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 미쳐 살았던 초보식집사의 고백
7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에 식물이 처음 들어온 날은.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이사를 가면서 큼지막한 화분 하나를 남겨주었었다. 높이는 50센티 정도, 호리병처럼 굴곡진 모양에 진한 녹색을 띠고 겉면에는 울퉁불퉁 요철이 있었던 선물용 플라스틱 화분.
화분에는 알록달록 한 잎사귀를 가진 관엽 식물이 심어져 있었는데, 화분 자체는 세련미 하고는 거리가 있었지만 다채로운 잎사귀와 잘 어울렸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얼굴도 가물가물한 이웃의 선물은 우리 집 식물 재배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당시 나는 식물에 관심이 없었기에, 선물 받은 식물이 무엇인지 몰랐었다. 나중에 검색을 통해 그것이 크로톤이라는 이름의 관엽식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크로톤은 잎사귀가 큼지막하며 다채로운 색을 띠는 식물이다. 까다롭지 않고 잘 자라면서도 색감이 예쁜 잎을 보여주기 때문에 키우는 재미가 있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초보자가 성공적인 경험을 하는데 딱 알맞은 식물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 새로운 역사가 움트고 있을 무렵, 큰아이는 유치원생이었고, 작은아이는 3살이었다. 아이 키워 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어린아이를 키울 때는 육체적으로 할 일이 많고, 눈을 떼지 않고 돌봐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들에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 집에 식물이 찾아왔던 시기에 작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생겨난 여유시간으로 인해 식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티브이에서 식물이 나오면 관심 있게 보았고, 카페나 레스토랑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된 식물의 종류를 궁금해하기도 했다.
그즈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출 장소는 화훼농원이었는데,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싱그럽고 아름다운지! 구경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 있었다. 물론 구경만으로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식물도 이것저것 고르고, 흙으로 구워 만든 토분들도 샀다.
예쁜 화분에 심어져 있는 식물들은 값이 비쌌지만, 소품 모종들은 개당 3 ~ 4천 원, 중품 모종은 8천 원 ~ 만 원대의 가격이었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 부담 없이 많이 골랐다. 관엽식물, 꽃 달린 식물, 열매가 달리는 식물 등 종류를 막론하고 예뻐 보이면 집에 데려왔다. 화분과 원예자재 제품들이 매일같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때 들였던 식물들의 종류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스파티필룸, 꽃기린, 페라고늄(제라늄의 일종), 고무나무, 뱅갈고무나무, 아젤리아, 시클라멘, 율마, 애플민트 같은 허브들 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집안 곳곳을 채웠고,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식물의 시든 잎을 정리하고 물을 주고, 분갈이를 했다.
그러기를 두세 달, 드러난 사실이 있었으니 나는 타고난 식집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들여온 식물 가운데 꽃을 피우지 않는 것들은 잘 키우는 듯했지만, 꽃 달린 식물들은 아니었다. 화원에서 싱싱하게 꽃을 달고 있었던 아이들이 집에만 오면 우수수 꽃을 떨궜고, 나중에는 잎사귀까지 떨구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활용해 식물의 특성을 숙지하고, 물주는 텀을 조절했는데도 그랬다.
이때쯤 내가 스스로를 잘 지켜보았다면 전에 없이 과하게 흥분된 상태와 재능 없음을 금방 인식했을 터였다. 그랬다면 많이 들이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으리라.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지켜보기보다 식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꽃을 떨군 식물들을 돌보는 한편, 어리석게도 꽃 달린 식물들을 다시 사들였다. 실패를 거듭하는데도 화분의 개수는 점점 늘어났고, 집은 작은 화훼농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당시에 내 상태가 꽤 심각했는데도 남편은 이제 식물 좀 그만 사라느니, 집이 화원이 되겠다느니 등의 잔소리를 일절 하지 않았고, 나는 스스로 중증임을 자각하기에 필요한 분별력이 없었기에 한 동안 – 거의 1년 동안 – 식물에 미친 사람으로 살았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욕심껏 많은 식물을 들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죽어가는 식물들이 많았다. 왜 그렇게 불필요하게 많은 식물들을 사들였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육아로 인해 허해진 마음을 달래려는 심산이었을까?
다시 무언가에 전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요즘 사람들이 하는 덕질 같은 것을 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순식간에 마음을 뺏겨 주머니와 마음이 탈탈 털리는 위대한 경험.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식물이었다는 것이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1년 간을 열혈 식집사로 살고 났더니, 꺼지지 않을 것처럼 불타오르던 열정도 조금씩 사그라들었고 집 나갔던 정신도 제자리를 찾았다. 정신을 차리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았다.
잃은 것은 돈과 시간. 그리고 초보 식집사로서 어떤 식물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데려온 덕에 죽어갔던 많은 식물들이고, 얻은 것은 나와 궁합이 맞는 식물들은 어떤 것인지, 어떤 식물들이 생명력이 강한 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 정도다. 참으로 소박한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참으로 무지했고 동시에 놀랄 만큼 용감했다.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어쩜 그렇게 대책 없이 일을 벌였담?’ 아주 나중에서야 나는 이 말을 내뱉었다.
여하튼 이후로는 정리의 시간이었다. 너무 많았던 관엽식물은 깨끗하게 손질하여 주변에 나누어 주었고, 죽은 식물들은 정리했다. 많았던 선반들은 베란다나 세탁실 또는 거실에서 사용하기로 했고, 물품들은 중고거래로 처분했다.
식집사로서의 내 자세도 조금 변했는데, 이제는 내가 잘 키우는 종류의 식물만 골라 들인다. 주로 집안 공기를 맑게 해주는 공기정화용 관엽식물들이다. 데려온 아이는 정성껏 가꾸고 개수도 많이 놓지 않는다.
새로운 식물을 키우고 싶을 때는 구입하기보다는 분 갈이 할 때 포기를 나누어 심거나, 솎아내 자른 줄기를 꺾꽂이하여 번식하는 방법을 쓴다. 공간도 대중없이 사용하지 않고 정해진 공간만 할애하여 소소하게 키운다.
내가 차분해지자 식물들도 더 이상 죽지 않는다. 천천히 흐르는 식물의 시간에 맞춰서 생각해 본다. 다육에서 떨어진 작은 잎사귀도 토분에 심어 뿌리가 내리기를 기다린다. 조금은 차분한, 욕심을 덜어낼 줄 아는 식집사가 되어가는 중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식물도 열정만으로 키울 수 없다. 열정만 가지고 덤비다가는 나처럼 실패하기 십상이다. 차분하게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고심해서 한 개를 고르고,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파악한 다음 정성껏 돌보면 된다. 한 개의 식물이라도 온전하게 돌보는 것이 낫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내가 키운 건 초록빛의 식물들이었을까? 나 자신이었을까?
우리 집 식물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식물들이 자라고 나도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