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내리며 (2)

by 앙티브 Antibes


커피 원두가 도착한 날,
나는 작은 행성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캐나다의 로컬,
낯선 위도에서 볶아진 밤의 씨앗을
핸드밀에 넣고 천천히 돌리면
시간이 잘게 부서져
공기 속에 고요한 숲을 펼친다.


첫 번째 취기,
향이 내 마음의 지도를 바꾼다.

드립포트의 얇은 물줄기,
뜨거운 투명함이 원두 위로 내려앉을 때
향은 다시 피어나
내 안의 먼 겨울을 조용히 씻어낸다.


두 번째 취기,
비어 있던 곳들이
따뜻한 갈색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한 모금.
나는 마시기보다
그 향을 몸 전체로 읽는다.
목구멍이 아니라,
어깨와 등, 손끝과 숨 사이로
한 잔이 스며드는 의식.


세 번째 취기,
오늘이란 이름의 작은 성찬.

이렇게 온전히 이해되는 것들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인다.
감사라는 말이 너무 작아서
잠시 침묵을 더한다.


창밖엔
봄이 성큼 다가오는 듯한 바람.
휑한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며
무언의 문장을 써 내려간다.


유연하게,
그러나 중심을 잃지 않고.
휘어지되 꺾이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깊은 용기인지

바람이 가르쳐준다.


나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향의 온도를 느낀다.
나뭇가지처럼,
흔들림 속에서도
나의 중심이 조용히 남아 있음을.


이 순간을,
이 한 잔을,
바람이 지나가도 남는 온기를
감사하며
또 한 번,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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