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해외 이주 노동자의 하루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이 깨어져 버린 그런 날에 이 글을 남긴다.
그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시간이지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또 실제로 나에게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 2017년 1월, 곽 춘원 씨 일기장에서
톱질이나 망치질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은 건 아니었지만 곽 씨에겐 유독 끌질이 손에 붙지 않았다. 번번이 힘이 들어가야 할 방향과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아까운 목재를 망가뜨리기 일쑤였고, 뭉뚝해진 끌날 또한 하루가 멀다고 갈아주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끌질은 목공의 시작과 끝이었던 모양이다. 곽 씨가 컬리지에서 처음 시작한 목공 수업도 끌질이었고, 입사 후 처음 맡은 작업도 끌질이었다. 끌질이라고 해봐야 판재 모서리에 튀어나온 플라스틱 라미네이트를 깎아내는 일에 불과했지만, 입사 첫날부터 곽 씨는 끌의 밑면을 위로 뒤집어 들고 작업을 하려다 슈퍼바이저에게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 후 삼 개월의 수습 기간 동안 곽 씨의 주된 일은 완성된 가구를 포장하거나, 판재를 목공 기계에 밀어 넣고 다시 받아내는 따위의 허드렛일이었지만, 이와 함께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전문적인 일로써 끌질은 종종 그를 괴롭혔다.
한편으로 곽 씨가 종종 끌질을 맡았다는 것은 회사가 그의 직책을 어셈블리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곽 씨로서는 시간이 지나고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새로운 인력이 들어오게 되면 회사는 곳곳의 작업 공정에 두루 적용시켜보고 최적이라고 판단되는 자리에 그들을 배치했다. 이러한 과정은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3개월의 수습 기간 내내 지속되기도 했다. 슈퍼바이저는 신입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면서도 그의 동작이나 태도 하나하나까지 주의 깊게 살펴본 후, 주변의 동료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어쨌거나 어떤 연유에서든 회사는 곽 씨에게서 기계를 다루기보다는 손작업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모양이지만 곽 씨로서는 그저 반복되는 끌질이 따분할 따름이었다.
그가 입사한 오월은, 국경일인 빅토리아 데이 다음날이었다, 이제 막 겨울에서 벗어났지만 단번에 여름으로 향해 달려가는 유난히 더위가 빨랐던 오월이었다. 곽 씨가 첫 출근하던 날도 무척 무더웠지만, 그래도 바람은 아직 선선했다. 회사 뒤편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공구함을 꺼냈다. 컬리지에서 이태를 함께 한 공구들이었다. 곽 씨가 신고 있던 안전화 또한 그 햇수를 같이 했다. 곽 씨는 그 사이 신발이 많이 낡았다는 생각을 했다.
출근 복장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무난한 대로 청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일이 돌아가는 방식도 전혀 모르는 낯선 나라에서의 첫 출근으로 곽 씨는 매우 긴장했고, 회사 건물로 향하는 걸음걸이마저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그때 마침 주차장 한쪽 면을 바람막이처럼 막고 서있던 키 자란 나무들 사이로 예의 그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었다. 바람은 곽 씨의 복잡한 머릿속을 살짝 흔들어주었고, 덕분에 곽 씨의 긴장에는 약간의 설렘이 보태지기도 했다.
회사 출입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서니, 젊은 여직원이 이름을 묻고는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작은 회의실로 안내했다. 곽 씨는 그녀의 이름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달 전에 제출한 그의 이력서를 무시했던 사만다일 것이다. 곽 씨가 주섬주섬 회의실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자 사만다는 계약서와 보안서약서, 세금신고서 등속의 입사에 필요한 서류들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 복사해야 하니까 신(SIN) 카드는 지금 저에게 주세요.
신 카드라 함은 사회보장번호(Social Insurance Number)의 줄임말로 우리의 주민등록증 같은 기능을 한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없으면 캐나다에서의 경제 활동이 불가능하다. 유학생 신분으로 있다가 워크퍼밋을 신청한 상태의 곽 씨는 번호만 받았을 뿐 카드는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 그런 거 없는데요. 대신 서비스 캐나다에서 이걸 받아왔어요.
그는 준비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대국민 연방정부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기관인 서비스 캐나다 담당자는 앞으로 카드 형태로는 발급되지 않는다며 이 종이 한 장을 프린트해서 주었었다. 어렵게 그 얘기까지 사만다에게 덧붙였다. 사만다는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곽 씨를 주시하더니 일단 알았다며, 계약서 빨리 읽어보고 사인하라고 재촉하고는 회의실을 나갔다.
