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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Aug 05. 2024

계속 땔감 넣어 일을 키우네, 좀 닥...?

(본 글에 포함된 내용은 창작된 소설의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등을 포함한 이 소설의 모든 요소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창작물입니다.)


눈뜨면 AB그룹 관련 기사와 이혼 소송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지만, AB그룹 본사 건물은 평소와 다름없이 분주하다. 그러나 그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장마철 곰팡이처럼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그룹 회장 엄모순과 그의 내연녀 오민형, 그리고 이혼 소송 중인 아내 손혜민의 이야기가 직원들 사이에서 온종일 화제다.

그룹 회장이 벌써 3번이나 학교에 다녀온 스토리는 이제 빛바랜 추억이지만 여전히 학교에 들락날락 하면서 무당의 말을 듣고 그룹의 돈을 횡령해 수천억을 날린 (오늘날에도 믿기 어려운) 사실은 다들 뇌리에 전설처럼 남아 있다. 여전히 무당을 만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룹 내부에서 해결할 의지는 여전히 없어보인다.


엄민용 부회장에 대한 기사도 간간히 인터넷을 달군다. 그에 관한 기사는 오로지 ‘새벽3시반 기상, 5시 출근한다는 새벽별 보기 출근설’, ‘회장단 부회장단은 밤낮으로 그룹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구성원은 해이해 져서 긴장감을 높여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여기저기서 하고 다닌다 해서 더 유명해진 구성원 해이설’, ‘밤낮으로 일은 안하고 명상만 하면서 그룹의 미래 전략을 구걸한다는 명상가설’ 등 도대체 업무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뛰어나며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획기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실천한다는 부회장으로서의 실력과 업무적 혁신/성과 관련한 기사들은 찾아볼 길이 없다.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그런 부지런설, 구성원 해이설, 명상가설 등등의 기사들은 얼마면 인터넷을 도배할 수 있는지, 또 주요 일간지에 실릴 수 있는지 직원들간에 썩소거리, 술안주 거리다. 적어도 3천만원은 들지 않겠냐며 다들 혀를 내두른다. 그룹돈을 그런 쓰레기 기사들에 쓰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엄민용 부회장 기사는 새벽2시에 기상, 그의 비서도 그 즈음 기상한다는 소문이다.


엄민규 부회장은 100술 더 뜬다. 무능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무능이’가 놀러 왔다가 두 손 두 발 다들고 줄행랑쳤다는 게 직원들 사이 농담 아닌 농담으로 회자된다. 그렇게 욕을 쳐먹으니 그렇게 무능해도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 듯 싶다. 도대체 회장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사업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병신을 부회장으로 앉힌 것 부터 회장의 무능함의 극치일 뿐만 아니라, 엄민규 부회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매일 매일 고생하는 구성원들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엄민규 부회장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구성원이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이런 엄민규 부회장에게는 ‘장애인에겐 비난보다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라는 비웃음과 이 사람 존재 자체가 AB그룹의 제일 큰 리스크라는 현타가 구성원 사이에서는 오늘 내일 일이 아니다.


마침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룹 회장, 사촌동생 엄민용 부회장, 회장의 동생 엄민규 에 대한 시의 적절한 비유가 구성원들 사이에 회자된다. 세 사람의 삶의 근원과 힘의 원천에 대한 비유들이다.

엄모순은 ‘샤머니즘’
엄민용은 ‘우주기운’
엄민규는 ‘생각 없음’

도대체 AB그룹 회장, 부회장들은 뇌는 없고 오로지 무당과 잡신들과의 접신만이 살길 임을 믿는 무뇌인간들인가. 그나마 그룹의 위상 덕분에 한국에서는 내노라 하는 대학들 나온 우수인재들이 집결해서 떠받히고 있을 뿐, 본인들 손으로는 사업을 제대로 해본적도 없는 회장 부회장들의 무능함이란 이제 말 하기도 입만 아플 지경이다. 부모 잘 난거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신세들이니 오로지 외부 힘과 소스에 의존해야 그나마 자존감을 세울 수 있을 지경이니 무당이니, 명상이니 그런 것들에라도 내세워야 하는 처량한 처지다. 주인이 집에 돌아오길 창밖으로 처량하게 기다리는 강아지보다도 못한 수준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룹의 지분을 상속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수십만명의 그룹 구성원의 미래를 이렇게 허망하게 좌지우지 하고 있다니. 하루가 멀다하고 회사들간의 합병과 회사 매각 소식에 그룹 구성원들은 좌불안석인데.




