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톱날 #1.5

캐나다 해외 이주 노동자의 하루

by 가나다 이군


어는 비 Freezing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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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던 김 박사가 물었다. ‘캐나다에서 가장 위험한 게 뭔지 아세요?’ 김 박사는 애초부터 질문이 아니었던 모양인 듯 곽 씨 가족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총도 아니고 마약도 아니에요. 그건 바로 프리징 레인입니다. 영상도 영하도 아닌 날씨에 비처럼 내려서는 바로 얼어버려요. 지금 보세요. 이게 비처럼 내리면서 도로 위에서 바로 얼어버립니다.’


김 박사의 말처럼 눈은 어느새 비와 같이 바뀌어서 내리고 있었고,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치는 도로는 유리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실제로 가는 도중에 고속도로변으로 곤두박질친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 박사의 알리바이가 하나 더 추가되는 상황이었다.


- 저것 보세요. 캐나다에서는 이놈만 조심하면 그래도 괜찮은 나라예요.


어차피 이민을 생각했으면 왜 뉴질랜드나 호주와 같은 남반부의 따뜻한 나라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다 말고 곽 씨는 피식 웃었다. 왜 그런 생각을 이제야 하는 걸까. 곽 씨는 김 박사의 세 번째 알리바이에 깜박 넘어간 자신을 생각하며 서서히 긴장했던 맘이 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김 박사는 운전 내내 워셔액을 뿌리며 와이퍼를 켜댔다. 한국에선 정신 사납다고 와이퍼 켜기를 자제하던 곽 씨에게는 심히 거슬리는 일이었다.


- 여기서는 워셔액 없으면 운전 못 해요.


곽 씨의 마음이 들킨 걸까. 뜬금없이 김 박사가 말을 던졌다. 추운 나라라고는 하지만 캐나다에도 사계절이 있고, 특히 위도상으로 캐나다 최남단에 속하는 남부 온타리오 지역은 생각보다 날씨가 험하지는 않지만 궂은 날씨가 많아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워셔액이 필요하다고 했다. ‘캐나다 사람들은 날씨에 매우 민감해요. 티브이를 보면 날씨 얘기는 빠지지 않아요.’ 여름은 놀아야 하니까 날씨에 관심 있고, 겨울엔 워낙 추워서 일상이 곤란해지기 때문에 날씨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영하 사십삼 도에서 견디는 워셔액을 할인 기간에 다섯 통을 사놓았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이때 갑자기 뒷좌석에서 헛구역질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다급하게 곽 씨를 찾았다.


- 여보, 찬주가….


찬주는 어려서부터 차를 타면 멀미가 심했다. 잠깐을 이동해도 많이 어지러워했고 구역질이 심했기에 본인도 그리고 지켜보는 가족도 항상 불안해했다. 그래서 차에는 언제나 비닐봉지가 상비되어 있었다. 공항에서 목적지까지 장거리 이동 수단이 자동차라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매사에 준비가 철저한 아내조차도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 아, 저기, 우리 아들놈이 차멀미를 좀 심하게 하는 편이라서, 혹시 가다가 토할지도 모르겠어요.


- 그래요. 그럼 이걸 어쩐다.


김 박사의 대답은 건성이었다. 그는 당황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오히려 어두운 도로를 주시하며 운전에 집중하는 눈치였다. 곽 씨 생각에도 마땅한 대안은 없어 보였다. 눈과 얼음으로 빙판이 된 고속도로에서 갓길에 차를 세운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듯했다.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참는 대로 참아보라 하고 가는 데까지 가는 수밖에.


- 가방에 면세점 봉투 있잖아. 일단 그거라도 비워놔요.


가다가 사태가 터지면 그때 가서 방도를 찾더라도 지금은 참아야 한다고 단도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 박사는 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오히려 화제를 돌렸다.


- 컬리지 다니실 계획이신 거죠?


대책 없는 응급상황보다는 본격적인 호구조사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우리나라 사람들 어딜 가도 남의 집 대소사 얘기에 귀가 쫑긋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으랴 만은.


- 예. 대부분 유학 후 이민, 그걸로 오지 않나요?


- 하하 그렇죠. 자녀 무상 교육이라는 메리트가 이게 무시 못 하죠. 전공은 뭐 하시려구요?


- 우드워킹이요.


- 아, 우드워킹이요? 그것 참 좋은 건데. 저도 기회가 된다면 그거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한국에선 그쪽 관련된 일을 하셨었나요?


- 아니, 전혀요.


- 우드워킹이라. 남자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지요. 여기 사람들 가라지 열어보면 작업실이 많아요. 목공 같은 건 그냥 취미이고, 집 앞에 차 세워놓고 직접 자동차 고치는 집도 많아요.


김 박사는 꺼내는 얘기마다 항상 캐나다에서는, 여기 사람들은 어쩌구 하면서 끝을 맺었다. 사실 끝을 맺었다기보다는 다른 주제로 갈아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었다는 듯 김 박사는 본격적인 캐나다 관련 큐레이션을 시작했다.


