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유수는 과거, 현재는 연극 축제의 장으로 거듭난 Avignon
- 아비뇽은 교황의 아비뇽 유수로 유명한 도시 -
딱 이 정도의 교과서 지식만 간당간당 머리에 담고 리용 여행과 마찬가지로 큰 기대와 연구 없이 무심코 떠난 여행.
늘 여행이라는 새로운 도전이 그렇듯이 늘 새로운 발견과 의외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12월 첫째 주부터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이 때만 해도 유럽의 웬만한 도시에는 이미 크리스마스 마켓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할 때라 그리고 발걸음과 호기심이 안내하는 대로 떠난 여행이어서 횡재 느낌으로 도시를 돌아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도시의 중심 광장이나 시청 등 주요 이정표 주변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유럽의 크리스마켓이 그러하듯, 아비뇽에서도 그 시청 앞 광장(Place de l'Horlogue)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오전 시간이라 화려한 조명은 켜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노엘이라는 단어와 함께 마음이 한껏 부양되어, 교황청 관광을 시작하기 전 워밍업을 하기에는 충분한 눈요기거리였다.
아마도 이 사진은 관광안내소 안 (혹은 시청 안 전시장?)에 마련된 소소한 전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크리스마켓에서 차한잔을 사 들고 몸을 녹이면서.
시청 앞에 아비뇽 유수 700주년을 기념하는 현수막이 늘여뜨려져 있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1309년이 아비뇽 유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장 역사수업인셈^^
우리가 아비뇽을 방문했던 2009년 당시 교황 유수 7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1년 내내 열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포스터처럼 벌써 크리스마스라니. 6월에 프랑스남부에 도착하여 각종 행정절차와 정착에 애쓰느라 광속으로 지나간 시간들. 이제 좀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하니 벌써 연말이다. 교황청에서 12월 19일 큰 행사가 열리는 듯. 그 때까지 아비뇽에 머무르지는 않지만, 마음이 설렌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어떤 행사가 예정되어 있는지 미리 확인을 해 보고 오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이제 숙제를 할 시간. 아비뇽하면 반드시 들러야 할 교황청. 특히 아비뇽 교황청 내부 투어가 인상적이었는데 천천히 사색하면서 중세 건물을 찬찬히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교황청이라기 보다는 중세의 성을 관찰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1309년에 교황이 정착하셨다니 실로 오래된 건축물인데, 색조감은 단색톤이고 세월이 곳곳에 묻어나오는 빛바램과 낡음의 현장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큰 중세 건물의 내부를 구경할 기회는 많지 않아서 제법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던 것 같다.
아비뇽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중세 도시. 모든 도시가 사실 그러하겠지만 특히 아비뇽은 시대의 사건과 함께 극명한 양면이 공존하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14세기에는 강제된? 가톨릭의 성지로서 중세 유럽의 중심이었고, 현재는 한 여름에 열리는 연극 축제로 잘 알려진 연극인들의 성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방문했던 12월에는 그런 이중적 이미지를 가진 도시인지는 몰랐었다. 후에 파리에 사는 프랑스인 친구가 여자 친구와 한여름에 아비뇽에 간다면서 놀러오지 않겠냐는 연락이 와서, 왜 한여름에 아비뇽을 가는건지 의아해 했더니, 오히려 왜 오지 않는건지를 더 의아해 했던 기억이 새롭다. 여자친구가 예술계에 종사하는터라 더 그랬던 것도 있었겠지만, 한여름 프랑스 축제로는 제법 명성이 있는 축제라, 내가 근처?에 살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더 의아했었으리라.
교황청은 역시 사진 한장으로 담아내기가 어려웠다. 드론이나 특수장비를 동원하여 공중 부양을 통한 촬영이 필요할 듯. 12월 겨울이라 그랬기도 했지만, 워낙 중세건물인데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오는 외벽의 오래됨이 아름다운 성?이라는 첫인상은 아니었던 기억이 새롭다. 대신 사이즈가 제법 커서, 입구 광장과 안뜰 산책도 제법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있다.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에서 패배 후, 교황의 정치력은 서서히 저물고 있었고, 결국 교황이 로마에서 쫓겨와 아비뇽에 정착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때 건설된 교황의 거처가 아비뇽 교황청이라고 한다. 교황이 오시면서 교황이 드시는?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이 지역 와이너리도 유명해 지기 시작지면서, 와인 생산량도 늘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교황이라는 단어가 대놓고 들어가 있는 라벨인 Châteauneuf-du-Pape 는 아주 고가의 와인에 속한다. Côtes du Rhône이 비교적 가벼운 와인의 대명사라면 Châteauneuf-du-Pape는 바디감이 있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채 70년이 안되는 시간 동안만 교황이 거주했던 곳이었지만, 그 사이 아비뇽에 많은 영향을 끼친 셈이다.