한편 오늘도 여느날과 다름 없이 외부의 소문과 비난은 아랑곳 없이 육체의 니즈를 채우고 있는 엄모순 회장과 내연녀 오민형.

거실 3면 통창엔 한강의 밤과 그들의 육체가 번갈아 가면서 비쳐진다.

나이탓인지 요즘은 일을 끝내고 나면 땀이 온몸에 흥건한 엄모순 회장.

멕켈란 50년산이 찰랑이는 크리스탈 잔에서 아이스 큐브 몇 개를 꺼내 우걱우걱 씹는다.

바로 옆에서 오민형은 맥켈란 50년산을 잔이 부서질 기세로 가득 쏟아 붓고는 얼음도 없이 한 숨에 들이킨다.

관계 전부터 이미 홀짝 홀짝 몇 잔을 마신 터라 취기가 전신에 퍼져 뇌가 위스키에 절여진 상태다.


오민형: "야, 엄모순! 대체 언제까지 이 짓거리 할 거야? 빨리 그 늙다리랑 이혼 마무리 짓고 나랑 결혼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살아야 돼?"

엄모순: "지금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재산 분할 문제도 있고..."

오민형: (말을 탁 칼같이 자르며) "재산? 돈? 그게 그렇게 중요해? 당신 눈에는 돈밖에 안 보이나 봐. 나는 뭐야? 당신한테 나는 그냥 돈보다 못한 장난감이야?"

엄모순: "그렇지 않아. 하지만 2조원이라는 거액을..."

오민형: "아, 듣기 싫어! 그 돈 다 줘버려. 어차피 당신 같은 재벌 회장한테는 푼돈이잖아. 그렇게 돈이 아까우면 나랑 헤어져. 당신 눈에는 돈만 보이니까!"

엄모순: "너는 이해 못할 거야. 이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야. 회사 지분 문제도 있고..."

오민형: "아, 진짜 토나올 것 같아. 당신 그렇게 회사, 돈, 지위가 중요해? 나는 뭐야? 당신 인생에서 나는 대체 뭐냐고! 그냥 한낱 첩에 불과한 거야? 당신도 그렇고 그 위선으로 가득한 독사같은 손혜민 그년도 역겨워!"

엄모순: "그렇지 않아. 나도 너와 함께 하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오민형: (썩소를 날리며 오페라 소프라노톤으로 외친다) "하!! 함께 하고 싶다고? 거짓말이 18단이구나! 당신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도 믿을 수 없어. 당신 그냥 나 가지고 놀았던 거지? 이제 와서 그런 말장난으로 날 속일 수 있을 거 같아?"

엄모순: "미안해. 나도 힘들어.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오민형: "기다려? 더 기다리라고? 내가 바보야? 당신 말에 또 속아서 몇 년을 더 기다려? 이제 끝이야. 당신이 결정 못 하면 내가 결정해 줄게. 내일 당장 손혜민 보자구 해서 빨리 끝내달라고 할거야! 무슨 짓이라도 할거야!"

엄모순: "제발 그러지 마. 내가 어떻게든..."

오민형: "늦었어, 엄모순. 당신이 선택한 거야. 돈과 지위를 선택한 거지.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 장단에 놀아나지 않을 거야. 끝이야, 다 끝났어!


항소심 판결이 나온 직후 매일 매일 ‘헤어질 결심’이지만, 이런 레퍼토리도 이제 지겹다.