캐나다 선택은 잘하신 거예요. 잘 오셨어요. 그런데 캐나다가 왜 좋은 나라인지 아세요? 미국과는 달라요. 제가 미국에서도 꽤 살았는데.’로 시작하여 한동안 이어진 그의 기나긴 얘기를 요약하자면 캐나다란 나라는 미국에 비하면,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평등을 추구하고 차별을 혐오하는 국민성을 지닌 나라라는 것이었다. 자기는 교육에 관심이 많은데 캐나다의 이런 앞선 문화는 모두 교육의 힘이고, 캐나다 교육도 저절로 이뤄진 건 아니고 지속적으로 개선을 거듭하며 이뤄낸 성과다. 조기유학으로 애들 데리고 오시는 분들도 많지만, 한국의 교육이 싫어서 오시는 분들 많다. 그런 분들은 정말 좋은 선택을 한 거다.


눈발인지 빗발인지 모를 것들이 내리자마자 도로를 얼려버리는 바람에 두 손으로는 핸들을 꼭 잡고, 시선은 정면에 고정한 채, 이국 생활에 얽힌 그만의 경험담을 쏟아냈다. 그것은 단순히 경험담이라기보다는 마치 마법 램프의 봉인이 해제되기라도 한 듯 그의 사유 속에 갇혀 있던 어떤 심령이 풀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 그나저나 영어 이름이 필요할 텐데, 준비한 이름은 있으세요?


오랜 강의 끝에 주제의 변화가 필요했던 시점이었는지 아니면 곽 씨의 경청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는지 김 박사는 질문을 던졌다.


- 애들은 한국에서 유치원 다닐 때 하나씩 지어 준 게 있어요.


- 영어 유치원 같은 데 보내셨나 봐요?


- 아니에요.


사교육에 열풍 속에서도 끝까지 영어유치원의 유혹을 뿌리치고 졸업시켰다는데 자긍심을 지니고 있던 아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 성당 유치원인데, 엄마들이 워낙 영어, 영어 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 공부를 했어요.


- 하하 그렇군요. 그럼, 엄마 아빠는 없으시고요?


- 저도 영어 이름이 필요할 거라는 그런 얘기 많이 들었는데, 그게 꼭 필요할까요?


- 굳이 필요 없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제 생각에는 있는 게 좋다고 봐요. 이름이란 게 뭐예요. 집안의 장식물처럼 내가 예뻐서 보관하자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 이름이란 것이 사회적 교류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란 얘긴데, 얘네들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입장에서 얘네들 발음하기도 어렵고 기억하지도 못하는 그런 이름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이지요.


- 그래도 한국 사람으로서 내 것을 두고….


- 어이쿠, 여기 애국자 한 분 더 계시네요. 한국인의 자긍심이요? 민족정신이요?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랍디까. 여기서 그런 게 밥 먹여 주나요? 살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캐나다에서 한국은 베트남보다 못한 소수민족일 뿐이에요.


사실 곽 씨에겐 마음속으로 염두에 둔 영어 이름이 있었다. 축구를 워낙 좋아하는 곽 씨는 영국의 축구선수 이름에서 스티븐이란 자신의 이름을 따왔다. 사실은 아들의 이름이 된 라이언을 자신이 갖고 스티븐은 아들에게 주고 싶었으나 라이언보다 스티븐이란 이름이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 아내의 완강한 만류 때문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나마 스티븐 제라드와 라이언 긱스의 이름만이라도 갖게 된 걸 다행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입에 붙지 않아 쑥스럽기도 했고,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알릴 필요는 없겠다 싶어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김 박사의 얘기가 늘어지는 게 싫어 일부러 얘기를 꺼내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다행히 찬주는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아내 옆구리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가운데 좌석에 앉은 아내는 양쪽 날개로 아이들을 보듬은 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토론토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고속도로는 차츰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뒷자리도 조용하고, 사오십 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세 시간에 가깝도록 운전하느라 피곤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운전 내내 수다에 지쳤는지 김 박사 또한 별말이 없이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에 집중했다. 잠시 후, 곽 씨 일행의 미니밴 차량은 차선을 오른쪽으로 변경하더니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는 갈림길로 접어들었다.


- 자, 이제 여러분의 제2의 고향이 될 키치너로 들어갑니다.


오랜 침묵 끝에 김 박사가 던진 말이었다. 김 박사의 침묵에 동참하며 골똘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있던 곽 씨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뒷좌석을 살폈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는지 김 박사의 말에 아내도 주섬주섬 자세를 고쳐 잡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내는 어둠 속에 펼쳐진 풍경을 한 칸이라도 더 살펴보려는 듯 창 너머 어둠 속을 지긋이 응시했다. 아내는 어쩌면 빨간 머리 앤이 매튜 아저씨와 함께 마차를 타고 그린 게이블의 집으로 향하던 장면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곽 씨도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차창에 얼굴을 깊이 맞대고 바라본 어둠 속에선 이따금 스테이플스나 월마트, 타겟 등속의 커다란 전광판이 띄엄띄엄 보일 뿐, 도시는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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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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