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삼성잡기

삼성잡기(雜記), 들어가는 글

Prologue : 삼성잡기(雜記)를 쓰는 이유

by 가나다 이군

이 글의 플롯과 내용의 대부분은 수년 전 삼성에 있으면서 정리되었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사람 사는 곳으로써의 삼성을 얘기해보고자 했는데, 그때는 뭔가 대단한 소재를 손에 쥐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삼성을 나와서 보니 이는 비단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또다시 한국을 벗어나 바라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또한 한국 만의 문제도 아닌 듯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이 글이 잡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삼성에서 벗어나자마자 도서관 한쪽 구석에 처박혀서 왜 삼성의 사람들에 대해 천착했는지 우선 그 이유부터 밝혀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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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알려진 삼성맨과 달리 알려지지 않은 삼성맨의 생활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고 싶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른 면의 삼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리하여 삼성맨이 된다는 것과 삼성맨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시작한다.


에피소드 하나. 회사를 그만 둔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이다. 볼일이 생겨 지하철을 탔는데 본의 아니게 앞에 서 있는 청춘 남녀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친구가 삼성에 입사했는데 바로 그만두었다며, 이유는 조직이 크다 보니 허드렛 일이나 시덥지 않은 일이나 하게 되는데, 그냥 부품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단다. 그래서 그만두었는데, 대기업은 그런 면에서 안 좋은 것 같다는 얘기였다. 나는 젊은 친구의 생각이 트였다고 생각하며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13년 동안 다니던 그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네!'


◈ 둘, 삼성의 성공 비결에 대해 정말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결과에만 관심이 있는 걸까?


삼성의 성공 비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과 결단력, 미래를 내다보는 힘 즉 통찰력, 그리고 조직의 룰과 원칙, 신상필벌, 혹은 관리 구조/시스템 등등. 인정한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정말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결과에만 관심이 있는 걸까? 나는 그러한 기재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이 얘길 하고 싶은 건데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고 얘기한다. 과연 관심이 없는 걸까? 혹시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는 건 아닐까? 삼성 사람들은 회사 밖에서도 회사 흉보지 않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글은 그래서 삼성맨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진솔한 공유를 목적으로 한다. 조직과 리더십에 묻혀 자신과 노동에 소외되고, 이미지만 존재하는 사람들과 이들을 통제/관리하는 방식 즉 리더십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거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비껴가는 삼성맨,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 소외되고 어떻게 버려지는지. 정말 관심이 없는 걸까?


◈ 셋, 진정으로 삼성의 롱런을 바라기 때문이다(Building the Bridge)


삼성에 무한 충성심과 애정을 지닌 분들이 보기에 어쩌면 이 글은 꽤나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삼성과 같은 대기업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이 바라는 바를 나도 바라고 입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바는 삼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떻게 일을 하고 또 어떤 희열을 느끼면서 반면에 어떻게 황폐해 가는가에 대한 지극히 미시적이고 사적이며 소소한 얘기들이다.


컨텐츠를 구상하면서 이 글이 삼성 또는 대기업에 입사하기를 바라는 젊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무작정 환상을 바라기보다는 적어도 원하는 그곳이 어떤 곳이고 어떠한 실제적 환경을 지니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진실로 삼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나는 삼성이 롱런하는 기업이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삼성은 조금 더 정상적이고 솔직할 필요가 있다. 삼성의 업적과 성과를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건희 회장의 경영을 폄하하거나 매도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삼성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로써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은 삼성인 개개인의 현실을 살펴봄으로써 오해가 있다면 해소해야 할 것이며, 정말 구성원의 영혼을 판 노력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드러나야 할 것이다. 이건희의 카리스마와 의지 인정,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를 던진 것에 불과하지만 그걸 삼성이라는 조직적 특성과 임직원들의 노예 같은 열성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삼성은 막무가내식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아니라 또 단계 도약을 위한 창조적인 기업문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나는 이건희 회장 이후의 포스트 삼성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건희 회장 이후 삼성은 경착륙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면에서 한 달에 20권 이상의 책을 정독하시는 이건희 회장님과 이재용 부회장께서 이 글을 꼭 보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 그리고, 회장님 귀는 당나귀 귀


따라서 나는 이 글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의 정체성, 재벌 문제, 승계 및 상속, 그리고 탈세 등속의 정치, 사회, 경제적 범주의 내용을 세세히 다루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삼성의 위법, 탈법적 행태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나 자료를 지니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할 만한 내용도 갖고 있지 않다. 더욱이 그건 감히 내가 범접하거나 보탤 만한 수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전문적인 분석도 아니고 경영학 이론도 아니다.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폭로의 목적과는 거리가 있으며, 다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해하는 삼성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주려는데 있다. 또한 여기에 기술한 예시들은 계열사별(삼성에서는 '계열사'라 하지 않고 '관계사'라 부른다.) 또는 특정 시기나 CEO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삼성은 우스개 소리로 '전자(前者)'와 후자(後者)'로 나뉜다고 한다. 非전자계열의 자조적인 정서가 반영된 소리이기도 하다. 후자(後者) 즉 非전자 계열이자 그룹 차원에서 계륵과 같은 금융부문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속속들이 그 실체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에 따라 반감이란 측면이 더 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보고들은 풍문을 참지 못하고 대나무 숲에서 떠벌리는 한낱 마당쇠일 뿐이다.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풍문일 뿐, 나는 그 실체를 접한 적도 본 적도 없다.


"회장님 귀는 당나귀 귀란다."


#. 삼성맨의 꿈을 파는 사람들


그러면 그런 기대는 누가 주었을까?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몇 권 보다가 처음엔 어이가 없더니 나중엔 화가 치밀었다. 이걸 사람들이 믿는단 말이야? 삼성은 마치 다른 회사와는 다른 엄청난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어 보인다. 이 정도면 미필적 고의를 떠나서 속이는 수준이다. 예컨대 삼성은 여러 부서가 회의를 통해 효과적으로 결론에 이르기 위하여 미리 회의 목적과 자료를 배포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끝내며, 회의시간에 하고픈 말을 다하고 결정된 건에 대하여는 군말 없이 지킨다는 내용의 책이 있다. 정말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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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회의 문화 개선을 위해 회의실마다 모래시계, 전자 알람시계 및 포스터를 비치하고 전담부서는 회의 실태를 점검하는 등 회사 전체가 들썩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일은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짓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볼 수도 있겠다. 뒤에 서서히 풀리겠지만 삼성은 오히려 여느 회사 보다도 많은 회의와 삽질을 한다. 이는 조롱이나 폄하의 말이 아니다. 삼성 그룹 차원을 떠나서라도 개별 계열사 정도의 규모에서도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사실 삼성 관련 도서는 종종 시중에 출간되지만 삼성을 비판하거나 단점을 건드린 도서는 찾을 수 없다. '삼성을 생각한다' 정도가 예외인데, 도대체 왜 그럴까? 일단 비판적인 내용의 글을 책으로까지 진척시킬 의사가 없다.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시중에 풀리지도 못하고 마케팅도 못하고 소수를 위한 자위 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삼성의 성공신화와 배경, 성공 DNA와 경영 노하우 등 경영/마케팅 관련 내용에 관심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삼성그룹 차원에서 구매하는 행운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와는 반대로 작금에 들어서 경제민주화라 일컬어지는 자본 對 노동의 시각에서 바라본 정치/경제학적 비판서가 가뭄에 콩 나듯 발견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일개 직원으로서 체험한 생생한 삼성의 현실을 얘기하고 싶었다. 안에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통해 누구보다도 삼성 입성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 오늘을 지나는 삼성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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