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톱날 #1.4

캐나다 해외 이주 노동자의 하루

by 가나다 이군

어는 비 Freezing Rain


그나저나 일본까지는 대한항공으로 왔지만 도쿄와 토론토를 오가는 에어캐나다 노선에 한국 승무원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상념은 어느새 어머니 걱정에서 자잘한 영어 걱정으로 널뛰기하듯 옮겨갔다. 곽 씨는 외국 사람과 소통하는데 두려움은 없었지만 영어를 쓰는 것은 언제나 고되었다. 누구나 그렇게 얘기하듯이 곽 씨 또한 영어만 조금 받쳐 줬어도 서울대 갔다고 푸념하는 일 인이었다.


- 영어야 필요하면 통역 쓰면 되지 뭐 굳이 내가 공부하려고 해? 내 인생에 더 이상 영어란 없어.


차장 진급 심사 때 호탕하게 큰소리치던 곽 씨였다. 통역 쓴다던 곽 씨가 경유지 공항 화장실에 앉아서 영어 쓸 일을 걱정하고 있자니, 변기에 앉아는 있되 헛방귀만 푹푹 거릴 뿐, 통 볼일이 봐지질 않는다. 이건 배탈이 아니다. 그래, 신경성 과민증상이란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순간 이제 비행기를 타면 적어도 열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쳤다. 아뿔싸, 곽 씨는 손에 쥐고 힘을 주던 핸드폰을 펼쳐보았다. 일본이 우리와 시간대가 같으니 표준 동부시간을 쓰는 토론토는 아침 일곱 시께 되었을 터였다. 좀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곽 씨는 인터넷 통화를 시도했다. 화장실이라서 그런지 연결 상태가 고르지 못했다.


곽 씨는 서둘러 가족이 있는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보이스톡으로 마지막 접선을 시도했다. 벨이 울린 지 한참 만에 에이전트가 전화를 받았다. 곽 씨네 가족은 캐나다 현지에서 새로 이주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초기 정착을 도와주는 랜딩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캐나다행이 결정되었고, 그렇다 보니 살림집이나 애들 학교 문제 등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로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곽 씨는 급하게 수소문하여 서비스 업체를 소개받았다. 무엇보다도 물설고 낯설은 곳으로 처음 가서 정착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짧은 영어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에어 캐나다라고 하셨죠? 그러면 일 터미널로 도착하실 거예요. 맞으시죠? 거기 피어슨 공항에 내리셔서, 출구로 나오시면 공룡 화석이 있거든요. 거기 앞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저희가 그리로 나갈 거거든요.


- 입국 수속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건가요?


- 예. 다 끝나고 짐 찾아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왜 사람들 피켓 같은 거 들고 기다리는 데 있잖아요. 거기 밖에까지 나오면 공룡 뼈 전시해 놓은 게 있어요.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거 앞에서 기다리세요.


곽 씨는 결혼 전에 출장 다녀오면서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보았던 공룡 화석이 토론토 공항에도 있나 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때였다.


- 걱정할 것 없으니 안심하고 들어오시고요. 아시겠지만 캐나다는 공항에서 입국 심사할 때 나눠주는 서류가 진짜 비자니까 그거 대답만 잘하시면 돼요. 제가 지금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있거든요? 나중에 문제 생기면 이리로 연락 주세요. 공항, 와이파이 되니까요.


통화를 끝내고 곽 씨는 공항 벤치에 누워 잠깐 잠이 들었다. 얼마 후 탑승 시간에 맞춰 비행기에 오른 곽 씨네 가족은 시작되는 밤에서 더 깊은 밤으로 날아, 아직 밤이 오지 않은 곳까지 날아왔다. 그렇게 열네 시간의 비행 끝에 캐나다 제일의 도시 토론토 땅을 밟았다.


토론토 공항 화장실은 확실히 인천공항이나 나리타 공항의 그것과는 달랐다. 일단 칸막이 아랫부분이 뚫려있는 것이 가장 다른 부분이었다. 돈이 없어서 칸막이가 모자란 것도 아닐 텐데, 왜 여길 이렇게 뚫어놓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길게 생각할 문제도 아니었다. 여전히 빈 방귀만 몇 차례 뿜어내고는 화장실을 나와 세면대 앞에 섰다. 손을 가져다 대면 물이 나오는 구조였다. 손을 씻고 나서 물 묻은 손으로 얼굴의 눈곱 정도 떼어내고는 거울을 바라봤다.


- 이 길은 우리를 위해 열린 새로운 살길이다. 히브리서 십 장 이십 절.


곽 씨는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마치 너만 들으라는 듯이 작게 속삭였다. 곽 씨는 캐나다행을 결심하면서 우연히 접한 성경 구절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운명을 따른다는 설정은 수많은 의문과 고민으로부터 일말의 해방구 역할을 해주었다.


