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티브 Antibes Aug 12. 2024

우리는 누군가의 갑이며 누군가의 을이다

대한민국의 새이름-갑을병의 나라

(본 글에 포함된 내용은 창작된 소설의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등을 포함한 이 소설의 모든 요소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창작물입니다.)


지칠대로 지쳐 야근 후 집으로 돌아온 우리 A부장.

씻는 둥 마는 둥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 소파에 털석 주저앉는다.

    순간 요란한 벨소리

와이프 A++의 스맛폰이다. 와이프는 잠시 아들방에서 아들과 아웅다웅 하는 중인 것 같은데 그녀의 스맛폰 화면에는 학부노X라는 수신처가 떠 있다.

연신 울리더니 울음을 멈춘 스맛폰.

    바로 문자가 띵!

    학부모X: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아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요?


순간 우리 A부장은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다.

밤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전화를 하는 학부모X의 만행도 만행이지만, 문자 내용도 싸가지가 바가지다.

그만큼 학교 업무 시간 외에는 전화 하게 하지 말라고 잘 학부모들을 타이르라고 A++에게 당부 했건만 무용지물이다.

아들과 실갱이 후 1년은 더 늙어보이는 우리 천사표 교사 (A부장의 와이프) A++ 등장.


A부장: 전화왔었어요. 학부모 전화 같은데 이 시간에 왜 전화질이야..미친거 아닌가…

A++: (톡 쏘아보며) 모 용건이 있나보져. 아 근데 이 학부모는 좀….내가 감당이 안되네…

A++은 자초지종을 A에게 털어놓는다.


며칠전 A++의 교실 (재연)

학부모X: 선생님, 우리 아이가 음악에 소질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첼로 수업을 특별학급에 넣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장애인 특별학급이니까 더 특별하게 더 신경써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어머님, 아이의 음악적 재능을 지원해주고 싶으신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현재 학교 예산과 프로그램 구조상 첼로 수업을 별도로 운영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학부모X: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아이가 첼로를 배우고 싶어 하는데, 학교에서 그런 지원도 못 해준다는 거예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겁니다. 학교에서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가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밖에 없겠네요.

A++: 어머님, 말씀해주신 내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학교 내에서 가능한 모든 지원 방법을 검토해보겠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학부모X: 제약이요? 그건 선생님이 무능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 제가 요구한 대로 하지 않으면, 교육청에 가서 선생님과 학교 전체에 대한 민원을 넣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원하는 걸 학교가 못 들어줄 이유는 없잖아요?

A++: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한 아이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추가로 논의할 방법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A++의 얘기를 듣고 있는 부장 A는 화가 머리 끝까지 받힌다.

순간 오늘 김인혁 상무 보고 때 일이 오버랩되며 어쩌면 자신의 처지나 A++의 처지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욱하며 A++에게 적당히 하라고 말하려는 순간.


A++: 어제도 전화왔더라구요. '선생님 그냥 전화해 봤어요. 긴장 하시라구요. 호호호' 이러면서......그 엄마는 안그래도 유명하다구 하더라구, 벤츠타고 다니며 교장실 교무실 들쑤시는 건 일도 아니고 원하는대로 교사가 안따르면 교육청에도 맨날 전화해서 교육청 담당 사람들도 혀를 내두른다구. 교육청 담당자는 왜 자기한테 직접 전화오게 만드냐고 나한테 난리구……

A부장: (오만상을 찌푸린다)…..

A++: 학부모가 무슨 신분도 아닌데 다들 그래서 ‘공노비’라고 사기저하가 이만 저만이 아니에요.

A부장: …..

A++: 그래도 애가 이뻐.

A부장: (못마땅)…

A++: 나 아팠을 때 며칠 쉬었쟎아…다시 학교 갔더니 ‘A++선생님 아팠다면서요. 이젠 괜찮아요?’ 하면서 서툰 말로 눈알이 반짝이며 얘기하는 데 애 엄마 생각이 나긴 했지만 애 잘못은 아니니…

A부장: …..

A++: 오늘도 애한데  주말에 모해? 했더니 ‘뽀로로요’ 하며서 눈망울이 반짝이는 데 어찌나 이쁘던지….


우리 부장 A는 늘 이런 천사표 A++과 결혼한 걸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때로는 A++의 A부장 본인 보기에 지나친 열정과 헌신이 못마땅할 때가 많았다.

밤9시를 넘겨 오는 전화도 늘 정성스럽게 받고, 수업 준비도 어떨 때는 새벽을 넘겨 준비하는 그녀를 볼 때면 안쓰럽기까지 했는데,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것은 그녀의 정성이 결국 그녀를 구원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녀의 바운더리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이 그것이었다.

