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톱날 #1.3

캐나다 해외 이주 노동자의 하루

by 가나다 이군

어는 비 Freezing Rain




- 눈이다. 누나, 저기 봐. 눈이야.


입국장 출구를 나서자마자 맡은 편 공항 유리창 밖을 가리키며 찬주가 소리쳤다.


- 당연하지. 여긴 캐나다인데.


그래도 오 학년까지 마쳤다고 연주는 심드렁 아는 소리를 한다. 곽 씨도 눈이 내린다는 사실이 싫지는 않았다. 그래도 왠지 처음 도착한 토론토의 날씨가 ‘이왕이면 맑고 화창하면 좋았을걸’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도착한 시점의 날씨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왠지 눈이란 게 화창한 날씨보다 환영의 분위기는 아닌 듯싶었다.


일부러 찾을 것도 없이 입국장 출구 바로 옆에는 공룡 화석이 전시되어 있었다. 크기나 형태로 보아 곽 씨는 공룡 영화에서 보았던 벨로시랩터의 한 종류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왜 토론토 연고의 NBA 농구팀 이름이 랩터스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찬주야, 저 공룡 이름이 뭔지 알아?


- 아니, 몰라.


유독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찬주는 공룡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끔 선물로 받은 공룡 장난감에도 여느 아이와 달리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런 찬주가 공룡 화석의 이름을 알 리 없고 곽 씨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공룡의 이름을 물은 것은, ‘지금, 우리 가족에게 낯설지만 무엇인가 새롭고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웅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공룡 화석 앞에 놓인 벤치에 짐을 걸쳐놓고 가족이 둘러앉았다. 곽 씨는 노트북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한국에선 번호가 해지되었고, 이곳에선 아직 번호를 부여받지 못 한 곽 씨의 핸드폰은 비행 모드로 잠겨 있었다. 비행 모드를 해제한 후 와이파이 설정을 변경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만치서 입국장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누구누구 이름이 적힌 피켓이 춤을 췄다. 입국 출구 맞은편으로는 팀 홀튼이란 간판을 단 작은 커피숍이 보였고, 그 옆으로 특이하게도 출국장에 있어야 할 듯싶은 캐나다 관련 기념품 가게가 보였다. 밖으로 나가는 출구까지는 인천공항에 비하면 매우 가까웠다. 곽 씨는 예전의 김포공항 국제선 제2청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릴없이 벤치에 앉아서 두리번거리던 곽 씨는 핸드폰을 열어놓고 시간을 확인한다. 네 시 사십칠 분. 인천공항에서 여기까지 스무 시간 가까운 여정이었다. 공항 입국장의 분주함이 제법 잦아들 때까지도 기다리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 여기가 맞을 텐데. 다른 데 공룡이 또 있나?


곽 씨는 시카고 공항에 있는 공룡의 한쪽 다리밖에 안 되어 보이는 크기의 공룡 화석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어쩌면 곽 씨는 공룡의 크기에서부터 실망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공항이든 공룡이든 크기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처음에 공항에 있는 공룡 얘기를 들었을 때, 시카고 오헤어 공항의 규모를 상상했었다. 곽 씨는 나리타 공항에서 접속했던 대화방을 다시 열었다. 보이스톡 버튼을 누르자 ‘땡 때 댕댕 땡 대 댕댕’ 연결 음이 들린다. 이내 예의 표준말로 포장된 부산 사투리의 에이전트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건너온다.

- 도착하신 터미널이 일 터미널 맞으시죠?


- 예. 그런 것 같아요.


- 잘 나오셨어요? 비자는 받으셨구요?


- 예. 별 문제없었어요.


- 그럼, 거기 출입문 옆에 공룡 모형이 있을 거예요. 거기서 기다리시면 되는데.


- 예. 지금 공룡 앞에 있는 거예요.


- 아, 그럼, 김 박사가 도착하셨을 텐데.


곽 씨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 누구요? 김 박사요?