엄모순은 이 모든 상황이 모두 꿈만 같다.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이 정말 병신같다. 내일 어떻게든 빨리 이 일을 마무리 지을 묘수를 변호인단과 상의해야겠다 생각한다. 이렇게 매일 밤 시달리는 것도 신물이 날 지경이다.




한편 우리 주인공 A부장은 벌써 한달 내내 김인혁 상무에게 시달리고 있다. 매주 열리는 위클리 미팅이 두렵다. A부장은 그 미팅이 얼마나 두리뭉실하고, 비효율적인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위클리 미팅에서 빠질 수는 없었다. 본인이 계속 보고를 요청받고 있는데다 항상 새로운 업무가 할당되기 때문에 빠지는 순간 현장감을 상실하고 아무도 하려하지 않는 허접한 일만 결국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일로는 성과로 인정받지도 못할 뿐더러, 연말 고과도 바닥인 건 명확관화하다. 무리한 요구는 항상 빗발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정확히 한 달 전 일을 문득 떠올린다. A부장은 그날도 위클리 미팅을 위해 준비한 자료를 들고 회의실에 들어섰다. 그는 자신이 적은 사례가 수많은 방식 중 하나일 뿐임을 알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미래지향적이고 수익 창출의 밑거름이 되는지 임원진에게 전하고 싶었다. 일주일전, A부장은 팀장에게 유럽의 B산업 동향을 집중적으로 스터디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이 제안이 좋은 인사이트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상사인 김인혁은 달랐다.

정확히 한 달 전 김인혁 상무실 (재연):

김인혁: "이걸 해서 뭘 얻을 건데?" (김인혁 상무는 매섭게 몰아친다. 얼굴에 심술보가 태백산맥처럼 뻗힌데다 나이도 10살이나 어린데 말끝마다 반말이다. 어린 거야 회사 생활이니 어쩔 수 없고 보고체계가 있으니 그렇다쳐도 고래고래 소리지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들다. 막무가내로 논리도 없이 벼랑끝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미칠 지경이다.  (이런 화술로 사람들을 달달달 볶아 실적을 채우고, 전무들과 사장과 골프치고,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2리터씩 마시며 2차 3차까지 달릴 뿐만 아니라 막차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언니들도 깔끔히 처리하는 프로정신으로 무장해서, 어린 나이에 상무를 달았다는게 정설처럼 소문이 파다하다))

A부장: 그냥 BBC 분야에서 어떤 일들이 있을지 알아보..."

김인혁: "겨울에 눈내리는 소리 하지 말고. 무슨 인사이트를 얻을 거냐고!!!"

A부장: "다음주에 스터디해서 알아보..."

김인혁: "일을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해!! 그러니까 쓸데없이 일도 많고 야근도 맨날 하는 거지. 머리가 나쁘면 수족이 고생이야! 이런 쓰레기 같은 보고서 프린트 하느라고 인도네시아 나무들 다 베어져 죽었쟎아! 그 나무들 그대로 뒀으면 광합성이라도 하지. 너 광합성 할 수 있어!? 결론을 내놓고 일하라고!!"

(40분간 잔소리)

~~~


그로 부터 1주일 후,

A부장, 같은 사안을 다시 보고한다

(그 사이에 날밤새며 스터디는 끝난 상태였다.)

김인혁: "그래서 무슨 인사이트를 얻을 건데?"

(같은 질문 계속. 임원 놀이하기 정말 쉽다. 그냥 같은 질문만 계속 하면 된다.)

A부장: "현재 경쟁사들은 이렇고, 재료는 그렇고,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A부장, 준비한 자료를 세세하게 요목조목 설명한다.

김인혁: "거 봐, 그렇게 방향을 잡아놓고 일을 해야지. 다음 주에 이거 스터디 한다고?"

A부장: "네," (A부장 이미 스터디를 끝냈지만 조용히 대답한다.)

김인혁: "방향을 다 아는데 일을 왜 또 일부러 더 해? 일을 효율적으로 하라니까!!. 이미 다 아는데 왜 굳이 그거에 시간을 쏟아? 여유가 많어 아주?"

(1시간 잔소리)

~~~~

김인혁: "다음 주에 뭐 할 건지 생각 없어? 흐름을 머리에 넣고 일해야지 닥치는 일만 하고 있음 뭐해? 프로세스도 없구만! 바빠 죽겠는데!! 너네 월간, 연간 업무계획 다시 잡아서 보고해!!"