교황청의 안뜰. 나중에 프랑스인 친구로 부터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매년 여름 이 안뜰에 연극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성대한 행사가 열리거나, 이 안뜰에서 연극이 실제로 공연되기도 한다고 한다. 어떻게 아비뇽이 연극인들의 성지가 되었는지는 리서치가 필요하지만, 안뜰의 크기로 보았을 때 제법 사이즈 있는 공연이 가능할 듯 싶었고, 교황청 안뜰의 벽에 projection도 가능해, 다양한 Visual effect를 동원한 특색 있는 무대가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광원렌즈가 톡톡히 역할을 한다. 가까이 사물들을 당겨와 관찰해 보면, 디테일에 놀랄 때가 제법 많다.
세월과 무수한 인적의 흔적이 묻어나는 문. 중세부터 존재했을 터인데, 왠만하면 새 문으로 교체했을 법도 한데, 여전히 그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꼭 새 것이 좋은 것은 아닌 법. 문 안의 또 다른 작은 문은 무슨 용도 였을까.
교황청 내부 투어의 시작은 교황청의 구조 파악으로 부터.
역사적 이벤트들이 곳곳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어두운 표정들. 관망하는 표정들. 아비뇽 관광은 조금 마음이 무겁다.
중세 건축물의 내부에서 빛이란 큰 역할을 하는 하는 듯 싶다. 전시가 되는 공간외에는 상상외로 텅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았는데, 하여 단조로워 보이는 중세 건축물의 내부 공간을 묘한 빛의 예술이 조용히 채우고 있다. 이 공간을 거쳐갔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오묘한 적막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교황이 거처하던 시절에는 이 공간이 어떻게 채워졌었는지 궁금해졌다.
빛의 예술이 곳곳에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은 막혀있는 벽난로. 예전에는 사용했던 것일까.
왠지 무거워 보이고 둔탁해 보이는 거대한 문. 외부에서 보이던 웅장함은 단조로운 내부에 비해 역설처럼 느껴지지만, 화려한 내부가 아닌 심플한 내부가 더 궁금증을 자아낸다.
교황들의 모습들이 이렇게 전시되어 있다.
의복 전시도 몇 군데서 발견. 이 때 즈음엔 약간 지쳐 오디오 설명에 제대로 귀귀울지를 못했다.
중간중간 내부에서 외부를 관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교황청에서 내려다보는 아비뇽의 구 시가도 다소 단조로운 모습이다.
세상의 슬픔을 모두 안고 계신 모습. 교황청 바로 옆에 위치한 노트르담 성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무심히 담소를 다누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이에 비해 다소 역설적이다.
노트드담 성당의 꼭대기.
2층이었던가 3층이었던가, 교황청의 테라스 같은 공간을 구경할 수 있는 출구에서 찍은 사진. 바깥에서 보던 교황청의 일부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천장의 일부에만 그려진 회화. 교황을 선출하는 장면이라고 혼자 상상해 보았다. 왜 다른 천장에는 그림이 없을까?
기프트 샵. 특이하게 다른 기프트 샵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와인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Côtes du Rhône(꼬뜨 뒤 론)으로 유명한 지역이기도 하고 교황의 와인이라는 Châteauneuf-du-Pape 레이블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 것도 같았다.
다시 교황청의 외부로. 교황청 내부에서 관망하던 십자가와 작품들을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었다.
교황청 바로 옆에 위치한 노트르담 성당.
청명해진 하늘과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지고 가는 십자가.
십자가의 뒤에서는 가시면류관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조용히 교황청과 노트르담 성당 투어를 마무리하며. 기대로 시작한 내부 투어였으나, 외부에서 압도당했던 큰 규모에 비해 단조로운 내부와 전시장 외에는 텅비어 있는 내부의 공간들이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투어로 마감됐다. [청명한 하늘과 공기] vs. [중세 고성의 빛깔과 십자가]가 더 무겁게 또 극명하게 대비된다.
교황청 투어 후 Pont Saint-Bénézet(생 베네제 다리)를 찾아 나섰다. 생 베네제 다리 앞으로 소규모 와이너리가 들어서 있다.
끊어진 다리로 유명해진 생 베네제 다리. 아비뇽의 다리로도 알려진 곳. 침략과 홍수의 아픔이 점철된 다리라고 한다. 여전히 재건되지 못한채로 남겨져 있다.
다시 앙티브로 돌아가야 할 시간. 리용의 화려함에 비해, 단조로움과 아픔이 느껴졌던 아비뇽.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나름 대비의 투어였다. 여름 화려한 연극 무대로 가득찰 아비뇽은 지금 우리가 느낀 적막함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 줄 것을 기대하며. Au rev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