치다 싶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신다. 얼굴을 돌리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같이 목례를 건네는 A.

‘같은 회사 직원이었으면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인사 같은 건 안 했을 텐데, 구지 왜 먼저 인사를 하실까.’ 물론 서로 인사하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엘리베이터를 잠시 스쳐 공유하는 낯선 사람과의 인사는 아직 어색하다.

근무하는 19층에서 청소를 담당하시는 아주머니께는 늘 깍듯이 인사하는데, 그 분하고는 이미 안면을 튼 사이지만, 이 분은 모르는 분인데. 청소용역업체에서 그렇게 시키는 건진 모르겠지만, 괜히 씁쓸하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인사해야겠다 생각하는 A. 특별히 청소용역 업체 아주머니보다 내가 낮지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해서 내가 먼저 인사를 받을 일도 없다. (그냥 인사를 했을 수도 있고 과민반응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냥 단순 인사는 아닌 모랄까 용역업체에서 훈련을 받은 듯한 인사의 느낌이 강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갑, 용역업체가 을 이런 사회적 계약의 상하관계 때문에 내가 먼저 인사받는 것이 당연한지 생각한다. 문득 오늘 새벽, 아파트를 빠져나오며 밤을 세운듯하게 피곤해 보이던 관리사무소 할아버지가 눈 앞을 스쳐간다.




점심 시간이다.

지하 식당으로 향하는 긴 행렬.

벌써 엘리베이터를 2개나 보냈다. 콩나물 시루를 방불케하는 엘리베이터.

서로의 체취를 바로 코 앞에서 맡을 수 있는 좁은 공간. 숨을 참아보지만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직원 식당에 도착했지만, 목줄을 건 짐승들 마냥 직원 아이디 카드를 목에 매단 직원들의 또 긴 줄.

2개 메뉴 중 파스타를 먹고 싶지만, 어느 줄인지 탐색할 시간도 고민할 틈도 없이 짧은 줄에 선 A. 아니 동료들이 선 줄에 끼여 같이 섰다는 게 맞는 말이다.

마침 19층 청소 담당하시는 아주머니가 바로 앞에 서 있다. 반갑게 인사하는 A. 다음주부터는 다른 층을 담당하신다고. 청소 담당 층을 주기적으로 바꾼다고 말씀해 주신다. 이것도 청소용역업체의 나름 룰인가 보다. 그렇게 담소하는 동안 다른 직원들의 의아한 표정을 뒤늦게 눈치챘다. 직원도 아니고 구지 외부청소용역업체 직원과 다정히 말을 섞는 것이 어색한 그들.

또 다시 씁쓸한 A.




파스타 줄이 길어 줄이 짧은 한식을 택했던 A의 동료들. A도 그냥 그들 따라 줄을 서서 한식을 받아 왔지만 영 맛은 없다. 파스타가 더 댕겼던 A부장이지만, 집단적 의사 결정에 그냥 따랐다. 메뉴 선택권도 없는 직장 생활이라니.


동료 2: (된장찌게 국물을 사방으로 튀기며) 아, 맞다. 우리 아들 이번에 서울대 들어갔잖아요? 지금 여름 방학인데도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더라고요. 정말 기특해요!

A 부장: (속으로) 안 물어봤...

받아온 밥 어딘가로 그의 더러운 침이 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냥 묵묵히 밥을 먹는 A.

동료 1: (맞장구 치며) 정말 그래요. 근데 자랑할 만하죠. 서울대는 다르잖아요.

동료 2: (된장찌게 국물이 입으로 흘러내린다) 그런데 말이죠, 요즘 티비 뉴스만 보면 정말 미치겠다니까. 정치인들 정말 문제 많잖아요? 대통령부터 국회의원까지, 다 쓰레기예요. 정치후진국…어쩌고 저쩌고…..


A는 생각한다. ‘그 쓰레기 같은 국회의원들, 대통령 다 거기 출신아님? 싫다면서 또 지 아들이 거기 간 건 또 그렇게 자랑하는 건지. 또 안물안궁인데 드럽게 침튀기며 자랑하는건 계층의 최고 꼭대기에 올랐으면 하는 욕망아닌가?’

그러나 A부장은 내 아들도 서울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료의 앞뒤 안맞는 모순과 그의 아들 자랑은 못 마땅하지만 또 내 아들이라면 다른 얘기. '속물인가?' 생각하지만 세상은 요지경. 온통 모순이 독버섯 처럼 번져있다. 어제 받아온 아들의 80점 성적표가 눈에 아른거린다. 욱했지만 간신히 참았던 어제 저녁.

