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톱날 #2.1

캐나다 해외 이주 노동자의 하루

by 가나다 이군


로드 킬 Road Kill


남부 온타리오 지역을 북서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물줄기는 코네스토고 호수에서 발원한 지류와 만나 한바탕 큰 강을 이루어 키치너 워털루 지역으로 흘러 들어온다. 도시의 풍족한 식수원이자 여가를 안겨 주는 그랜드 리버는 캠브리지와 파리, 브래트 포드를 거쳐 이백 킬로미터를 더 달리고 나서야 이리호 Lake Erie 북쪽 해안에 몸을 맡긴다. 계곡이나 험준한 산세 없이 평원을 달리는 강가에는 갯버들과 버드나무 등속의 큰 키 나무들이 오랜 세월을 줄지어 함께하고 있었기에 이 지역에 터 잡고 살았던 모호크 Mohaw 족은 버드나무 강 Willow River이라 불렀었다지만, 외지인이 들어오면서 프랑스인 중심으로 그랑 리버 Grande-Riviere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부 온타리오 지역을 동서로 구분하는 가장 큰 강이었기 때문인데, 후에 영국인이 유입되고 그들이 지역의 주도권을 쥐면서 영국의 지명을 딴 새로운 이름으로 바꿔 불렀지만, 강 이름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프랑스 이름의 영어 발음인 그랜드 리버로 불리고 있다.


그랜드 리버를 끼고 영국 사람들의 도시 워털루와 캠브릿지, 그리고 독일 사람들의 도시 키치너 – 원래는 베를린이었던 것을 세계 제 일 차 대전 때 도시 이름을 바꿨다 – 이렇게 세 개의 도시가 경계선을 맞대고 모여있다. 키치너는 십구 세기 중반 무렵 매사츄세스로부터 코네스토가라는 마차를 타고 이곳으로 와서 정착한 메노나이트와 독일계 출신 사람들로 초기 마을이 형성되었다. 키치너 시내의 퀸 스트리트에는 이 도시 최초의 건물인 이백 년 된 슈나이더의 집이 박물관으로 남아있고, 그들이 모여 북미지역 최초의 시장을 이루었던 세인트 제이콥은 지금도 관광명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 중소도시들이 모여 메노나이트로 대표되는 전통과 기술집약적인 미래산업이 공존하는 산업지역이자 교육도시를 이루었으며, 캐나다에서 열 번째, 온타리오에서 네 번째 큰 지역공동체로 발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키치너와 워털루를 쌍둥이 도시 twin cities, 캠브릿지까지 넣어서 삼중 도시 the Tri-Cities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들의 젖줄인 그랜드 리버가 있다.


캠브릿지로부터 그랜드 리버를 거슬러 오르며 풍광 좋게 달리는 42번 국도는 블레어 로드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강을 저만치 뒤로 흘려보내고는 숲길로 들어선다. 아직 날이 새지 않아서 그렇지 블레어 로드는 꽤나 흥미로운 경치를 지녔다. 지금까지 강줄기를 따라 길게 선 가로수와 넓게 트인 시야가 인상적이었다면, 키치너 끝자락까지 이어지는 파운테인 스트리트를 만나는 지점까지는 계속 키 크고 수명이 오래된 숲길을 달리게 된다.


캠브리지에서 키치너로 출근하는 남식은 이른 새벽부터 블레어 로드를 따라 길을 나섰다. 워털루 코네스토가 몰 매장으로 출근할 때만 해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편이 수월했지만, 지난주, 그러니까 새해 첫째 주부터 출근하고 있는 키치너 C 스토어는 오히려 국도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 분위기도 서둘러 익힐 겸 새로운 출근길을 개척해 볼 겸 평소보다 이십 분 정도 일찍 집을 나섰고, 남식은 그렇게 블레어 로드로 길을 잡았다.


이른 새벽이지만 제법 지나는 차량이 많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무엇보다도 남식을 놀라게 한 것은 캐나다 사람들의 일과였다. 일찍이 한국 사람만큼 부지런한 민족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캐나다 대부분의 회사나 공장, 학교 등은 여덟 시 이전에 시작한다. 한국에서 그토록 원했던 ‘저녁이 있는 삶’은 위정자의 정책이나 선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아침의 시간을 바친 대가였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허망하단 생각도 들었다.


물론 사회적으로 저마다 개인의 업무 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에, 그래서 타의에 의해서 자신의 저녁이 날아가지는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캐나다 사람들은 저녁 있는 삶을 위해 동트기 전 새벽부터 일찌감치 일하러 나선다. 남식 또한 일곱 시까지 매장에 도착해야 한다. 동지가 지난 지 얼마 안 되는 정월 초순의 일곱 시면 별과 달이 비추는 깊은 밤과 다름없는 어둠 속에서의 출근이다.


