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셨는지요?
좀 뜬금없지만,
올해 내내 제 머릿속을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질문들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나는 작가인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리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올해 들어서 이미 한 차례 ‘쉰다’는 이유로 휴재 공지를 한 적이 있었기에, 또다시 휴재를 알리는 글을 올리는것도 다소 민망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지기엔 마음이 쓰이고, 그렇다고 매끄러운 변명을 지어내자니 그것도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를 반복하다가 인사드리기에 좋은 시기를 놓쳐버렸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시간은 스르르, 그리고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구독하고 있는 여러 작가분들의 글조차 챙겨 읽지 못해 속으로 (마치 빚진자의 심정으로) 조용히 죄송한 마음을 품고 지냈었습니다.
‘나는 작가인가’라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지자, 바로 다음 질문이 줄줄이 따라왔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란 누구인가.'
책을 한 권이라도 출간한 사람만을 작가라 부를 수 있을까?
인터넷 플랫폼에 꾸준히 글을 올리기만 해도 작가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그럼 나는 어디에서, 어떤 글을 써야 하지?” 라는 고민으로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브런치라는 공간과 어울리는 글의 종류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미 다양한 장르의 글을 멋지게 쓰고 계신 분들이 많기에, 제가 이런 논의를 단정적으로 말할 입장은 아닙니다. 다만 ‘적어도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해외 생활 경험을 담아 브런치북을 발간했고, 여행기 형식의 책도 몇 권 묶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래 품어왔던 욕심이 슬쩍 고개를 들었습니다.
“소설도… 써볼까?”
“이런 계절엔 시도 한 편 써보고 싶은데…”
그렇게 여행기, 해외 생활 에세이, 소설, 시까지 여러 장르의 글들이 뒤섞어 제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브런치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기 시작한 거죠.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는 여행기와 해외 생활 이야기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IT 트렌드, 경제, 투자(주식, 부동산 등)에 대한 글도 쓰고 싶어졌습니다.
이러한 주제들도 물론 책으로 엮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IT나 경제, 투자는 ‘트렌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영역입니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책으로 묶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정작 독자들에게 필요한 타이밍에 전달되지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보 제공용 글이라면, 정보 제공에 특화된 플랫폼이 더 어울리겠다” 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브런치에서 이 영역의 글을 쓰는 것은 적어도 저에게는 ‘정보 전달’이라기보다 쓰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고, 글쓰기 근육을 단련하는 연습장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정보 중심의 글은 정보에 맞는 플랫폼에서, 그것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써보자는 작은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다음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 이 영역에 더 어울리는 다른 플랫폼이 있지 않을까?”
그 고민 끝에, 불과 얼마 전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개설해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또 하나의 고민은 소설이었습니다.
새로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자극하는 개인적인 사건들이 몇 건이 있었고, 그 덕분에 “한 번 제대로 써볼까?” 하는 동기부여도 제법 되었습니다.
이미 습작에 가까운 소설 한 편(정확히는 일부)을 브런치북으로 불쑥 조심스럽게 발간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의문이 커졌습니다.
“연재 소설이라는 장르가 브런치와 잘 어울리는가?”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새로운 소설을 시작한다면 이번에는 다른 플랫폼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소설을 책 한 권으로 단번에 세상에 내놓는 방식이 아니라, 매주 혹은 매일 새로운 회차를 연재하는 형식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연재 구조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플랫폼,
특정 장르를 갈망하는 독자층이 이미 모여 있는 플랫폼,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들의 피드백을 빠르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런치에서 습작 소설을 연재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써나가는 것 자체도 벅찼지만,
이 글을 관심 있게 읽는 독자가 있는지
실제로 읽는지, 읽는다면 어디까지 읽히는지
그리고 읽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런 것들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물론 귀한 시간을 내어 꾸준히 읽어주신 독자분들과 동료 작가분들이 계셨고, 그분들께는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다양한 독자층으로부터 조금 더 빠른 반응과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면,
소설의 전개에도,
소설에 도전하는 제 마음에도
훨씬 큰 동력이 되어줄 것 같았습니다. 특히 ‘회차 연재’ 형식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논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저에게 브런치는 결국 에세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플랫폼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의 정의를 하나 내리게 되었습니다.
“내 브런치는 에세이와, 에세이를 농축한 형태의 시를 써 내려가는 나만의 인터넷 집이다.”
여행기와 해외 생활 이야기로 문을 열었던 이 집에 잠시 소설도 들이고, 정보 글도 들이려고 했었지만, 돌고 돌아 다시 ‘나를 돌아보고, 나를 말하는 글’ 즉 에세이로 중심을 잡고 싶다는 마음이 선명해졌습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의 마음도 어쩌면 대부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나는 작가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어디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이 질문에 완전히 깔끔한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제가 내릴 수 있는 작은 답은 이 정도입니다.
“나는 브런치라는 집에서는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집들을 하나씩 지어가며
소설도, 정보 글도, 또 다른 형식의 글도 써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마 당분간은 이 고민을 계속 안고 가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이렇게 글을 쓰며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 집을 찾아와 제 글들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늦었지만, 그리고 여전히 어설프지만, 진심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다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이곳에서 제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제 다른 집도 시간이 되시면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소 쌀쌀해진 날씨지만 쾌청한 가을 날씨, 듬뿍 만끽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