갑자기 더 우울해 지는 A




한편 항소심 판결 후 엄모순 회장은 변호인단과 함께 AB그룹 본사 빌딩에 위치한 비공개 회의실로 향했다. 변호인단에는 이혼 소송을 전담한 법무법인 변호사들이 모여 있었다.


엄모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판결입니다.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편파적이고 독단적인 판결이예요. 변호인단은 제대로 전략을 세워 준비한 게 맞습니까? 최선을 다한게 맞아요?”

변호인1: "회장님, 판결문을 꼼꼼히 검토했습니다. 재판부가 손혜민 측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 같습니다. 2조라니, 면목이 없습니다만, 회장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운거라…"

엄모순: (말을 탁 자르며) "모라구요? (뚫린게 입이라고)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당신들이 받아 챙기는 수수료가 얼만데…(그 딴 소리를 지껄여요?) (내가 제시한 전략이 있을리도 만무하지만) 내가 하쟎다고 그대로 따라갈거면 당신들이 왜 필요해요? 전문가면 전문가 답게 제대로된 전략을 제시하고 이끌어 갔어야죠!”

회의실 긴 테이블을 큰 소리로 탁 친다. 멀리서 보면 돼지 한마리가 두 발로 테이블 위에 올라선 기세다.

변호인1: (속으로) ‘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할것이고 당연히 그 방향으로 해야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AB그룹 회장이 무슨 신인가…아직도 지가 예전의 AB그룹 회장인 줄 아나..그룹 신인도도 평판도 개나 물어가라 할 수준이구만..니가 개야 개’


그렇다. 아무리 한국에서 제일가는 이름만 들으면 초딩도 아는 로펌이라고 해도 재벌 그룹 총수의 말을 거역하는건 쉽지 않은 일. 중세시대 왕이라도 되는 양 절대적으로 승리를 확신하는 그것도 돼지머리에게 전략적인 방향 수정이 필요하다고 설득하는 건 한여름에 눈내리는 소리다. 플랜B라도 준비하자고 해야 했었나.....그 말 꺼내기도 쉽지 않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로펌아닌가.


변호인2: "특히, 손혜민의 아버지 전 대통령의 자금이 그룹 형성에 기여했다는 판단이 주요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대법원에서 충분히 다툴 수 있습니다."

엄모순: "그렇다면, 대법원 항소를 준비하는 전략은 어떻게 할 건가요?

변호인1: (속으로) ‘그렇게 잘난 니가 제시 좀 하지? 살만 디룩디룩 쪄서 돼지머리가 된주제에…그룹이 니거야? 내연녀는 그냥 조용히 끼고 살던지, 지가 먼저 나서서 이혼해 달라고 온세상에 치정을 광고한 주제에, 그룹 회장이면 세상을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있을 거 같아? 지금이 무슨 로마시대나 되는 줄 아나….판결도 니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 숏목돼지야!!!’ (이렇게 내뱉고 싶지만 정색하며) “변호인3 전략을 제시해 주세요”

변호인3: "첫째, 항소심 판결의 법리적 오류를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재판부가 손혜민의 기여도를 과대평가한 부분을 철저히 파헤쳐야 합니다. 특히, AB그룹 주식의 분할 대상 포함 여부에 대한 법리적 근거를 공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인1: (천연덕스럽게) "맞습니다. 그리고 둘째, 재판부의 편향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재판부가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재판을 진행했다는 점을 강조해, 공정하지 않은 재판이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변호인2: "셋째, 기업의 역사와 미래를 흔드는 판결이 얼마나 위험한지 대법원에 강력히 어필해야 합니다. 이번 판결이 AB의 경영권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엄모순: "좋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모든 자료를 준비하고 각 쟁점에 대한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어 주십시오. AB그룹과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변호인1: (속으로) ‘역시 그룹이 지거라고 생각하는군. 명예 같은 소리하고 있네. 개나 물어가라구 해!’




모든 것이 꿈만 같고 아직 꿈에서 깨어니지 않았길 바라는 엄모순은 이후 모든 스케쥴을 취소하고 용산 집으로 향한다. 덕분에 비서실은 풍지박산이지만 신경 하나 쓸 그가 아니다. 비서실은 자기 때문에 존재하는 곳, 월급 따박따박 받아가니, 밤을 새거나 말거나 내가 신경쓸 일 아니고 아니 너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는 역겨운 엄모순.


