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톱날 #1.2

캐나다 해외 이주 노동자의 하루

by 가나다 이군




어는 비 Freezing Rain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 곽 씨는 삼 개월의 수습 기간을 보냈다. 하루 종일 벗지 못한 안전화 밑으로는 땀이 고였고, 작업복은 오전 여덟 시면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젖어있곤 했다. 평생 해보지 않은 공장 노동을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버텨내던 곽 씨는 그래도 실내 작업이라 캐나다의 강렬한 햇살과 더위는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곤 했다. 매일같이 이십 분 이상 먼저 출근했고, 하루 두 번 있는 십 분간 휴식 시간에도 항상 이 분 먼저 자리에 돌아와 작업을 시작했다. 만나거나 눈이 부딪치는 사람은 누가 되었건 먼저 고개 숙여 인사했으며, 작업장에서는 뛰지 못하게 되어 있는 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잰걸음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삼 개월을 버틴 끝에 곽 씨는 부사장에게 불려 가 계속 같이 일하자는 통보를 받았다.

수습 딱지를 떼었다고 해서 별반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소의 변화가 있었다면 프리실라의 빈 작업대를 정식으로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왠지 작업대를 꿰찼다는 건 한 사람의 목수로 대접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업무적으로는 알프레도의 보조 역할이 부여되었다. 보조 일이란 게 허드렛일과 다른 바 없었지만, 전동 드릴을 이용해 스크류를 박는 다던지, 글루와 네일건으로 걸레받이 부분을 만드는 정도의 일은 맡아서 할 수 있었다. 종종 테이블 쏘를 이용해 목재를 자르기도 하지만 안전을 이유로 꼭 누군가 지켜보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손에 익지 않은 끌질은 수습을 마치고도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공장에서의 일이 곽 씨의 몸에 익어갈 때쯤,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러는 동안 공장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쟈니 할아버지가 정년퇴직으로 공장을 떠났고, 바실은 수퍼바이저 자리를 새로 온 빅톨에게 넘기고 평직원으로 돌아갔다. 사실 그사이에도 공장에는 꽤 많은 사람이 새로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프리실라처럼 해고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회사도 구직자도 크게 연연하지 않아 보였다. 그냥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듯했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를 천직으로 여기고 이십 년 가까이 붙어있었던 곽 씨에게는 생경하기도 했지만, 흔히 말하는 노동 유연성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면서 무엇보다도 공장의 일거리가 현저하게 줄었다. 여름내 분주하게 돌아가던 프레임 프레스도 쉬는 날이 많았고, 더 이상 2교대 근무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지나면서는 한두 시간 정도의 단축 근무는 다반사가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한가하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매니저와 수퍼바이저가 바쁘게 움직이며 뿜어내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런던에 새로 생기는 사립학교와 옥빌의 양로원의 납품이 겹치는 바람에 야근을 거듭하며 찍어내도 일정에 맞추기 빠듯한 모양인데, 그동안 단축 근무다 뭐다 하면서 느긋하다가 막상 닥쳐서 닦달하는 방식은 관리자 생활을 오래 했던 곽 씨의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장의 분주함에 곽 씨 또한 예외일 수는 없어서 아침부터 끌질에 동원되었다.


끌질은 캐비닛 표면과 수평을 이뤄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곽 씨가 터득한 노하우에 따르면 그가 쓰는 일 인치 끌의 대부분인 7/8인치 정도를 목재 위에 얹은 후 나머지 1/8 인치만큼의 날로 모서리 테이프를 베어내야 한다. 이때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째는 적절한 끌 날의 상태이다. 끌 뒷면은 정확히 180도를 이루어 평평해야 하며, 날의 각도는 120도 정도를 유지하는 게 좋은데 너무 둔하면 테이프가 베어지지 않고 밀려서 뭉개지고, 그렇다고 너무 날카로우면 판재까지 베어내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판재와 모서리 테이프의 재질에 따라 끌을 다루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그가 선호하는 파티클보드 합판에 일 밀리미터 플라스틱 테이프를 입힌 캐비닛은 끌질이 수월할 뿐만 아니라 슬슬 베어질 때는 묘한 쾌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들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끌을 다루는 내내 시종 고르게 분배되어야 하는 힘의 균형일 것이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계속된 곽 씨의 끌질은 여전히 캐비닛의 문짝 테두리를 다듬는 일이었다. 온종일 같은 자세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자니 곽 씨의 어깨가 결리기 시작했다. 사실 온몸의 뼈마디가 쑤셨다. 지난 주말부터 몸살 기운이 심해서 그러잖아도 나서기 싫은 월요일 새벽 출근길이 유독 버거운 아침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애저녁에 전화해서 몸 상태를 얘기하고 이부자리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 갔을 일이었다. 하지만 곽 씨는 그럴 수 없었다. 캐나다란 나라에서의 근태가 어떻게 관리되는지도 몰랐을 뿐 아니라 영주권 신청을 위해서 회사의 지원이 필요한 그로서는 아무래도 결근은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이유들 보다는 수퍼바이저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병가를 처리할 자신이 없었다. 영어가 문제였다.

