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나다 이군 Jan 06. 2021

아빠와 자전거 도둑

어쩐 일일까. 여느 때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다. 평소 햇살이 타고 넘던 창가에는 채 가시지 않은 어둠이 꼼지락거리고 있다. 좀 더 자야지, 발끝에 흩어진 이불을 끌어당기는데 거실로부터 작은 대화 소리가 구슬 구르듯 흘러왔다. 


"오늘은 눈이 온다는데 가지 말죠?"


"아직 내리는 건 아니니 지원이 모르게 하려면 나가야지. 조심해서 다녀오리다."


"언제까지 모르게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제 날도 추워지는데……." 


걱정 어린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현관문 여닫는 소리와 함께 아빠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첫눈이 온다는 말보다 지원이 모르게 라는 아빠의 말씀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내가 모르는 게 뭘까? 생각 중에 다시 잠이 들었고, 오히려 평소보다 늦잠을 자고 말았다. 덕분에 엄마의 잔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책가방을 챙길 즈음에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며 아빠께서 돌아오셨다. 책가방을 손에 든 나와 눈이 마주친 아빠는 머쓱해하시며 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아빠가 회사에 나가지 않은 지는 삼 개월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지만, 나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기 전에 뒷산 약수터에 가셔서 등교한 후에 돌아오신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오늘은 아마도 첫눈 치고는 많은 눈이 내리는 바람에 산에 오르지 못하고 돌아오신 모양이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전 아빠의 약봉지를 발견했을 때였다. 엄마는 그냥 감기약이라고 얼버무리셨지만, 우연히 식탁 위에 놓인 아빠의 카톡 대화 내용을 보고 알았다. 그 약은 아빠의 위장약이고 아빠는 취직이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뭐,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낌새 정도는 차릴 수 있었다. 말하자면 끼니때마다 먹던 과일 후식도 최근 들어 줄었고, 자주 가던 마트도 통 가질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무엇이든 두어 번 조르면 마지못한 척 사주시던 아빠는 지난달에 벼르고 벼르던 자전거를 사주신 것 말고는 항상 '나중에'라고만 하셨다. 


“지원이, 아빠하고 오랜만에 산책이나 하러 갈까?”


그날 저녁 아빠는 내게 산책하러 가자고 하셨다. 첫눈이 내린 아파트 주변을 걸으며 아빠는 회사가 어려워 그만두게 되었다는 얘기와 그동안 일자리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하셨던 얘기를 작심하신 듯해주셨다. 물론 나는 처음 듣는 얘기처럼 천진스럽게 들어 드렸다. 그동안 아침에 산에 다니시던 이유도,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도 내가 친구들에게 기죽을까 봐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아빠는 나를 아직 어린아이로만 여기시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건 나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시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무슨 일인지 아빠는 경비실에 앉아 계셨다. 


"아빠?” 


"아. 지원이구나. 학교 끝났니?”


“예. 그런데 여기서 뭐 하세요?"


“그게 말이다. 글쎄, 누가 자전거를 훔쳐갔구나. 그래서 아빠가 CCTV로 확인하는 중이란다."


지난달 새로 산 자전거를 잃어버렸다는 얘기다. 누군가가 보관대에 매어 둔 자전거의 자물쇠를 뜯고 훔쳐간 것이다. 오래전부터 약속했던 자전거였고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시면서도 그 약속만큼은 지켜주셨다. 어른도 탈 수 있어서 조금 크긴 했지만, 바퀴도 작고 색깔도 예뻐서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무척 맘에 들었던 자전거였다. 물론 그것이 아빠의 퇴직금이었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


'그게 어떤 자전거인데.'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슬퍼하면 아빠가 많이 힘드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다. 나는 그런 내가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이 길로 등하교하는 근처의 중고등학생이 범인일 거야.”


라며 아빠는 어려서 작은 도둑질에 성공하면 나중에는 큰 것을 훔칠 것이라며 꼭 잡아서 가르쳐야 한다고 다짐하듯 말씀하셨다. 