- 예. 벌써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


- 실장님이 나오시는 게 아니었어요?


- 아, 그게요, 제가 일이 좀 있어서, 김 박사님을 보냈어요. 저보다 영어도 잘하시고 저 대신 계속하시던 분이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고 보니 에이전트가 직접 공항으로 나오겠다는 얘기도 없었던 것 같다.


- 글쎄요. 그래 보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연락을 해볼게요. 이상하네요,

말끝이 흐려지며 상대편에서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눈 때문에 길이 막혀서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고. 김 박사란 사람이 십오 분 내로 도착한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 김 박사가 누구예요?


아내도 슬슬 걱정되는지 곽 씨에게 물었다.


- 나도 몰라.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에이전트와의 접촉에서 김 박사란 사람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 나리타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도 그런 얘기는 없었다. 아내에게도 곽 씨에게도 김 박사라면 로보트 태권브이에 나오는 훈이 아버지 김 박사뿐이었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낯선 곳에서 느닷없이 김 박사를 기다리고 있다. 어찌 되었건 곽 씨네 가족은 그를 만나야만 한다. 아직 도착을 못 했을 뿐, 김 박사란 사람이 그들을 데리러 오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듯하다. 덕분에 마음이 좀 놓였는지 곽 씨의 아랫배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 화장실 좀 다녀올게.


십오 분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곽 씨는 두리번거리며 화장실을 찾았다. 배탈과 속 쓰림 현상은 나리타 공항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곽 씨는 비행기를 타면 볼 일을 못 보는 체질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엔 자주 화장실을 들러야만 했다. 아랫배 쪽이 살살 쓰려 오면서 엉덩이 양쪽에 힘을 주고 있지 않으면 얇은 무엇인가가 그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올 듯하였다.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애써 힘을 주어도 말끔히 정리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리타 공항에서부터였던 게 맞아.’


나리타 공항에서는 에어캐나다로 갈아타기 위해 다섯 시간을 공항에서 버텨야 했다. 곽 씨는 우선 갈아탈 비행기 티켓을 발권한 후 옆 코너에 조그맣게 마련된 식료품 가게에 들렀다. 일본이 그러하듯이 아기자기하고 조막만 한 군것질거리가 딱 그만큼이어야 하는 양 넘치지 않게 전시되어 있었다. 곽 씨는 네 개가 들어 있는 모찌 한 팩을 집어 들고 찬주에게는 밀크 캬라멜을 강권했다. 결국, 아이들은 초콜릿과 캬라멜을, 그리고 아내는 오백 밀리리터 생수 한 병을 샀다.


달달달, 달달달달.’


식구대로 하나씩 여행용 가방을 끌고 와이파이가 잘 잡히는 한적한 지역을 찾을 겸, 구경 삼아 공항 구내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곽 씨의 입에는 모찌 한 덩어리가 뽀빠이처럼 물려 있었고, 아내는 계면쩍었던지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라왔다. 마침 방금 비행기가 떠난 듯 한적한 자리를 발견하고는 볕 잘 드는 창가 쪽을 찾아 짐을 내려놓고 둘러앉았다. 이월의 햇볕이 쏟아지는 통 큰 유리창 너머로 꼬리 날개에 기러기가 그려진 일본 국적의 비행기가 여럿 보였다. 곽 씨는 여행이나 출장으로 비행기는 수없이 타봤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밀려들었다. 어디를 향했던지 그때는 돌아올 것을 염두에 둔 떠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편도 항공권을 들고, 돌아온다는 기약 없이 떠나는 것이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곽 씨는 어쩌면 이 길이 마지막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잠깐 해보았다. 기분을 표현하자면 비장함보다는 숙연함에 더 가까웠다.


- 누나, 여기가 일본 땅이야.


찬주가 곽 씨의 침잠하는 상념을 깨웠다. 한국 나이로 여덟 살, 엊그제 유치원 졸업하고 곧장 비행기에 올라탄 찬주는 모든 게 신나 보였다.