‘그래도 가야지.’ 주섬주섬 작업복 안에 내복과 겨울 옷을 잔뜩 껴입고, 목에는 등산용 목도리까지 두른 채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티브이에서는 월요병에 대한 토크가 이어졌었다. 곽 씨는 여기도 사람 사는 데라 똑같다는 생각을 하며 별조차 보이지 않은 시커먼 새벽에 집을 나섰었다.

곽 씨네 회사는 일곱 시 출근에 다섯 시 퇴근을 정규 시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공장 문은 여섯 시부터 열리고 일 또한 여섯 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곽 씨를 포함해서 몇몇 젊은 친구들은 보통 일곱 시에 맞춰 출근하지만 대부분 숙련공들은 여섯 시에 출근하기 때문에 곽 씨가 일찍 출근한다고는 하나 이미 공장은 작업에 열이 올라 있을 때였다. 쉬는 시간은 오전 아홉 시 반에 십 분, 오후 두 시 반에 십 분씩 딱 두 번뿐이다. 오전 브레이크 시간이 되자 곽 씨는 서둘러 휴게실로 향했다. 아침에 꾸역꾸역 껴입은 속옷과 등산용 목도리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여간 거추장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대문 시장에서 장만한 국방색 깔깔이의 지퍼를 내리자 온기를 품은 끈적한 땀 냄새가 확 솟아 올라왔다. 곽 씨는 얇은 반소매 티셔츠 위에 깔깔이만 남긴 채 모든 옷을 벗어젖혔다. 벗은 옷가지는 라커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었다. 덕분에 곽 씨는 오전 내내 한 번뿐인 십 분간의 휴식시간을 옷 벗느라 모두 날려 버렸다.

다시 작업 시간이 시작되었다. 한결 가벼운 차림으로 작업을 하던 곽 씨는 오른팔로 어깨를 쓰다듬는 척 몸을 돌리며 옆 작업대의 알프레도를 곁눈질했다. 알프레도는 준비된 마지막 문짝을 캐비닛에 달고 있었다. 지난달, 정년퇴직할 때까지 쟈니가 맡아서 했던 예의 그 마무리 공정이다. 알프레도는 곽 씨의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를 받아서 경첩과 손잡이를 정확한 위치에 단다. 쟈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알프레도의 손놀림을 거쳐 가구는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알프레도 또한 쟈니만큼 일손이 빠르고 정확했다. 그러다 보니 선행 작업을 하는 곽 씨로서는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는 노릇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고 단단한 체격을 지닌 알프레도는 반 곱슬의 검은 머리 사이로 제법 흰머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체구와는 달리 굵직한 팔과 다리에는 길고 곱슬한 털이 많았는데 그 아래로 오랜 세월 동안 겪었을 크고 작은 수많은 상처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종종 작업장 안에 울리는 라디오 음악을 크게 따라 부르기도 하고 항상 입에 욕을 달고 지내지만 쉰아홉 살 먹은 소년이라고 불릴 만큼 순수하고 감성적인 성격을 지녔다. 포르투갈 리스본 출신인 그는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포르투갈이 우승한 다음 날에는 호날두의 유니폼을 입고 머리엔 치장이 화려한 응원 모자를 쓰고 출근하기도 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정이 많은 알프레도는 곽 씨를 가장 가까이서 챙기는 이른바 사수다. 목공 일이란 게 어디를 가나 그렇지만 캐나다에서도 대부분 견습제도처럼 돌아간다. 곽 씨 같은 주니어는 시니어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하면서 일을 배우게 된다. 곽 씨도 처음엔 쟈니 할아버지 밑에서 배우기 시작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곽 씨보다 나중에 입사한 닉이 쟈니 할아버지에게 인수인계 겸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면서 곽 씨는 자연스레 알프레도에게로 옮겨져 일하게 되었다. 알프레도 역시 삼십 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고 있는 베테랑으로 내년 일월이면 환갑을 맞이한다. 그런 전문가가 곽 씨의 다음 작업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곽 씨로서는 똥 싸던 힘까지 아껴서 일해도 그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알프레도는 천천히 하라고 속 좋게 얘기하지만 곽 씨에겐 그의 말이 친절로만 들리지 않았다.

