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렌 Jun 13. 2023

김 사건

기적


 1992년 8월 19일, 백일이 갓 지난 마리아를 안고 남편과 나는 중국을 향해 한국을 떠나왔다.  

그때는 중국과 한국이 수교하기 전이라, 공산국가로 가는 우리를 다시는 보지 못 할 것으로 여긴 가족, 친구, 교회 식구들이 배웅 나온 김포공항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우리도 주님께 대한 헌신과 대단한 결단으로 중국 연변을 가기 위해 천진으로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연변은 조선족들이 사는 곳이라 언어가 통하니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생활적인 면에서는 여러 가지가 불편했다.  

그곳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둘째 한나를 임신했다.  

환경적으로는 열악하고 심리적으로는 외로와서인지 심한 입덧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우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운은 없고, 속은 메스 꺼려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구운 김이 생각이 났다.  

김만 있으면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 중국 땅에서 어찌 김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아니다.  포기하자, 이건 먹을 수 없는 거야' 나 스스로에게 타일러 보지만, 

'안돼! 안돼! 할수록, 김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겨우 먹고 싶은 것 못 먹는다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 질책해보지만, 

어쩌란 말인가!  이제는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다.  

하루 종일 김만 생각하다 울부짖으며 내뱉은 말, 

"하나님! 저 김 좀 먹게 해 주세요!."  먹을 수 없다는 것 뻔히 알면서, 좌절 속에서 내뱉은 신음소리였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출근하고, 

그날은 마음과 몸이 힘들어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문을 여니, 

우리 서울교회 조집사님이 서 계신 것이 아닌가? 

"아니 집사님!   중국에는 웬일이세요?" 

"응 나 여기 잠깐 왔는데..." 하며 성큼성큼 들어오셔서는, 

"나, 오늘은 바쁘거든..." 하시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내놓는 물건들이, 

오징어, 한국 캔디, 초콜릿...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

그리고는... 

"이건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것 이집사(조집사님 부인) 몰래 가져온 거야." 하며 꺼내 놓은 것은 바로 '김'이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내가 놀라 말도 꺼내기 전에 조집사님은 

"내가 오늘은 바쁘니까 다음에 올게." 하며 바삐 일어서신다.  

아니 내가 중국에 와서 한국사람을 얼마나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어쩌다 시장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도 너무 반가워 집으로 모시고 와서 교제하고

그래도 아쉬워 식사까지 대접하고 보냈는데, 

서울에서 오신 우리 교회 집사님이 이렇게 바삐 가신단 말인가! 

"아니 집사님!..."  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응,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들릴께" 하며 집을 나서신다.  

며칠 후 다시 오시겠다던 조집사님은 그 이후 우리 집에 다시 오시지 않았다  

우리가 중국에 사는 12년 동안에도... 

그때 왜 조집사님이 중국에 오셔서 우리 집에 오신 것인지, 지금도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나는 김을 끌어 안고 어디서 기운이 났는지, 주방으로 달려가,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구운 다음, 

그 김으로 밥 한 그릇을 먹어치웠다.  얼마나 맛있던지...! 

그제서야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아니 내 신음소리를 들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후로 우리 집에는 이상한 일이 생겼다.  

우리와 같은 시기에 중국에 온 우리교직원에게도 김에 대해 말한 적이 없는데, 

우리집을 방문하는 한국사람은 김을 가지고 왔다.  

중국에서 이 귀한 김이, 우리 집에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쌓여갔다.  

가까이 계신 분들께 나눠드리는데도, 계속 김은 끊이지 않았다.  

입덧하던 것이 쉬워지고 출산할 때까지도 김은 계속 공수되어 우리 집에 끊이지 않았다.

한나를 출산하고 한나 첫돌이 가까울 때 즈음, 

문득 조 집사님이 김을 갖다 주신 이후로 이 귀하고 맛있는 김을 끊이지 않고 계속 먹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제는 김이 끊어지겠지.' 생각했는데, 

그 후에도 김은 끊이지 않고, 우리 집에 계속 공수되었다.  

참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한나가 세 살쯤 되었을 때, 

나는 저녁식사 준비를 하며 우리 집의 마지막 김을 꺼내 굽고 있었다.  

'우리 집에 드디어 김이 떨어지는구나.'생각하며.

"하나님!, 참 오랫동안 일하셨네요..." 중얼거리면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들어서자마자 서류봉투를 내민다.  열어보니 그 속에 김이 들어 있지 않은가! 

"이게 웬 김이래요?" 했더니, 

중국에 들어와 있는 한국건설회사가 있는데, 그곳에 갔더니, 

한국에서 뭐가 왔다고 주기에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져왔다고.  

이렇게 우리 집에는 '김' 기적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중국 연변에도 서서히 한국 물건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백화점에 한국 옷들이 보이고, 서시장에 초코파이와 신라면이 들어왔을 때, 

드디어 서시장에서 김을 살 수 있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 집에 김 공수가 멈쳤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무려 5년 여 동안 하나님께서 그 귀한 김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신 것이었다.  

내가 원하면 살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김' 공급을 멈추신 것이다. 


  나는 우리 집 '김'사건을 통해, 

너무나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그리고 내가 신음할 때에 나보다도 더 아파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내 마음에 저려온다. 

나의 신음소리가 얼마나 마음 아프셨으면...   내가 얼마나 불쌍했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