- 알아.


찬주 보다 다섯 살이 많은 연주는 와이파이 설정에 정신이 팔려 대답이 건성이다.


-

그러면 나는 이제 일곱 개 나라를 가 본 거다. 프랑스, 파리,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그리고 일본하고 캐나다.


재작년에 다녀온 유럽여행의 행선지를 또박또박 읊는 찬주는 아직 프랑스와 파리가 다른 나라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보다도 캐나다 또한 그저 이전에 여행했던 나라 중에 하나처럼 여기는 모양이다. 곽 씨는 찬주가 이번 여정의 의미를 이해하긴 아직 이른가 보다 생각했지만, 어차피 어린 아들의 양해를 구하고 행하는 처신도 아니었다.


- 네덜란드하고 일본은 빼야지. 그냥 비행기 갈아탄 거니까 땅을 밟은 건 아니잖아.


아닌 건 아닌 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아내가 애들 대화에 끼어들었지만 실상 그 참견도 건성이다.


- 그리고 프랑스와 파리는 같은 나라야, 바보야.


연주 또한 그냥 지나쳐도 될 법한 말로 동생의 심사를 긁는다.


- 엄마, 누나가 나쁜 말 했어. 바보라고.


모든 대화가 끝까지 가봐야만 끝을 아는 것은 아니다.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끝이 있다. 그것은 수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언제나 같은 곳으로 흘러 항상 같은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끝이 보이는 길은 가고 싶지 않다.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곽 씨는 고개를 돌려 낮 시간의 영롱한 빛이 차츰 사그라지는 유리창 너머를 다시 바라보았다. 한국을 떠난 지 이제 겨우 두어 시간 남짓.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이시고 말았다. 어머니는 캐나다행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굳건하게 버텨 서서 자식을 보듬어 지켜줄 것 같은 존재였지만, 언제부턴가 오히려 보듬고 살펴주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 어머니를 한국 땅에 홀로 버려두고 떠난다는 건 불효가 맞았다.



어머니는 장인어른과 함께 집으로 가셨을까? 곽 씨는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셔야 하는 어머니를 위해 장인어른께서는 댁까지 모시겠다 하셨고, 어머니는 괜찮다, 번거롭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 공항 리무진이 편하고 좋다며 출국장 벤치에 앉아서 줄다리기하셨던 터였다. ‘엄마 성격에 아마 버스 타고 가셨을 거야.’ 벤치에 등을 기대어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니 피곤함에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짐 보따리를 만지작거리며 준비와 점검을 했지만 여전히 마지막 점검으로 밤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곽 씨는 백팩에서 모자를 꺼내어 눌러쓰고 잠을 청해 보지만 이번엔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입에선 약간의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 화장실 좀 다녀올게.


- 아까 비행기에서 가지 않았어요?


아내가 물었다.


- 나도 처음인데 일본에 영역 표시는 해야지.


이것도 방문이라면 곽 씨 또한 일본이 처음이긴 마찬가지였다. 깔끔하게 관리된 변기에 앉아서 곽 씨는 눈앞의 짙은 회색 문짝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내 내색하지 못했던 온갖 염려와 걱정이 몰려들었다. ‘잘한 선택일까?’ 따위의 질문은 캐나다에서 사는 내내 떠나지 않을 질문이란 걸 곽 씨는 뻔히 알고 있었기에 애써 외면하곤 했다. 오히려 곽 씨를 흔드는 염려는 어머니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혼자되신 지 이태 만에 장남마저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 살겠다는 얘기를 해야 했을 때부터 이번 결정은 원죄처럼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요, 치유되지 않는 상처일 거라 생각했다. 방법은 단 하나, 보란 듯이 잘 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거기 가면 네가 살 길이 있다는데, 내가 어떻게 말리겠니.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내키지 않는 허락을 대신하시고는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폐암 진단을 받으셨다는 사실도 한국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난 후에 알게 된 곽 씨였다. <다음 편에 계속>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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