이런 사명감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A부장이지만, 결국 그런 사명감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에 차마 더 말리지는 못했었다.

그냥 건강 헤치지 않고 점심 잘 챙겨먹고 (특수학급 학생들 돌보고 점심도 먹여줘야 할 때가 많아 정작 본인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할 때가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비타민 챙겨먹으라는 말 만 계속 해 줄 수 밖에.




8시 뉴스가 계속 틀어져 있었던 것을 이제 눈치 챈 우리 부장 A.

엥커가 오늘 서울 강남 한 까페에서 있었던 일을 보도하고 있다.

CCTV에 찍힌 화면과 까페 사장의 넋두리가 화면을 채우고 있다

[장소: 서울 강남 한 고급 카페 내부]

손님 손언폭: (커피를 마시며) 오늘도 실망이네. 이 정도밖에 못 하나요? 이따위 서비스로 장사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카페 주인: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고객님.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손님 손언폭: (비웃으며) 노력? 그딴 거 필요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완벽한 서비스지, 엉망진창을 만회하려는 노력 따위가 아니에요.

카페 주인: (참고 있던 분노를 억누르며)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손님 손언폭: (의자를 뒤로 젖히며) 이봐요, 이게 다예요? 내가 이런 쓰레기 같은 커피를 몇 번이나 마셔야 되는지 모르겠네요. 여기 주인이 이 모양이니 직원들도 엉망이죠.

카페 주인: (안절부절)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하면 고객님 화가 풀리실까요?

손님 손언폭: (그것도 모르냐는 어이상실의 표정) 무릎이라도 꿇으면 모를까 ….

카페 주인: (어쩔 수 없다는 듯 무릎을 꿇으며) 정말 죄송합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손님 손언폭: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요. 앞으로도 내가 여기 올 때마다 이런 대접을 해줘야 할 거예요. 알겠어요?

카페 주인: (고개를 끄덕이며) 네, 고객님.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손님 손언폭: (무시하며) 그럼 이 커피는 공짜로 해줘야겠네요? 이따위 커피에 돈을 내고 싶진 않으니까.

카페 주인: (조용히)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엥커는 이 사건을 보도하며 얼마전 강남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있었던 일도 언급한다.

[장소: 강남아크로디에이치롯데캐슬로얄에스테이트스카이뷰마운틴디럭스빌리지 단지 주차장]

입주민 하만용: (차에서 내리며) 이게 뭐예요? 주차장은 엉망이고, CCTV 각도는 여전히 안 맞고. 이러니까 경비원들이 필요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죠.

경비원 김민수: (급하게 다가와)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입주민 하만용: (신랄하게) 조치, 조치!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알아요? 말만 하고 행동은 없잖아요. 이래서야 어디 믿고 맡길 수 있겠어요?

경비원 김민수: (무릎을 꿇으며)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더 신경 쓰고 처리하겠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입주민 하만용: (멸시하는 눈빛으로) 이런 게 다예요? 무릎 꿇고 죄송하다고 하면 다 해결되나요? 당신이 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이런 꼴을 보는 거잖아요.

경비원 김민수: (눈물을 참고) 네, 맞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입주민 하만용: (차가운 목소리로) 다음이 또 있으면 안 되죠. 이제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당신들 전부 교체할 거예요. 알겠어요?

경비원 김민수: (고개를 깊이 숙이며) 네, 명심하겠습니다.

입주민 하만용: (무시하며 지나가면서) 정말 한심하군요. 제발 제대로 하길 바래요.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촘촘히 얽혀 있는 이 한국 사회, 아니, 어쩌면 인간이 사는 이 세상 전체가 돈이 계급인 게임판에 불과한 건 아닐까? 돈 뿐만이 아니다. 문제는 이 갑질의 연쇄 반응이다. 누군가에게 한 방 먹으면, 그걸 못 참고 자기도 누군가에게 갑질을 한 번 휘둘러줘야 직성이 풀리는 거다. 이러니 우리 사회가 갑질 복수극의 무한 루프에 빠져버린 게 아닐지. 마치 누군가의 스트레스 해소제가 되는 을들, 그야말로 갑질 사슬놀이의 말단 희생양들이 되고야 마는 사회. 결국 그런 연쇄반응의 최상단에는 재벌회장이 있다. 아니 재벌회장 위에 또 블루하우스가 있으니 웃픈 현실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갑질놀이의 끝은 어디일지.

우리 부장A는 한참을 그런 생각에 잠긴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그 갑질의 손길들이, 그리고 그 속에서 힘겹게 발버둥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그저 억울하게만 느껴지는 그다.


