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전.
놀이동산에서 환한 웃음으로 놀이기구를 즐기던 아이가 응급실에 힘없이 누워있다.
엄지손가락에 맥박을 확인할 수 있는 심전도 측정기계가 연결되어 있고
눈도 뜨지 못한 채 가느다란 팔에 차가운 바늘을 찔러 수액을 연결한다.
고작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병원에 누워있게 될 거라고 그 누구 짐작했을까
한 순간에 덜컹 엄마의 마음은 내려앉는다.
엄마가 된 지 11년째인데 왜 마음은 강인해지지 못하는 건지.
아이가 아프거나 울면 나도 따라 눈시울이 붉어지고 의지와 상관없이 눈치 없는 눈물은 흘러내린다.
엄마가 울면 아이가 더 불안해질 걸 알기에 애써 눈물을 삼키며 별거 아니라는 듯 아이를 다독인다.
“괜찮아, 단풍아 이거 맞고 나면 이제 안 아플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야.”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했다.
여행의 즐거움도 잠시 집으로 돌아올 때는 아쉬움과 피곤함이 몰려든다.
샤워를 하고 일찍이 침대로 몸을 던지는 일이 여행의 마지막 일정.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단풍이가 울먹이며 엄마를 찾는다.
“엄마 배가 아파”
평소 변비로 고생하는 아이이기에 화장실에 가서 변을 보게 한다.
변을 보고 나자
“이제 괜찮아졌어”라고 말하는 단풍이.
하지만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아이가 흐느낀다.
“왜 그래 단풍아 어디 아파?”
“아니 안 아파 그런데 눈물이 나와.”
배가 아픈 가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단풍이의 얼굴을 본 순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병원에 가야 함을 직감했다.
현재시간 밤 9시 30분.
단풍이의 두 눈두덩이가 벌에 쏘인 거 마냥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엄마의 침착성과 신속함이 발휘되어야 할 시간이다.
“단풍아 우리 응급실 가야 될 거 같아, 알레르기가 올라온 거 같아.”
응급실에 좋은 기억이 있을 리 없는 단풍이는 응급실이란 말에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울면 토하잖아 울지 마, 안 아프려고 응급실 가는 거야. 주사만 맞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양말만 신고 얼른 다녀오자.”
형, 가을이도 알레르기 반응으로 응급실을 내원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대부분이 피부 발진이었고 알레르기 주사 한 대만으로 멀쩡해지곤 했다.
하지만 단풍이의 경우는 내가 봐도 가을이와 다르다.
내가 겪어보던 알레르기의 반응이 아니었다.
응급실로 향하는 동안 하루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
단풍이에게 취약한 알레르기는 클래스가 5단계인 자작나무, 그리고 아나필락시스가 올 수 있는 6단계 쑥이다.
놀이동산에서 장난감 칼로 나무를 긁으며 놀았던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평소에 먹지 않았던 츄러스를 한 입 먹은 게 문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쑥 가루가 들어가 있는 음식이 있었던 건 아닐까.
오만가지의 의심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확인했어야 했는데
결국은 스스로를 자책하는 데까지로 생각이 이른다.
엄마이기에 책임이 있다는 듯이.
응급실에 도착 후 빠른 속도로 브리핑하듯 상황을 설명하고 의사는 단풍이를 살펴본다.
단풍이는 응급실의 무거운 분위기 때문인지 간신히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더니 이내 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가 아프다며 배를 부여잡는다.
“알레르기 반응 같네요. 호흡곤란이 올 수 있으니 수액 맞으면서 지켜봅시다.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면 장도 제 활동을 못해요. 그래서 배가 아플 수 있어요.”
호흡곤란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옥죄어 오는 듯하다.
눈이 붓고 얼굴이 붓고 발진이 나타나면서, 호흡곤란이 오는 거구나.
경험으로 아나필락시스가 오는 과정을 이렇게 또 하나 배우게 된다.
수액을 맞으며 몸이 괜찮아지는 걸 느끼는지 휴대폰을 보여 달라는 단풍이의 말이 반갑게 들린다.
부은 눈으로 휴대폰이 보이느냐며 불안한 마음을 애써 퉁명스럽게 내비쳐보지만
내 얼굴 못생겨졌다며 재잘 되는 단풍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단풍이가 안정되어 가자 늦은 시간에 집에 혼자 있을 가을이가 떠오른다.
그 순간 엄마 마음을 알았는지 가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엄마 어디야.”
“응급실에서 단풍이 수액 맞고 있어 1~2시간 걸릴 거 같아. 졸리면 자고 무서우면 TV 보고 있어.”
“응 TV 보고 있을게. 엄마 사랑해.”
갑작스러운 사랑고백에 또다시 울컥한다.
그 말이 엄마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가을이는 알고 있었을까.
아이가 아프면 엄마의 세계는 무너진다.
그 세계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
그 와중에 아이의 무심한 한마디는 엄마를 울린다.
그 한마디로 이 세계를 지켜내야겠다는 의지와 기쁨이 차오른다.
엄마가 된다는 건 아이의 세계를 나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일.
단어로만 알고 있던 감정들을 온몸으로 맞닥뜨리게 되면서 나는 엄마가 되어간다.
환희, 기쁨, 절망, 슬픔, 감동, 답답함, 불안, 행복, 즐거움 등.
혼자였을 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다. 혼자였을 땐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폐기처분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나의 세계다.
묵인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에 부지런히 돌보고 싸우고 사랑하며 받아들인다.
아이를 낳으면 시간이 그냥 키워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내려놓고 아이를 내 세계로 접목시키는 일.
그 과정이 서툴러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울고 웃는다.
울고 웃는 사이에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며 유대와 결속을 다지며 가족이 되어간다.
이 유대와 결속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에 오늘도 울고 참고 내 탓을 하고 수긍하고 서로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