남식이 새로운 매장으로 출근한 지난 일주일은 재료 및 식자재의 위치, 작업의 동선 등 낯선 업무 환경을 익히는 기간이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함께 일하는 동료와의 호흡이었다. 남식은 오늘은 핼리 양과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녀는 어제도 매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채로 퇴근했을 것이다. 왜, 중국애들은 뒷정리를 하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이번만큼은 슈퍼바이저에게 얘기해서라도 주의를 줘야겠다고 다짐한다.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핸들을 잡고 있던 남식의 오른손이 오디오 박스의 버튼으로 향했다. 한동안 영어 공부를 한다며 라디오를 켜놓고 운전했었다. 물론 처음엔 광고와 본 방송도 구분하기 힘든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래도 이젠 광고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근래 들어 남식은 어지간해서는 라디오를 켜지 않는다. 그는 운전할 땐 조용한 게 좋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 또한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일 것이다.


들릴까 말까 작은 볼륨으로 귓바퀴만 간지르던 라디오에서 러버보이 Loverboy의 워킹 포 더 위크엔드 Working for the weekend가 흘러나온다. 대표적인 팔십 년대 캐나다의 록 밴드의 곡이다. 주말을 위해 일주일을 열심히 일하자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도 캐나다에 와서 알았다. 남식은 볼륨을 높인다. 물론 제목 때문이겠지만 보통 목요일 오후쯤이면 종종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곡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월요일 새벽부터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드문 일이긴 해도 나쁠 건 없다. ‘그래, 인생이 별건가. 주말을 향해 달리는 거지.’ 남식은 어려서 주워들은 대로 정확하지 않은 가사를 음악에 맞춰 흥얼거렸다.


한껏 고조된 기분으로 가로등 조차 없는 어두운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던 남식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자동차 전조등 불빛에 알사탕 만한 동그란 야광 불빛 두 개가 번뜩였기 때문이다. 덜컹. 자동차 바퀴가 무엇인가를 밟고 올라섰다 내려왔다. 순간, 차는 그 자리에서 멈추지 못하고 육칠 미터 가까이 지나서 겨우 멈추었다. 로드킬이었다.


- 아이, 재수 없게. 한 겨울에 무슨!


그다지 묵직하지는 않았지만 뭔가를 바퀴가 타고 올랐던 울림이 있었다. 토끼나 너구리라고 하기엔 많이 모자란 묵직함이었다. 다람쥘까? 내려서 확인해야 할까? 그냥 가도 되지 않나?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기엔 출근 시간이 빠듯해 보였다. 남식은 백미러로 뒤따르는 차가 있는지 확인한 후 그대로 다시 액셀을 밟았다. 사이드 미러로 도로 위를 확인했지만 지나 온 자리는 어둠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분명히 과속은 아니었어.


캐나다에서 로드킬은 흔한 일이었다. 그래도 설치류가 동면하는 겨울엔 거의 보지 못했는데 역시 올 겨울은 따뜻했기 때문일까 일월 엄동설한에 로드킬이 일어났다. 남식은 가끔 겨울잠에 들지 않은 다람쥐나 청설모, 그리고 그 사체를 탐내는 까마귀까지 도로 위에서 목숨을 걸고 거닐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로드킬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캐나다의 도로는 새로 포장한 지 일 년 만 지나도 엉망이 되곤 한다. 겨울철 제설용으로 뿌려대는 염화칼슘 때문이라고 하는데, 남식이 생각해도 엄청 뿌려대기는 한다.


동물의 눈빛 같은 걸 보긴 했지만 충돌 없이 부실한 도로를 타고 넘었을 수도 있다. 설령 로드킬이 일어났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여름이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목격하는 것이 로드킬 현장이다. 처음엔 신기하기도 해서 어떤 동물이 죽었는지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하지만 해체된 너구리, 다람쥐, 토끼 등의 사체는 보기에도 안 좋고 때로는 역겹기도 해서 남식은 웬만하면 시선을 피하는 편이다.


재미있는 건 스컹크의 경우다. 지난여름이었다. 십 년이 넘은 도요타 중고차를 운전하다 보면, 동네 시장 기름집에서 나는 콩기름 냄새 같기도 한데 매콤하고 칼칼한 냄새가 강하게 섞여있는, 분명한 건 고소함이 빠진 이상한 냄새가 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자동차에 이상이 있는지 정비소에 가서 확인하지 않는다고 못마땅해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와 대화 중에 예의 그 냄새 얘기가 나왔다.


- 여보, 이거 차가 고장 나서 나는 냄새가 아니래.


- 그럼 뭔데?


- 스컹크 냄새래.


- 뭐? 스컹크?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 아냐. 내가 봤어. 지난번에 윤정 씨하고 커뮤니티 센터 갔다가 오는 데, 그 냄새가 나더라구. 그래서 내가 그랬지. 우리 차도 이런 냄새나던데. 윤정 씨도 차 바꿀 때가 되었나 보네요. 그랬더니 윤정 씨가 그러는 거야. 무슨 소리냐고. 그거 차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스컹크 냄새라고.


