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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 이군 Feb 16. 2021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를 꺼내들며

아침에 눈을 뜨니 몇몇 페친의 포스팅이 눈에 띈다. 얼른 기사를 찾았지만 

듣보잡 연예인이 세상을 떠도 소식을 퍼 나르던 인터넷 어디에서도 

부고 기사를 찾을 수가 없다.


내가 그분을 처음 뵌 건 87년 대선 때였고 

주로 노동자, 도시 빈빈의 대표 지역으로 인식되던 

구로동, 가리봉동이나 봉천동, 신림동 지역 유세, 

그리고 대학로를 비롯한 대학가 유세에는 대부분 따라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뭔가 기여한 건 없다. 그냥 머릿수 하나 더 늘려드리겠다는 생각일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뵌 건 2012년 10월 들국화 콘서트에서였다. 

공연 중간에 전인권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기 전

(원래 공연 목록에 있었던 것인지 즉흥적인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에 

귀한 손님이 찾아주셨다며 소개한 분이 그분이셨다. 

그때가 벌써 10년 전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많이 늙으셨네,


나는 그분의 책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를 참으로 좋아한다. 

네루가 <세계사 편력>이란 글로 딸에게 얘기하듯, 딸에게 건네는 편지에서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안목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 물정을 익혀가는 젊은이 중에 마음에 쓰이는 친구가 있을 때면

(구하긴 어려웠지만) 종종 이 책을 선물하곤 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지금도 나의 딸에게 주는 

첫 번째 목록으로 이 책을 소장하고 있다. 

<통일이냐 반통일이냐>라는 책과 함께.


황해도 은율, 선생은 나의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고향이 같다. 

아버지 생전에 여쭈어 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알고 지냈거나 

아니면 적어도 오다가다 한 번쯤 부대낀 적은 있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나의 누나는 그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라와 민족, 대의를 위한다지만 가정을 거의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누나의 의견엔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떠벌리는 부류의 사람들에 비하면, 

가족을 두고 그렇게 죽으면 쓰겠냐는 질책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얼치기 관종 만화가 한 분이 

그분의 생애를 욕보이는 짓꺼리를 한다는 기사가 보였다. 

사고의 결이 같고 다름을 떠나서 

평생의 삶을 그렇게 올곧고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온 분께는 

그러면 안된다는 조언과 함께, 

얼치기 관종 만화가란 분께 여쭙고 싶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 

네가 누리는 그 알량한 자유의 기회를 얻는데 일조하신 분이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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