이태리 최고급 대리석으로 쳐발쳐발한 거실에 들어선다. 떨어지면 열 사람이 바로 즉사할만한 크기의 프랑스산 샹들리에가 바닥에 닿을 듯 길게 늘어져 있는 거실.

내연녀 오민형이 위스키 잔을 들고 거실 통창에 기대어 한강을 응시하고 서 있다. 퉁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바로 통창을 밀어져치고 한강으로 뛰어들 기세다. 긴장감이 감도는 거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직면한다.


엄모순: "결국 이렇게 되다니... 2조가 넘는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다니, 이건 말도 안 돼."

오민형: "당신도 알잖아. 손혜민이 그렇게 나오리라는 건 예상 못 했어? 우리가 더 신중했어야 했어."

엄모순: "신중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어. 법원이 편향적으로 판결한 거지."

오민형 "편향적이라고? 당신이 법정에서 했던 모든 말들이 다 그저 거짓말처럼 들렸나 보지. 그 많은 세월 동안 진실은 어디 있었던 거야?"

엄모순: "내가 한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어. 그런데도 이렇게 됐다고!"

오민형: "진심? 진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법정에서 진심이 통한다고 생각해? 법정에선 전략과 사실로 포장된 증거만이 통하는거라구! 박&조 로펌에서 내노라 하는 그 비싼 변호사들 데려다가 이 꼴을 만들어 놓다니. 법정에서도 딴진 한거야?"

엄모순: "민형아, 난 지금 이혼 소송으로 모든 걸 잃게 생겼어. 이제 와서 나한테 그런 말들로 상처 주지 마."

오민형: "상처? 나한테 상처 준 건 누군데? 당신은 항상 자기 자신만 생각했어. 손혜민에게도, 나한테도."


오민형, 위스킨 잔을 대리석 바닥 위로 내뜸 내던진다. 바닥위로 흐르는 진호박색 30년산 위스키와 프랑스산 크리스털 잔 조각들. 위스키잔이 떨어지며 잔안에서 녹던 얼음 조각이 엄모순의 (돼지)머리 위로 떨어진다.


엄모순: (그냥 오민형의 뚤린 입으로 쳐던저 버리고 싶지만, 신경질적으로 얼음을 쳐내며) "그만해! 나도 지쳤어. 이젠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어."


오민형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엄모순을 몰아세운다.

그 순간, 오민형은 얼음 하나를 톰브라운 아이스 버킷에서 집어 올린다. 엄모순의 상기된 얼굴과 얇은 하얀 루이뷔통 와이셔츠 위로 더 상기된 그의 가슴에 차례로 천천히 집어올린 얼음을 가져다 댄다.


오민형: (요염한 목소리로 귓볼을 삼킬 듯이 귓가에 속삭이며) "당신이 진실을 찾고 싶다면, 그 진실은 바로 여기 있어. 당신의 선택이었고, 그 대가를 치르는 거야."


엄모순은 그녀의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녀의 치명적인 손길을 거부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동시에 거실 통창에 비친 자신과 상대의 모습을 반추한다.

오민형과 엄모순, 말못할 역정과 욕정에 불타며 ~~~~

(19금)

~~~

(29금)

오빠~~~

민형~~~



대리석 거실 위에 (실오라기 하나 없이) 포개져 누워 있는 두 사람.  

오민형: "우리 이제 어쩌지...”

엄모순: "...,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추...."


문득 오민형은 처음 엄모순을 만났을 때를 떠올린다.

어느 파티에서 처음 만나 멀리서 지켜보던 그는 듬직한 대한민국의 그룹 총수였다.

몇 차례 밀당같은 만남 후, 모 호텔에서의 격정적인 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순간, 축배를 들고 있을 지도 모르는 손혜민의 가증스런 얼굴이 스쳐간다.

대통령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온통 머리부터 발끝까지 쇠사슬처럼 정신무장한 손혜민, 그녀의 독사같은 언론플레이와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말도 안되는 나이스한 이미지가 역겹기만 하다. 벌써 열 몇번째 비서를 갈아치운 손혜민의 직원들에 대한 (조선시대 대왕대비도 혀룰 내두를) 왕갑질적인 태도, 독배에 든 사약이 혀로 흘러나오는 듯한 독설, 그리고 엄모순이 감옥에 있을 때 절대 사면해서는 안된다는 손편지를 대뜸 대통령에게 보낸 일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사람들은 모른다. 손혜민이 얼마나 독사같은 ㄴ인지'

오민형은 조용히 읆조리며 엄모순의 단단한 팔에 기대어 스스르 다시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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