A부장은 차주 업무를 준비하며, 상사의 비약적인 논리로 인해 아무것도 적을 수 없는 무한의 늪에 빠졌다. 다음 주, 다다음 주에 해야 할 일을 무한정 앞당겨서 하라는 요구는 워라밸은 물론이고 업무의 디테일까지 모두 무너뜨린다. 조직과 개인이 특정 기간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무한정 미래를 현재로 당겨오는 통에 이미 몇 달간 할 일을 다 해치우고 있어야 하는 비정상적인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다.

한 술 더 떠, 실무자가 한 달 정도 걸릴 프로젝트를 2주나 3주로 단축하는 것도 아니라, 사흘, 나흘로 줄이라는 요구가 허다했다. A부장이 안 된다고 말하면, 일하는 자세와 방식으로 한두 시간 욕을 먹기 일쑤다. 그 잔소리 듣기 싫어 그래서 그냥 알겠다고 하고, 한두 시간이라도 버는게 허다했다. 도저히 안 된다고 뻗으면, 김인혁 상무는 선심 쓰는 척 일주일을 준단다.


지치다 못해 A부장이 껍데기만 들고 가서 보고하면, 김인혁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한 달 잡은 일을 일주일 만에 끝내면 일이 정상이겠는가? 겉으로는 계속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경과 보고를 하면서 실제로는 없는 디테일을 채워나가야 했다. 그래서 실제 결과물은 엉망진창이었고, 들어가는 시간은 곱절이다. 일이 제대로 될 턱도 없고, 밤은 밤대로 세야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주말에도, 화장실에서도, 샤워하는 순간에도 계속 일해야 한다.

이번주 보고도 결국 같은 패턴. 같은 영화를 몇 년째 보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데자뷰도 이제 토나올 지경이다.

머리에 희뿌연 안개가 끼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A부장의 화가 화성에 닫을 기세다.




열이 모락모락 아지랭이 처럼 올라오는 우리 A부장은 직원 라운지로 향한다. 그나마 눈치 덜보고 화를 삭힐 수 있는 공간. 왜 다른 직원들이 담배를 피러 지하 소굴로 시간마다 향하는 지 이제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담배는 싫은 A부장. 그냥 라운지에서 커피 한 잔 하며 머리라도 식혀야 이 지옥같은 소굴에서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다.

직원 라운지에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채 한숨을 쉬고 있는데, 바로 뒷자리에서 웅성하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지만) 귀에 박힌다.


    "엄 회장이 이혼 확정 증명서를 신청했데,"


한 직원이 속삭인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도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서두를 수 있지?"

(매일 밤 오민형에게 시달린 엄모순은 변호인단과 급하게 상의 후 결국 이혼 확정 신청서 제출이라는 말도 안되는 수를 두고야 말았다.)

그들은 엄모순 회장이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에 ‘확정 증명’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신문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재판부가 그 신청을 거부했데. 아직 이혼 소송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니까."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장의 행동이 이해불가다. “초딩보다도 못함 놈”부터 시작해서 그룹의 익명 게시판에는 한 직원이 신랄한 글들과 댓글이 1초가 멀다하고 계속 올라온다.


    "이혼 확정서 신청이 그렇게 급해?"

    

    "평판 리스크가 이제 리스크도 아니고 이미 터진 폭탄이라 잔불만 끄면 될 거 같아?"

    "깨달음도 없고 전략도 없고, 국민정서 이해도 못하고... 본인이 그렇다 해도 주변에서는 대체 뭐 하는 거냐고."