- 알프레도는 일손이 너무 빨라.

곽 씨가 알프레도의 작업 속도를 탓하는 순간, 집중이 흐트러지면서 끌을 밀던 곽 씨의 오른손 마디가 힘의 균형을 잃었다. 아니나 다를까 끌의 방향이 어긋나면서 판재의 표면이 심하게 벗겨졌다. 실수가 잦은 곽 씨로서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곽 씨의 입사 면접을 맡았던 총괄 매니저 댄은 입사 후 삼 개월 동안은 언제든지 회사가 곽 씨를 해고할 수 있다고 못 박았었다. 삼 개월의 수습 기간에는 언제든지 아무 사유 없이도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해고할 수 있는 것이 캐나다의 법이라고 했다. 물론 곽 씨는 수습 기간을 무사히 넘겼고, 성실함에 있어서야 여느 한국인이 그렇듯이 인정받고 있다 한들 아무리 사소한 실수라도 지나치게 잦으면 그 또한 해고 사유가 되지 않으란 법도 없을 듯했다. 실제로 전동 드릴로 커다란 책장에 구멍을 내길 몇 번이며, 네일 건과 스테이플스 건을 헷갈려서 유명한 토론토 아이스하키팀 라커룸에 들어가는, 그래서 회사에서는 유독 신경을 많이 썼던 선수 관물대 바닥에도 손톱만 한 구멍을 일곱 개나 냈었다. 그뿐 인가. 합판에 붙여서 가구의 표면을 만드는 값비싼 플라스틱 라미네이트를 적재함에서 꺼내다가 무게를 못 이기고 중심을 잃는 바람에 열두 장이나 깨 먹은 일도 있었다.

곽 씨가 상처 난 판재를 들여다보며 한숨짓고 있자니 알프레도가 ‘뭔 일 있어?’ 하면서 다가온다. 이내 곽 씨의 실수를 눈치채고는 ‘이까짓 거’ 하면서 왁스 크레용을 들고 와서는 라이터 불을 이용해 말끔하게 수선해 놓는다. 곽 씨는 이런 알프레도의 손놀림을 보면서 종종 마술사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도대체 알프레도가 이 마술과 같은 솜씨로 감쪽같이 혹은 교묘하게 숨겨준 곽 씨의 실수가 얼마만큼이었던가.

- 괜찮아, 꽉.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으면 돼. 잊어버려. 포게릿!

알프레도는 곽 씨에게 사람 좋게 말했고, 아내는 이런 알프레도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새끼를 돌보는 어미 새 같다고 했다. 몇 개월의 공장 생활에서 곽 씨가 알게 된 시니어와 주니어 그러니까 짬밥의 차이는 간단했다. 일단 일을 하면서 어느 선에서 멈추어야 하고 어디까지 가야 할지를 아는 경험, 그리고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몸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튀어나오는 해결 방안과 수행 능력의 차이가 그 사람의 연륜을 대변한다는 것이었다.

- 부루스 덕! 하와 유?

이때 마침 곽 씨의 작업대 앞을 지나던 척이 곽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 그리고 근육질의 건장한 체구를 지닌 척은 패널 쏘를 담당하다가 며칠 전 기계작업 부문장이 되었다. 그 이후로 척은 부쩍 말이 많아졌고 사람 대하는 태도 또한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런데 척을 비롯한 공장 사람들 몇몇은 곽 씨를 덕이라고 불렀다. 그의 성씨인 곽의 발음을 설명하기도 어려웠지만, 그네들이 따라 부르기 또한 어려워 된소리로 강하게 발음한 게 발단이 되었다. 처음 오리 소리를 흉내 낸 건 멕시코 출신의 로베르토였다. 그런데 가나 출신의 척은 여기에 한술 보태 부루스 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퍼스트 네임이 도널드도 아닌 느닷없이 부루스라 붙은 건 척이 이소룡의 출신지인 중국과 한국을 헷갈렸기 때문인데, 아프리카에서 온 척에게 동아시아인은 모두 작고 까무잡잡하면서 싸움 잘하는 부루스 리였다.

