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연작)

버스, 그리고 사람

by 가나다 이군

버스 안에서 7

앞자리에 젊은 여성이 앉자 창밖으로 웬 사내가 다가오더니 아쉬움이 절절이 흘러내리는 눈빛으로 손을 흔든다. 십 년 전 이맘때쯤 이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집사람을 나도 그렇게 보냈다. 그땐 몰랐다. 지금의 나를. 설레임과 애틋함으로 충만한 이 밤의 이 커플은 십 년 후, 어떤 모습일까. 그나저나 비록 흔들리는 버스 안이지만 한숨 붙이지 않고 웬 오지랖일까.
2011년 8월 31일 오전 12:21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6

토닥토닥 나를 달래주고 있습니다.

버스 창밖의 아가씨와 눈이 마주쳐도

'네가 아직 봐줄 만하기 때문에 저 여자가 너를 쳐다보는 거야'

뭐 그런 식으로요.

어쨌거나 고단한 하루를 헤치고 이 시간까지 달려온 내게

그 정도 허세는 사치가 아니지 않을까요?

앗! 옆에 앉은 인도 여자가 고개를 팍 돌려버리네요.

역시 사치였나 봅니다. ㅜㅜ
2011년 8월 24일 오전 1:38


버스 안에서 5

육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소녀 같은 미소를 머금은 모습으로 버스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든다. 창밖에는 그 정도 또래의 아저씨가 손을 흔들고 있다. 이들이 마주치는 눈빛에는 오래전 그녀를 버스 태워 보내던 나의 애틋하고 벅찬 감성이 흐르고 있다. 아마도 이 분들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을 것이다. 여하한 이유로 각자의 삶을 꾸려왔을 것이고, 이제와 다시 젊은 마음을 보듬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호라.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버스가 출발하고 버스 안의 아주머니는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하는 예의 할머니가 되어 버린다. 검은색 빵모자와 반짝이는 은색 귀걸이로 한껏 멋을 낸 할머니가 되어 버린다. 아무렴 삶은 살아있는 거다. 열두 살은 열두 살의 삶을 예순둘은 예순둘의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마흔넷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2011년 8월 5일 오전 12:27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1

집으로 가기 위해 이제 막 버스를 탔다.

나야 이제 퇴근이라지만 서서 갈 정도로 사람이 많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차창 밖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우산을 펴기 시작한다.

내일은 병원 예약과 돌잔치도 포기하고 회사에 나와야 한다.

(아하! 오늘이구나)

집에 가면 2시는 훌쩍 넘길 터,

그런데 왠지 차창에 비추인 내가 많이 낯설다.

누구냐, 넌. 혹시 도플갱어?

2011년 6월 25일 오전 1:55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2

아무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린다.

눈을 뜨니 낯선 어둠 속에서나마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감이 온다.

이런 젠장. 졸다가 종점까지 왔다.

정류장을 지나친 건 두어 번 있지만 종점까지 온 건 난생처음이다.

택시비 아끼려다 택시비 나갔다.

이제 자야지 좀 있다 또 회사 가지.

당신은 벌써 잠들어 있겠지? 그래도 계속 잘 자요.

2011년 6월 25일 오전 3:30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3

버스 창에 기대어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란 놈이 거들떠도 안 보고 도망간다.

머리가 하루 종일 지끈거리더니 기어이 절정에 달했다.

열병 난 사람처럼 눈 주위에도 다크서클이 뜬 모양이다.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나날을 보내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설마 창밖의 저 여자가 날 보고 웃는 건 아니겠지?

2011년 6월 27일 오후 8:45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4

차창 밖의 날씨를 보면서 갑자기 드는 생뚱맞은 생각,

지금 이곳이 지리산 잔돌 평전의 홑겹 텐트 속이라면 좋겠다는...

아~ 그러면 정말 좋겠다.

지리산은 고향 같아서 치를 떨다가도 시간이 좀 지나면 엄마처럼 보고 싶다.

걍 또 함 가버릴까?
2011년 7월 7일 오후 11:17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8

덜컹이는 버스 안. 어떤 노래가 흘러도 많이 슬프다. 이젠 돌아올 수없니. 정복아.
2011년 9월 3일 오전 1:26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9

이 야심한 시각에 여자 한 명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남자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허리를 살짝 접었다가 구호 같은 함성을 지르면서 하늘 향해 가슴을 내민다. 양복에 정장을 입은 모습이 아직은 앳돼 보이는 것이 취직 후 자리를 함께 한 동기들이 아닐까. 나 그 시절에 그랬듯이 학교 응원가 같은 자기들만의 공동체 의식을 행하는 듯하여 시름 깊은 마음에 한가닥 미소 짓게 한다. 나도 그대도 태양처럼 젊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엘리제를 위하여 허공 중에 손 팔매질할 때도 있었다. 그래, 그때가 떠올랐던 게다. 치기 어렸던 그때가.
2011년 9월 3일 오전 1:40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10

하루 중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과 공간. 퇴근하는 버스 안이다. 그런데 이 시간의 대부분도 회사일과 집안일에 대한 상념으로 채워지기 일쑤다. 그나마 음악이 있어 가끔은 꿈 많았던 80년대 초 시절로 돌아가곤 하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고딩시절 사람들이 도대체 넌 뭐가 될래?라고 물으면 난 그렇게 대답했다. '아빠요' 그래서 난 꿈을 이룬 사람인데, 그래서 난 행복한데, U2는 나를 위해 in a little while을 불러주고 있다.
2011년 9월 20일 오전 1:27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11

안돼. 지금 자면 또 종점에서 내리게 될 거야. 한강의 야경도 즐기고, 남태령의 공기도 쐬면서 두 눈 부릅뜨고 버텨야 해. 근데 그게 잘 안돼. 눈꺼풀이 팔십이근이야.... 쿨~
2011년 9월 21일 오전 1:29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12

오랜 기다림과 추위 속에 버스에 탔건만 배워먹어 보이는 인사가 홀라당 뒷문으로 올라타더니 내 자리를 코앞에서 가로채 버린다. 이 인간을 어찌하여야 할까? 하다가 슬쩍 욕을 한마디 해줬다. ㅋㅋ 당근 이어폰 끼고 있는 건 확인했다. 아~ 소심한 머피의 하루다.
2011년 10월 25일 오후 10:11 모바일에서


버스 안에서 13

주위를 둘러본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과 시간 안에서 함께 오늘을 채워가고 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이빨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커플, 무슨 일인지 정신없이 뛰어가는 저 남자. 벌써 술에 취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버스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한순간 한순간 미래다. 오호라 이미 미래를 살고 있구나. - 오늘의 상념은 여기까지.
2011년 11월 17일 오후 8:44 모바일에서



<덧다는 글>

페북일기는 주로 퇴근길 버스 안에서 작성되었다. 그리하여 작성 시간을 보면 그날의 퇴근 시간을 알 수 있고, 출근 시간이 8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균적인 근무시간 또한 유추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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