직원들의 댓글은 날카로운 풍자로 이어진다.

    

    "아니, 결혼식에 안 불렀는데 어떻게 알고 가요. 아니, 이혼을 안 했는데 어떻게 이혼이 돼요?"

    

    “그 여자가 가스라이팅 하는 가봄? 그룹본사 빌딩 못 가서 안달이라는데?”

    

    “진짜 이런 상병신도 없을 듯”

    

    “예상대로 기사 댓글은 악플만 가득.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까짓일 하나도 처리를 잘 못하는데 기업 운영은 어떨까 하고 의구심을 확장시키는 것이 제일 문제임!”

    

    “우리 회장 참 찌질. 첩질을 할거면 처/첩 구분해서 명확히 선긋고 하던가 재벌회장이라는 게 첩한테 휘둘려서 지 앞가림도 못하는 거 보면 뭔가 안타깝다”

    

    “AB그룹 측은 회장 관련 개인적인 건이라 입장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혼재판에는 회사가 아니 그룹 전체가 갑자기 소환되서 총 동원되지 않았는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건지 좌괴감이 들 정도라니까…..”

   

     “인상도 점점 안좋아지네..욕을 하도 쳐먹어서 그런가…”

    

    “왜 저럴까 정말….”

    

    “ㄱㅈㄱㅈ 하는구나..부끄러움을 상실하셨나…”

    

    “그거 아님? 이혼확정 박고 등본에 배우자로 등록해서 만일에 변고시 상속 받도록 하기 위해서..그룹 구성원 엘리트들 뽑아 성장시켜봐야 회장 새장가 프로젝트 한방이면 그룹이 휘청거리는구나…”

    

    “그치 사생아 및 씨다른 자식 올려서 유류분이라도 빨리 땡겨주고 싶은가봄”

    

    “아니 이정도면 지능에 문제 있는거 아님?..상황판단이 이정도로 안된다고?”

    

    “엄가녀석 얍삽하기까지 하구나”

    

    “돈은 주기 싫고 이혼은 확정하고 싶다고?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아님 첩이 들볶나?”


댓글 중에는 회장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책임한지 강조하며, "상고 전날 요청하는 성의라도 보이던가,"라고 비꼬았다. 엄모순 회장이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에 대한 해석도 이어졌다. 내연녀 오민형이 빨리 이혼을 종결짓고 정식으로 데뷔하는 것을 문자로 전화로 그리고 밤마다 보챈다는 설이 결론이었다.

(매일 밤 오민형에게 시달리는 엄모순 회장의 모습을 다들 꾀뚫고 있다. 안봐도 그림이니까)

다른 직원의 한 마디가 직원 라운지 전체에 울리는 것 같다. 마치 동굴에서 울리는 소리마냥 공명을 일으킨다.


계속 땔깜 넣어서 일을 키우네. 좀 닥치지?



한편 A부장은 보고 후 다시 받아 든 숙제에 숨이 턱턱 막힌다. 벌써 저녁 6시 30분. 별 수 없이 야근이다. 동료들과 함께 지하 식당으로 향한다. 동료1이 부동산에 밝아 동료1이 끼면 부동산 얘기가 거의 반이다. 부동산이 다시 오른다는 얘기로 시작해 20억 로또 분양 얘기로 이어지더니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동산 얘기다.

동료1: (음식을 입에 물고) 오늘 인터넷에 재밌는 글이 하나 올라왔더라구요. 부동산 까페에 올라온 글인데, 한 30대 여성이 시댁의 지원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었어요.

동료2: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아, 나도 봤어요. 시댁에서 과천에 있는 33평 아파트를 마련해줬다는 거죠?

동료3: 그래, 과천 집에다가 새 차까지 뽑아줬다던데. 근데 시부모님이 여러 가지 조건을 붙였더라고요. 예를 들면 주말마다 성당에 가자고 한다든지, 제사를 같이 준비하라든지.