반면에 바실은 곽 씨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려고 노력했다. 입사 첫날, 스티븐이라는 영어 이름을 들고 출근한 곽 씨에게 대뜸 훼이크 네임 그러니까 가짜 이름 말고 진짜 이름이 뭐냐고 물었던 그였다. 그 후로 그는 힘들게 구강구조를 틀어가면서도 항상 그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었다. 추눤, 충언, 츄원 등 부를 때마다 발음은 달랐지만 어떻게 불러도 곽 씨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 줄 알아들었다. 척이 부루스 덕이라고 부른 어느 날, 바실은 곽 씨에게 왜 네 이름도 아닌데 그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냐고 나무랐었다. 곽 씨는 괜찮다고, 별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바실이 언짢아하는 눈치였다.

- 아임 굳. 하와 유?

곽 씨가 인사를 받아주자 척은 빅톨이 어딨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곽 씨가 조금 전에 오피스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하자 척은 고맙다고 말하고 오피스로 향했다. 공장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도로에 접한 건물 면을 따라 고객이 방문하고 사무직원이 근무하는 오피스가 있다. 오피스 뒤쪽으로 난 문을 지나면 곧장 공장 내부로 이어지는데, 공장은 다시 기계 작업장과 조립 작업장으로 분리되어 있다. 척이 총괄하는 기계 작업장에는 테이블 쏘 두 대와 대이도 쏘, 패널 쏘, 그리고 씨앤씨와 엣지 밴더 등 캐비닛 제작에 필요한 각종 기계장비가 포진해 있다.



곽 씨가 일하는 조립 작업장은 케이스 프레스라는 장비를 중심으로 사면의 벽을 따라 여러 대의 개인 작업대가 들어서 있고, 작업대 별로 작업자가 지정되어 있다. 쟈니 자리를 대신한 닉을 필두로 알프레도가 있고, 그 옆으로 곽 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곽 씨 옆으로도 계속해서 레오, 졸란, 로베르토, 쉰, 바실, 폴, 데이브 등이 벽을 따라 한 바퀴 빙 둘러 서 있다. 그리고 조립 작업장 끝자락에는 스프레이나 페인트칠을 위한 마감 작업장이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건물 뒤쪽 주차장과 맞닿은 위치에 자재창고를 겸하는 운송 및 하역장이 자리 잡고 있다.

잠시 후 척이 오피스에서 나와 작업장으로 돌아갔고, 곧이어 빅톨이 손에 페이 슬립이라 부르는 주급 명세서를 들고 나타났다. 매주 월요일이 되면 수퍼바이저 빅톨은 모든 작업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주급 명세서를 나눠준다. 그리고 그것은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는 사인이기도 했다.

- 땡큐, 구아악!

곽 씨의 작업대 앞에서 주급 명세서를 내밀면서 빅톨은 자기 발음을 평가해 달라는 듯, 점수를 기다리는 수험생 눈빛으로 곽 씨와 눈을 마주친다. 명세서를 받아 든 곽 씨도 웃으며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 땡큐! 빅톨.

바실 대신 공장의 수퍼바이저로 새로 영입한 빅톨은 알프레도와 같은 포르투갈 출신이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항상 단정한 머리와 와이셔츠를 정갈하게 입고 있는 그는 언뜻 봐서는 현장에서 일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잖았다. 특히나 그는 공장 직원들에게 주급 명세서를 나누어주면서 항상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곽 씨 역시 감사하다고 대꾸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공장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태도는 곽 씨의 전유물처럼 되었다. 곽 씨네 공장에서는 다양한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지만 곽 씨처럼 고개 숙여 인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같은 동양인인 라오스 출신의 쉰이나 중국 사람 웡도 그러지 않았다. 공장 사람들은 곽 씨와 인사할 때면 종종 그들도 곽 씨를 따라 고개를 숙이는 시늉을 하곤 했다.

며칠 전 아침에는 빅톨이 곽 씨에게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면서 말했다. 지난 주말에 아들의 여자 친구 가족을 만나서 식사를 했는데 베트남 출신이라며, 부모가 영어를 잘 못 하는 바람에 그저 뭐라고 말만 하면 땡큐, 땡큐 하면서 너처럼 고개를 숙이더라는 얘기였다. 자신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곽 씨는 빅톨의 의도가 무엇인지 언뜻 판단되지 않았다. 그의 사람됨으로 미루어 악의는 아닐 것이라 짐작하고 그저 웃으며 상황이 넘어가길 기다릴 뿐이었다.