- 이제부터 진짜 인생 2막 시작이다.


곽 씨는 심호흡과 함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눈을 보며 각오를 다졌다. 공룡 옆자리로 돌아오니 먼발치서 파란색 블루제이스 야구 모자를 눌러쓴 한국 남자가 다가왔다.


- 곽춘원 씨, 되시나요?


- 예. 전데요. 혹시 김 박사님이신가요?


- 예. 키치너에서 일찍 출발했는데 날씨가 저 모양이라서 길이 좀 막혔습니다.


김 박사라는 사람은 고개를 돌려 알리바이처럼 눈이 내리고 있는 공항 밖을 가리켰다.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김 박사란 사람은 갸름한 얼굴에 조글조글 주름이 많았다. 전형적인 도시형 인상은 아니었기에 곽 씨는 박사라는 그의 호칭이 학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선입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한국에선 난리가 난다는 짙은 감색 캐나다구스를 입고 있었지만 외모뿐만 아니라 옷차림 또한 전체적으로 허술했다. 더욱이 서울말을 가장한 부산 사투리가 에이전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이 많은 것도 에이전트와 비슷했지만 차이가 있다면 그녀에 비해 김 박사는 말이 많이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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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보자. 짐이 이게 다인가요?


김 박사라는 사람은 다소 의아하다는 듯한 말투와 표정을 지었다.


- 야반도주를 해도 이보다는 많이 들고 갈 텐데.


실없는 농담인지 뼈 있는 일침인지 모를 혼잣말을 하던 김 박사에게서 가방, 그러니까 이삿짐이 이렇게 적은 집은 처음 봤다는 그의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사실이 그랬다. 달랑 이민용 가방 두 개 들고 네 식구가 살아보겠다고 일만 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거리의 예까지 왔다. 행색만으로는 누가 봐도 야반도주까지는 아니어도 단출한 여행 이상도 아니었다.


주차장에는 김 박사가 몰고 온 미니밴이 있었다. 김 박사가 미니밴의 맨 뒷좌석을 젖혀서 짐 실을 공간을 확보하는 동안, 곽 씨는 트렁크 앞에 카트를 끌어다 놓고 가방을 내렸다. 트렁크 공간을 정리하던 김 박사가 알록달록한 피브이씨 조각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 썰매 하나 남는데 드릴까요?


슈퍼 히어로의 그림이 박혀 있다 뿐이지 한국의 장판 조각 만도 못 해 보이는 판데기를 썰매라고 내미는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주겠다니 선뜻 받기도 그렇고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다.


- 하하. 나중에요.


짐을 모두 옮겨 싣고 곽 씨는 조수석에 올라앉았다. 뒷좌석에는 아내가 가운데 앉아서 양쪽으로 아이들을 보듬는 자세로 있었다. 김 박사도 운전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 캐나다에서는 뒷좌석에서도 모두 안전벨트를 매야 합니다. 한국에선 안 그랬죠?


아내는 아이들에게 안전벨트를 일일이 매어준 후에 자신도 착용했다.


- 자, 그럼 출발합니다.


엔진 시동을 켜니 띵동~ 기계음이 들렸다.


- 아, 잠깐 지피에스 좀 켤게요.


김 박사는 핸드폰을 열어 주소를 확인하고 내비게이션 단말기에 알파벳을 입력한다. 곽 씨네 가족이 살게 될 집의 주소였다.


- 내비게이션이 한국말로 나오네요?


- 한국말 서비스가 되는 제품이 있어요. 한국에선 내비게이션이라고 그러죠? 여기선 지피에스라고 합니다. 캐내디언 타이어나 월마트에 가면 다 있어요. 가격도 비싸지 않아요. 백 불짜리도 있으니까요.


곽 씨 가족이 처음 접한 한국과 캐나다의 차이는 김 박사가 미술관에 걸려 있는 두 개의 그림을 비교하듯 설명한 그런 것들이었다. 자동차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거나 내비게이션을 지피에스라고 한다는 따위의.


고속도로는 수많은 차들이 거북이걸음으로 늘어서 있었다. 김 박사는 토론토 또한 서울과 같은 광역도시로써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도시 중에 하나라는 말로 알리바이 하나를 더 보탰다. 토론토로부터 우리가 새 삶을 시작할 키치너란 동네까지는 약 백이십 킬로미터라고 했다. 아마 서울에서 천안 정도의 거리가 아닐까 짐작했다. 공항을 벗어나 401 고속도로에 접어들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어두워 있었다. 겨울철이라 날도 일찍 저물거니와 궂은 날씨에 어둠은 더욱 일찍 땅 위로 내려앉았다. <다음 편에 계속>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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