동료2: (한숨을 쉬며) 참, 결혼이 쉬운 게 아니네요. 근데 그 아파트 이름 뭐였더라? 기억나요?

A부장: (언제 얘기에 낄까 그 순간을 찾다가 아는거 하나 나와 불쑥 낀다) 그거요? ‘과천래미안원마제스티-디에이치푸르지오써밋-글로리아에스테이트스카이프리미엄리조트’ 였나? (기도가 막혀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아파트 이름 말하다 토할 기세다) 하긴, (눈치를 살피며) 그 정도 지원 받으면 저 정도 요구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동료1: (웃으며) 맞아요. 이름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네요. 근데 시댁이랑 그런 걸로 다투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은데.

동료2: 그 여성 분도 친정에선 많이 지원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친정 엄마가 식당 운영하면서 자식들 키웠다던데, 결혼할 때 3000만원 지원해줬다지요.

동료3: 3000만원이면 큰 돈이긴 한데, 시댁이랑 비교하면 차이가 크죠. 시댁은 대기업 임원이었던 시아버지에 국회의원이었던 할아버지까지 있다고 하니까요.

A부장: 남편은 서울 토박이라 서울이나 서울이나 다름없는 서울 딱붙은 과천을 떠날 생각도 없고, 그러니 더더욱 시댁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을 거 같아요. 뭐, 서초디에이치자이더프레스티지럭셔리팰리스리버뷰헤리티지 같은 데서 사는 것도 아니고.

동료1: (웃으며) 그러니까요. 남편도 자신이 같이 가니까 괜찮다고 했다던데요. 근데 매주 성당 가는 건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동료2: 매주 성당 가는 거 말고도 제사 준비하고, 2주에 한 번씩 같이 식사하고, 육아도 주로 아내가 맡아야 한다고 했다쟎아요. 그거 다 맞춰주려면 힘들겠더라고요.

동료3: 그럼, 시댁이 아무리 심성이 좋다고 해도 요구하는 게 너무 많으면 힘들죠. 강남래미안롯데캐슬로얄에스테이트스카이뷰마운틴디럭스빌리지 이런 곳에서 살더라도 쉽지 않은 일일 거 같아요.

A부장: (다행히 이 기사는 읽은터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네티즌들도 반응이 다양하더라구요. 일부는 그 정도 지원 받았으면 어느 정도 맞춰줘야 한다는 반응이고, 일부는 그걸 강요하는 시부모님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고.

동료1: 댓글 중에 “복종은 아니지만 저 정도도 하기 싫으면 과천 집은 포기하셔야죠”라는 게 있더라구요. 나 같아도 그 정도 지원 받으면 좀 맞춰줄 것 같아요.

동료2: 맞아요. 비슷한 댓글도 봤어요. “받을 건 다 받고 염치가 없네”라거나 “결혼 허락 해준 것만도 신기한 케이스긴 하네요” 같은 댓글도 있던데요?

동료3: 참, 결혼이란 게 쉽지 않네요. 근데 그 여성이 언급한 아파트 이름이 또 뭐였더라? 강남래미안원파라다이스스카이파크플래티넘에비뉴리조트였나?

A부장: 그런듯요. 결혼 전에 시댁이랑 이런 문제를 더 많이 상의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그나저나 나도 ‘과천래미안원마제스티-디에이치푸르지오써밋-글로리아에스테이트스카이프리미엄리조트’ 살고 싶더라구요. 커뮤니티가 끝내준다던데? 관악산, 청계산, 우면산, 양재천 뷰 끝내주고, 전형적인 배산임수에 단지내에 폭포도 흐른다구....

동료1: 결혼이란 게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의 문제도 포함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네요.


부동산 얘기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 지 모르는 A부장.

A부장 (속으로) 그나저나 다음주 위클리까지 보고서를 어떻게 끝낸담…..




그 시간, 그룹 회장, 부회장단, 각 계열사 CEO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지 대책회의로 분주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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