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마를 만났을 때, 처음과 두 번째
율마는 식물을 처음 키워보려는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식물이다.
왜 그럴까?
율마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봄에 돋아나는 연한 초록잎을 닮은 색깔과 숲을 떠올리게 하는 수형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도 남을만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화원에서 율마를 취급한다. 내가 가본 곳 중 율마를 가져다 놓지 않은 화원이 없었다. 처음으로 율마를 보았을 때 화원사장님께 물었었다. "이거 이름이 뭐예요? 키우기 어려워요?" 사장님은 당연하게도 "물만 자주 주면 돼요. 별로 안 어려워~~"라고 말하며 나의 불안을 일축한다. "아 그래요?" 화색을 보이며 초보식집사가 될 예정인 사람이 웃는다. 진열 돼있는 여러 개의 율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값을 치른다.
이윽고 율마와 함께 집에 돌아온 나는 집에서 가장 밝은 곳에 율마를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그리고 오래된 습관인 것처럼 율마를 쓰다듬고, 손바닥의 냄새를 맡는다. 레몬과 소나무를 닮은 그 냄새에 공간마저 상쾌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인터넷에서 율마 키우는 방법을 검색한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고, 기간을 정해 물을 주는 것보다는 흙의 상태를 보고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역시 물을 자주 줘야 하는군.' 화원 사장님의 말을 복기한다. 순 따기라는 것도 알게 된다. 순 따기는 율마 잎사귀의 끝부분을 1센티 정도 똑똑 떼내어 주는 작업이다. 이는 잎사귀의 끝쪽에 있는 생장점을 꺾어 위로 웃자라는 걸 막고 가지가 풍성해지도록 하는 방법이다. '음 순 따기도 해줘야 하는 군.' 하고 생각한다.
물을 줄 때는 저면관수로 주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저면관수란 화분의 아래쪽을 물에 담가서 식물의 뿌리가 물을 직접 흡수하도록 유도하는 물 주기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물 때를 놓치지 않을 수도 있고 뿌리가 강화되는 효과도 있다고. 모르는 사실을 여럿 알게 된 나는 마음이 바빠진다. 화분을 담가둘 만한 용기를 찾아보지만 적당한 것이 없어 그냥 때가 되면 물을 주기로 정한다.
며칠 뒤 드디어 율마 화분에 겉흙이 마르고 화분이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때가 되었군' 하며 하얀색 물조리개에 물을 담는다. '잎사귀에 주는 것보다 흙 위에 부어주는 것이 좋다고 했지.' 화분 밑으로 물이 흘러나올 때까지 흠뻑 부어준다. 물을 주면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더니, 말랐던 흙이 물을 흡수하며 빠작빠작 소리를 내는 것이 들린다. 물은 흙의 겉면을 지나 안쪽으로 부드럽게 스며들고, 뿌리에도 닿는다.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모습이 '잘 먹는구나.' 싶으면서도 귀엽다. 이 후로 몇 주간 나는 살뜰하게 율마를 돌본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나는 바빠서, 때로는 너무 피곤해서, 잊어버려서 율마의 물 때를 놓치곤 한다. 겉 흙이 말라가는데 물을 주지 못하는 날들이 생긴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율마는 가운데서부터 조금씩 누렇게 마른다. 상당히 말라버려 눈에 띌 정도가 될 때쯤 나는 화들짝 놀라 급하게 물을 주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율마다. 율마는 곧 전체가 누렇게 바래버린다. 돌이킬 수 없이 율마는 고사하였다. 기회를 두 번 주지 않는다.
율마가 그렇게 간단하게 생사를 달리할 줄 몰랐던 나는 황당해한다. 이 식물은 단 한 번이라도 뿌리가 마르면 즉시 말라죽는다는 걸 배운다. 율마의 말간 얼굴 뒤에는 까다로운 생육 조건이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화원으로 가 다시 율마를 고르고, 집에서 가장 밝은 곳에 율마를 올려둔다. 이번엔 절대로 죽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물보초를 선다. 겉흙이 마르기 무섭게 물을 준다. 집에 온 지 한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난다. 율마는 이전보다 싱싱하게 보이고 새로운 침엽을 내기도 한다. 나는 안도하며 물 패턴을 유지한다.
다시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나는 율마 가운데 진한 회색으로 보이는 부분을 발견한다. "아악!" 작은 소리로 짧은 비명을 지른다. '뭐야 이번엔 색깔이 다르네?' 지난번엔 누렇게 바싹 마른 것처럼 보이더니 이번엔 회색빛이 감도는 색깔로 변해있었다. 검색을 통해 이번 율마는 과습으로 썩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지난 몇 주간의 일을 복기한다. 기분이 좋지 않다. 잠깐이나마 정을 주었던 생물이 죽었다는 것,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미안하다. 죄책감이 든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라버리거나 썩어버리거나.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까다로운 애네'라고 생각한다. 내 잘못을 율마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갔으면 잘만 자라고 있을 율마가 나에게 왔기에 이런 파국을 맞은 것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창밖을 보니 햇살은 맑고 베란다에서는 새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어떤 생물의 죽음을 접하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날이다. 눈앞의 비극과 아침의 아름다움이 상반되어 혼란스럽다.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낀다.
살아있음이 분명했던 생물이었다. 움직이는 것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때로 움직였을 것이며, 빠작빠작 소리를 내며 물을 먹던, 새잎을 내며 자라나던 조용한 생물.
'왜 또 데려왔을까. 대강대강 키워서 되는 아이가 아니었던 건데, 차분히 물을 주고 순도 따줘야 됐던 아이였던 건데.....' 율마 탓과 내 탓 사이에서 생각이 줄타기를 하며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 다 돼 간다. 계속 상념에 젖어 있다가는 아침밥이 늦을지도 모른다. 나는 쓰디쓴 입맛을 다시며 소리 내어 말한다. "이제 율마 안 키울 거야."
나는 주방으로 가 보리차를 불에 올리고, 압력솥에 밥을 안친다. "칙칙 칙칙" 소리를 내는 압력솥이 오늘따라 기운차다. 프라이 팬에 부칠 계란을 꺼내며 '이따가 애들 학교 보내고, 율마 화분 상태를 다시 봐야겠어. 썩은 부분 도려내고 일단 기다려야지. 아직 썩지 않은 부분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희망 회로를 돌린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 전에, 이제는 율마를 키우지 않겠다고 내뱉었던 것이 무색하게 나는 율마와의 미래를 다시 그린다.
율마 생각을 계속하면서 식탁을 닦고 식탁 매트를 깔고 준비된 반찬을 올려놓는다. 밥을 푸고, 국을 떠다 놓는다. 아이들을 깨운다. 식구들이 나와 밥을 먹는다.
달그락달그락 젓가락과 그릇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우물우물 음식 씹는 소리가 식탁 위를 채우고, 애들 아빠의 실없는 농담에 아이들이 웃는다. 주방 한쪽에선 식물 키우는 실력은 별로인 것 같은데 집요함에는 꽤 내공이 있는 듯한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아침밥을 차리느라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