‘겉으론 모두가 자유롭다고 믿고 살아가지만, 실상은 누구나 목줄을 쥔 누군가의 손아귀에 매달려 있지. 몇 천 년 전의 노예나 지금의 우리나,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뭐가 있을까. 조선시대 노비와 지금의 우리, 그 고통의 모양새만 다를 뿐이지.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처한 환경을 원망하고, 자유와 부를 갈망하지만, 정작 그 자유가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건 아닐까. 권력과 돈 앞에선 자존심도 잊고, 그저 고개를 숙이며 아첨을 일삼는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이 현실, 사실은 우리를 더 깊은 족쇄로 얽어매고 있을 뿐인데 말이야.

"월급의 노예" "사회적 관계의 노예"라고 스스로를 조롱하면서도, 진정한 노예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이들. 그들은 겉으론 화려해 보여도, 내면에선 이룰 수 없는 욕망에 시달리며 결국엔 자기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노예들은 아닐지. 진정한 자유란, 내 손으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주어진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 한국 사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 속에서 돈과 명예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겉으론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 있는 진짜 노예들이다.

결국 중요한 건, 내게 닥친 상황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어. 내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나는 노예가 될 수도 있고, 주인이 될 수도 있는 법이지.’


부장A는 다시금 생각한다. 김인혁 상무의 이해불가인 태도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보고서의 내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을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회사라는 굴레 속에서도 자신을 갇히지 않게 할 능력, 그리고 그 능력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결국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법이니까.



한편 A++은 침대에 누워도 마음이 편치 않다. 머릿속엔 여전히 교사 카페에 올라온 학부모 갑질 사연들이 맴돌고, 그들의 악질적인 요구들이 그의 정신을 잠식한다. 현실의 무게가 그를 짓누른다.

A초

학부모: 선생님, 우리 애가 이번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요? 그게 선생님 수업에 대한 평가라는 걸 모르시나요? 이대로 가면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서, 선생님 자리를 없애버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다음 시험에서 또 이런 결과 나오면, 그땐 정말 후회하게 될 겁니다.

B초

학부모: 우리 애가 체육 시간에 다쳤다고 들었어요. 선생님, 이게 누구 책임인지 잘 아시겠죠? 제대로 관리도 못하고 애를 다치게 만들었으니, 법정에서 책임지실 각오하세요. 내가 한 번 물면 절대 안 놓는다는 거, 아시죠?

Y초

학부모: 선생님, 우리 애가 매일 밤새도록 숙제를 한다고요? 선생님이 그걸 몰랐다는 건가요, 아니면 알면서 괴롭히는 건가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내가 학교를 뒤집어놓고 말 겁니다. 교사로서 자격이 있는지부터 재평가 받으시게 될 거예요.

V중학교

학부모: 선생님, 우리 애가 교과서를 잃어버렸다고요? 그걸로 벌을 주겠다고요? 만약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선생님 몫인 거 아시죠? 나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고요. 상처 입은 애 하나로 인해 선생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두고 봅시다.

T초

학부모: 선생님, 이번 학부모 모임에 참석 안 하시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해보셨어요? 내가 선생님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시죠? 그걸 이용하지 않게 하려면, 꼭 참석하시길 바랄게요.

G초

학부모: 선생님, 우리 애가 방과 후 활동에서 원하는 걸 못했다고요? 이게 다 선생님 잘못 아닌가요? 다음 번에도 우리 애가 원하는 걸 못하게 된다면, 학교 전체를 난장판으로 만들 각오하시죠. 선생님 커리어도 그때가 끝일 테니까.

R초

학부모: 선생님, 우리 가족이 다음 주에 중요한 여행을 가는데 그때 시험을 본다고요? 시험 날짜를 바꾸지 않으면, 내가 학교에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드릴게요. 정말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신 거죠?

C중학교

학부모: 선생님, 지난번 교외 활동에서 우리 애가 늦게 돌아왔다고요? 이게 선생님 책임 아니에요? 변호사한테 이미 상담 받았고, 이건 충분히 소송감이라고 하더군요. 빠른 시간 내에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선생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죠?

D고등학교

학부모: 선생님, 우리 애가 영어를 못해서 특별 수업이 필요하다고요. 그런데 만약 선생님이 이 요청을 무시하신다면, 제가 어떻게 나올지 잘 아시죠? 교육청에 가서 선생님 경력 끝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거 잊지 마세요. 선택은 선생님 몫입니다.


하나씩 사연을 다시 읽는 데 울컥하는 A++.

가슴이 답답하다. 문득 옆을 쳐다보니 세상 고민은 혼자 다하는 듯한 부장A의 얼굴이 웃프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는 갑이고 또 누군가에는 을인 복잡한 거미줄에 옥죄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그 시각 엄모순 회장과 부회장단, 각 계열사 CEO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그룹의 지분을 높일 수 있을지 ‘해먹을 결심’으로 분주한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