아빠는 하루 종일이라도 CCTV를 지켜보실 기세였다. 하지만 일주일 넘게 자전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몰랐고, 더욱이 범인이 찍혔다 해도 얼굴만으로는 누군지 알 수 없으니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아빠는 두 시간 만에 CCTV로 범인을 찾는 일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로 한동안 잃어버린 자전거는 나의 머릿속에서 꼼짝 않고 자리 잡고 앉아있더니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그러던 며칠 후,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줄넘기하는 내 눈앞에 잃어버린 자전거가 나타났다. 인근의 중학교 교복을 입은 어떤 오빠가 내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지나갔다. 처음엔 내 자전거가 맞나 싶었지만, 분명히 동생이 자전거 꽁무니에 붙여놓은 빨간색 자동차 스티커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승원아, 저거 우리 자전거 맞지?”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며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얼굴마저 화끈거렸다. 발도 떨어지지 않은 채 도저히 다른 곳을 쳐다볼 수도 없어서 자전거가 사라진 방향만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외출하셨던 아빠가 오셨다. 


"지원아! 뭐 하고 있니?" 


"아빠. 우리 자전거……. 봤어요. 중학생 오빠가 저리로 타고 지나갔어요."


"정말? 그것 보라고. 근처에 사는 중고등학생일 줄 알았다니까."


아빠는 당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에 으쓱해지신 듯,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급하게 시선을 돌리셨다.


"지나간 지 얼마나 됐는데?"


아빠는 지금이라도 쫓아가려고 하셨던 걸까? 그런데 아빠의 물음에 대답 대신 그만 ‘왕’하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시더니 내 어깨를 토닥여 주시며 집으로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새 자전거를 사주시겠다고 하시지만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쉽게 새로 자전거를 살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것쯤은. 


그런데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잃어버렸던 자전거가 현관 앞에 보란 듯이 놓여 있었다. 


"아빠께서 네가 본 교복이 △△중학교 교복이란 걸 아시고는 그 학교에 가서 찾아오셨다." 


미소를 띤 엄마의 설명이었다. 저녁에는 일 보러 나가셨던 아빠가 돌아오셔서 자전거를 되찾아 온 무용담을 풀어놓으셨다. 


“그러니까 말이야, 무작정 학교엘 갔는데 떡 하니 교문 옆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지 않겠어? 아무리 멀리서 봐도 딱 눈에 들어오더라고.”


어떻게 잃어버린 자전거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니, 나는 신기해서 침까지 삼켜가며 아빠의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수위 아저씨 말씀은 며칠 전부터 자전거가 보이긴 했지만, 학생의 얼굴만 알지 누군지는 모르신다는 거야.”


아빠의 말씀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힘주어 말하는 아빠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며 여쭈었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 학교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해서 아빠가 대인배의 용기를 보여줬지.” 


범인을 잡는 것보다는 아이의 장래가 중요하다며 아빠는 수위실에 메모만 남겨 놓으셨다고 했다. 


<자전거를 훔쳐 간 학생을 찾아서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지만 잃어버린 물건을 찾았으니 자전거만 가지고 가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이번 만은 모른척할 테니 다시는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기를 바라네. 혹시 학생이 훔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샀다면 아래 연락처로 연락을 주도록. 010-XXXX-XXXX>  


물론 학생으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전거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빠가 찾아주고 싶었던 것은 잃어버린 자전거보다 상처 받았던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오랜만에 활기에 찬 모습이 말해주듯이 아빠도 자신감을 되찾아서 다시 일어서고 싶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는 현관에 걸터앉아 등산화 끈을 묶고 계셨다. 


"오늘은 늦으셨네요. 아빠."


"그래 늦잠을 좀 잤구나. 어서 학교 갈 준비 해야지?”


아빠는 일어서서 현관문을 여시다가 얼굴에 그득한 미소를 품고 나를 돌아보셨다.


“지원아. 아빠도 곧 취직할 테니, 우리 열심히 생활하자. 파이팅!"


나도 주먹을 쥐고 위에서 아래로 힘주어 내리며 대답했다.


"아빠도 파이팅! 그리고 참, 눈길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주름 깊은 눈웃음을 지으며 현관문을 나서는 아빠의 등은 여느 때처럼 크고 넓어 보였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내 짝 흥식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