드디어 작업 종료 벨이 울리고, 사람들이 도시락을 들고 휴게실로 모여들었다. 다소 비좁긴 했지만 젊은 사람들은 냉난방 시설과 의자가 마련된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는 반면,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휴게실 앞에 있는 바실의 작업대에 모여서 점심을 해결한다. 그런데 이들을 지나친 곽 씨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곽 씨는 주차장에 세워 놓은 자동차 안에서 식사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십 년이 훌쩍 넘긴 연식의 그의 혼다 차량 안에는 작은 접이식 식사 받침대도 만들어 두었다. 이런 곽 씨의 외딴 행동에 대해 한국 같았으면 곧잘 조직에 융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관리대상자로 찍히기에 십상이었지만 여기 공장 사람들은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워낙 개인의 사생활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런 모양이겠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누군가 곽 씨에게 ‘너는 왜 같이 먹지 않고 따로 혼자서 먹니?’라고 묻는다면 김치를 예를 들면서 음식 냄새를 핑계 댈 준비까지 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물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곽 씨도 처음부터 이런 외딴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이유는 영어에 있었다. 아직은 영어가 잘 들리지도 제대로 의사 표현도 넉넉지 않은 곽 씨로서는 여럿이 모여서 웃고 떠드는 가운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혹은 섬처럼 둥둥 떠다니는 게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끼리 얘기하다 웃으면 내용도 모르면서 어색한 웃음으로 포장해야 했고 그러다가 누군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왠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저들이 내 얘기를 하고 시시덕거리는데 나만 그걸 몰라 듣고 태연하게 앉아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더는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 점심시간만이라도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자.’ 이것이 곽 씨가 자동차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이유이다.

주차장 쪽으로 난 문을 열고 나오니 제법 거센 바람과 함께 눈이 날리고 있었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도 눈으로 뒤덮여 안전화의 끈 부근까지 눈에 빠졌고, 곽 씨의 혼다 차량도 눈으로 뒤덮여 겨우 형체만 자동차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곽 씨는 자동차에 쌓인 눈을 대충 쓸어내리고 운전석에 앉았다. 어깨 결림은 등 쪽 날갯죽지까지 타고 내려갔다. 오늘도 힘든 하루다. 그리고 아직 꼬박 반이 남았다. 일단 시동을 걸어놓고 엔진을 덥히며 주머니에서 주급 명세서를 꺼내어 훑어보았다. 본의 아니게 남게 된 몇 번의 잔업 덕분에 주급이 제법 쏠쏠하다. 이번 주말에는 외식이라도 한 번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곽 씨는 조수석에 던져놓은 도시락 가방 앞주머니에 명세서를 아무렇게나 접어 넣었다.



시트를 뒤로 한껏 젖힌 후 가방을 끌어당겨 무릎 위에 놓고 도시락을 풀었다. 오늘은 곱게 말린 계란말이에 미역국까지 보온밥통에 담아 주었다. 맞벌이하는 아내는 아침마다 네 개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아이들은 두 번으로 나누어 도시락을 먹기 때문에 실상 여섯 개의 도시락을 싸는 형국인데, 곽 씨의 도시락만은 항상 별도로 준비했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밥도 실하게 먹어야 한다며 밥과 반찬을 든든하게 준비해주었기 때문이다. 곽 씨는 아직 온기가 식지 않고 남아있는 미역국부터 한 모금 마시고 밥 한술 입에 물었다. 그사이 벌써 꽤 많은 눈이 앞 유리창을 다시 덮고 있었다. 갑갑함을 느낀 곽 씨는 와이퍼를 켜고 앞 유리창의 눈을 닦아 내렸다.

- 여기서는 워셔액 없으면 운전 못 해요.

캐나다 땅을 처음 밟은 날, 공항에서 키치너까지 픽업해 준 김 박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다음 달 이십 일이면 정확히 캐나다 입성 삼 주년이 된다. 그때 곽 씨의 가족이 처음 맞이한 토론토의 날씨도 지금과 같았다. 한국에서의 염려와 달리 그다지 춥지는 않았지만, 토론토 공항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고 있었다. 풍경 좋은 함박눈은 아니었다. 흩날리는 눈은 공항 건물과 회색빛 콘크리트 주차 건물 사이를 쏜살같이 몰려 달아났다가 저만치서 정신없이 흐트러지고는 다시 휘감아 달리기를 거듭했었다. <다음 편에 계속>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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