곽 씨가 계약서를 비롯한 서류 작업을 마치자, 사만다는 입구 반대쪽으로 난 문을 열고 공장 안으로 곽 씨를 이끌었다. 작업장에는 벌써 반바지에 소매 없는 옷차림의 직원들이 땀에 젖은 채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사만다는 임시로 슈퍼바이저 역할을 맡고 있던 바실에게 곽 씨를 인계한 뒤 여기까지가 자기 업무라는 듯 곧바로 돌아서서 사무실로 돌아갔다. 루마니아 출신인 바실은 굵은 얼굴선에 구레나룻에서부터 시작한 희끗희끗한 턱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있었고, 그 생김새보다도 걸걸하면서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서 그가 동유럽 출신이란 걸 알려주고 있었다.
- 네 이름이 뭐니?
곽 씨가 신고 있던 안전화를 발로 힘껏 밟아보더니, 됐다는 듯 바실이 던진 첫마디였다. 신입 직원으로서 여러모로 주눅이 들어있던 곽 씨는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 내 이름은 스티븐이야. 스티븐 곽.
그러자 바실은 걸걸한 목소리로 꾸중하듯. 그러나 눈빛은 따뜻하게 되물었다.
- 그런 가짜 이름 말고 네 진짜 이름이 뭐냐구?
곽 씨가 살짝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바실이 덧붙였다.
- 나, 그거 네 이름 아니라는 거 알아. 자동차 세차해주는 한국 친구가 있거든.
- 그래? 내 한국 이름은 춘원이야. 춘원 곽. 그런데 너는 발음하기 어려울걸.
바실은 몇 차례 소리를 따라 하더니 일단 알았다며, 기본적인 시설 안내와 함께 근처에서 작업하던 몇몇 동료를 소개했다. 쟈니와 알프레도, 폴, 그리고 프리실라가 마침 그의 근처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바실, 쟈니, 알프레도는 환갑 줄에 있어 보이는 시니어였고, 폴은 턱수염을 뾰족하게 기른 30대 후반, 프리실라는 가정이 있어 보이는 30대의 여자였다.
곧바로 바실은 목공 기계들이 배치된 작업실로 곽 씨를 데리고 갔다. 기계 작업실에는 비교적 젊어 보이는 라이언과 브랜디가 있었고, 바실은 라이언에게 곽 씨를 데리고 일을 시켜보라고 지시했다. 라이언이 곽 씨에게 처음 맡긴 업무는 판재 가장자리에 우리말로 장부촉이라 불리는 다울을 꽂을 구멍을 기계로 찍어내는 일이었다. 곽 씨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첫 작업에서부터 작은 실수를 했다. 기계와 판재가 어설프게 밀착되었는지 판재에 구멍이 조금 비켜서 나버렸다. 라이언이 돌아왔을 때, 그는 판재를 들여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곽 씨는 라이언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지 몹시 초조해하며 기다렸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라이언은 더는 곽 씨에게 그 일을 시키지 않고 옆 작업실로 데리고 나갔다. 그러고부터 시작한 일이 끌질이었다.
곽 씨의 영어 소통 능력을 눈치챈 라이언은 친절하게도 클램프를 이용해서 판재를 고정한 후, 끌을 잡고 라미네이트 테이프를 깎아내는 방법을 직접 시연으로 알려주었다. 곽 씨는 지켜본 대로 실수하지 않고 해내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끌을 놀렸다. 손은 더디고 크고 작은 실수로 작업 속도는 전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곽 씨는 끌질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어떻게 공장이 돌아가는지 상황도 살펴두어야 했다. 맞은편 작업대에선 프리실라가 벤치 모양의 의자를 샌딩하고 있었고, 가끔 쟈니에게 무엇인가를 묻곤 했다. 쟈니는 완성된 캐비닛에 손잡이와 경첩을 달았고, 그의 손을 거치면서 일련의 공정이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프리실라와 쟈니 사이에 위치한 알프레도는 두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혼자 흥얼거리며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첫 출근의 첫 번째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던 무렵, 끌질에 여념 없던 곽 씨 맞은편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짐을 싸고 있는 프리실라의 모습이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곽 씨가 입사한 그 날, 프리실라는 3개월의 수습 기간 만료를 며칠 앞두고 해고되었다. 오후 네 시가 넘어 매니저 댄과 잠시 자리를 비운 후, 눈물을 글썽이며 작업대로 돌아와 개인장비를 챙겼다. 비록 모든 게 낯설고 긴장된 하루였지만 곽 씨에겐 첫 출근의 기쁨과 낯선 나라에서 취직할 수 있었다는 희열이 있던 그 날이었다.
그녀의 해고 사유가 무엇이든 간에 입사 첫날, 곽 씨의 뇌리에선 뛰어난 기술도 없고, 말조차 겨우 통하는 그가 회사에서 버티기 위한 조건들을 따져보게 되었다. 어찌어찌 들어오기는 했지만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서 최소한 일 년 이상은 버텨야 영주권이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름이 시작했고, 그렇게 여름은 와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