- ……


- 그랬는데 정말 그 앞에 스컹크가 길에 죽어 있더라니까.


- 당신이 봤어? 스컹크를?


- 응, 내가 봤다니까.


- 아니, 내 말은 당신이 스컹크를 알아볼 수 있냐고? 그것도 형체도 없이 죽어있는 걸.


- 아니, 그건 아니지만, 꼬리 보면 다르잖아. 그런 게 로드킬 되어서 있었다니까. 그리고 똑같았어. 그 냄새랑.


남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봤다. 아내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 진짜라니까.


- 그 말을 믿는 당신도 참….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며칠 동안 진동했던 냄새는 항상 같은 장소에서만 나곤 했다. 그러니까 퇴근길에 킹 스트리트에서 85번 하이웨이로 진입하는 인터체인지 그 자리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다른 진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내의 말대로 정말 스컹크가 맞다면 그것은 정말 강력한 무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다 보니 그 이후로 냄새가 나면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고, 그러면 여지없이 죽어있는 동물의 사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로 고속도로에서 운전 중이었기에 어떤 종류의 동물인지 확인할 겨를은 없었지만, 형체를 분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이 상해 있었다. 이쯤 되니 남식도 완전히 수긍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빈말은 아니라는 데까지는 인정하게 되었다. 스컹크와 냄새와의 관계는 적확하게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식에게도 그럴 수 있다는 개연성이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이상한 것은 어떤 패턴을 발견하려 하고 애쓰다가 보면, 어떻게든 일련의 패턴이 보이게 되고, 그렇게 발견된 패턴은 스스로 사고의 중심에 자리 잡아 버린다. 결국 찾으려던 패턴이 일반화되어 결론이 되어 버린다. 여기까지면 그나마 괜찮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반화된 패턴 이외의 것은 가짜가 되고, 거짓이 된다. 결국에 진실은 고집이 되고 만다.


‘흔한 일인데 뭐.’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보지만 아침부터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애써 상기하지 않으려 라디오 볼륨을 키우고 창문도 살짝 열었다. 작음 틈 사이로 날카로운 칼바람이 가차 없이 볼따구니를 베어 낸다. 그놈이 무엇이었건 왜 엄동설한에 엄한 곳에서 있다가 변을 당하는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캐나다라는 낯선 땅, 엄한 곳에 있기는 자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 남식은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28번 도로인 파운테인 스트리트로 접어들었다. 두 번의 회전 교차로 Roundabout를 돌아 401 고속도로 건너면 바로 호머 왓슨 대로로 들어서게 된다. 그 오른편으로 C 컬리지가 있다. 남식은 ELS를 포함해서 3년 가까이 이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남식에게 그리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다. 시작부터 리스크였고, 과정 또한 롤러코스터였으며 결과 역시 암울했다. ‘어쨌든 선택은 내가 했지만, 그 이의 말을 듣는 건 아니었어.’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남식은 되새김처럼 읊조리는 말이다. 그딴 생각, 하지 않으려고 해도 컬리지 얘기만 나오면 파브로프의 개 마냥 여지없이 뱉어지는 말이고 상념이다.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면, 굳이 한 가지 꼽으라면 새로운 환경에서의 인맥이 시작된 곳이기는 했다. 남식은 ELS 오리엔테이션에서 곽 씨와 성창 형님을 처음 만났다. 곽 씨는 남식 보다 네 살이 많았고, 성창 형님은 곽 씨 보다 네 살이 많았다. 곽 씨는 자신보다 3일 먼저 캐나다에 들어왔고, 성창 형님은 바로 전날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어학 과정 이후, 본과 학기 중에는 어쩌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치지 않는 한 세 사람이 모두 만날 일은 많지 않았다. 남식은 본관 건물에서 수업을 했지만 성창 형님은 캠브릿지 캠퍼스에서, 곽 씨가 다니는 우드워킹 학과는 캠퍼스 가장 끝자리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삼십 분이나 일찍 매장에 도착했다. 걸리는 시간은 고속도로와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워낙 일찍 집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여유가 조금 생긴 김에 남식은 주차장 한쪽의 후미진 카트 보관대 옆에 기대어 서서 담배 한 대 꺼내어 물었다. 평소에 그는 일과 중에는 담배를 물지 않았다. 지금 들어가면 담배 필 시간도 없을뿐더러 음식을 만지는 손에 담배 냄새를 묻히고 싶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남식의 담배량은 줄었다. 이렇게 가다가 담배를 끊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양이 줄었다고 해서 담배가 쉽게 끊어지지는 않았다.


오늘은 옌이 나오는 날이다. 힘든 하루가 예상되는 이유다. 남식은 담배를 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미명조차 없는 먹먹한 흐린 날씨다. 여느 때 같았으면 아직 하늘엔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을 시각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날이 흐린 것이 영락없이 한바탕 눈이 올 기세다. [다음 편에 계속]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