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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 이군 Nov 06. 2023

퇴근길, 나무에게서

떨어지는 해를 마주 보며

서쪽으로 달리는 퇴근길

햇살은 아지는 송곳 같아서

눈조차 뜰 수 없지만

간혹 오래된 마을 어귀에는

제법 큰 나무와 숲이 있어

양산처럼 그것을 가려주기도 한다.

나무의 친절이 고맙기도 하고 이쁘기도 하여

콧노래 절로 흥얼이는데

곧게 뻗은 도로변으로

한순간 바람이 일고 숲과 나무가 출렁인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선 나무들은

물결처럼 파동처럼

누웠다가 일어서고

잠시 버티는 듯싶다가는

이내 몸을 비틀어 다시 휘어지기를 반복한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머리를 한껏 넘긴 채

온몸으로 맞서보지만

그들로서는 버텨볼 뿐

바람을 멈출 수도

거스를 수도 없다.


길 옆의 가로수도

저 너머 숲도

버티기 위해 출렁이고 있다


나무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넉넉한 품을 지녔다고

마치 품이 그리운 어머니처럼

지쳐 돌아가 쉴 수 있는

안식처와 같다고, 그렇게 말해왔다. 하지만


숲은 숲대로

나무도 나무대로

어머니도 지금까지

바람 앞에서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는 걸

근길에 미처

알고 말았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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