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슬픔의 봄.

붉은 피의 계절.

by 주다

예고 없던 강한 바람으로 벚꽃눈이 떨어져 내리는 날 새벽.

단풍이가 다급하게 엄마를 부른다.

“엄마 코피 나”

대답할 새도 없이 아이의 코를 휴지로 지혈한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코피가 흘러나온다.

환절기,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임을 아이는 몸으로 알아차린다.

코가 건조해지면서 코도 막히고 코피도 자주 나는 시기.

비염이 큰 병은 아니지만 코피가 자주 흐르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짠한 마음이 일렁인다.

많은 사람들은 분홍 꽃을 보면서 참 행복해하는 계절인데 비염환자에게 봄날은 새빨간 피를 자주 대면하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휴지를 빨갛게 물들이 던 코피가 어느새 멎어들자 보이지 않던 침대 시트와 베갯잇의 피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보다 많이 흘렸구나. 휴.

시간은 새벽 5시.

급한 대로 피 자국만 얼른 닦아내고 아침에 빨아야겠다.

아이의 코를 틀어막아 주고 아이에게 피가 완전히 멎을 때까지 한쪽에 기대어 앉아있으라고 한다.

베갯잇과 침대시트는 젖은 수건으로 박박 닦아본다.

가만히 않아서 내가 하는 일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아이가 묻는다.

“엄마 나 때문에 엄마 잠 못 자는 거야?”



순간 새벽의 감성 때문이었을까, 내가 미처 알아주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그 말에 울컥, 뭔지 모를 뜨거움이 솟구친다.

그리고 단풍이의 귀한 마음이 내 마음에 다가와 넘실댄다.

놀랐을 아이에게 별 말 못 해주고 시트를 닦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눈물을 애써 꿀꺽. 목구멍으로 넘겨 삼켜본다.

애써 밝은 얼굴로 단풍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준다.

“아니야 괜찮아, 코에 약 발라 줄 테니까 피곤할 텐데 얼른 자자.”

“응 엄마”

엄마의 표정 하나에 단풍이의 표정은 밝아진다.

그리고 어느새 잠이 든다.

그런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아직도 나의 피곤함과 처리해야 할 일들 앞에서 아이보다 내가 먼저구나.

내가 먼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봐주고 다정하게 안아줬어야 했는데 세심하지 못했구나.

이렇게 아이에게 또 하나 배워간다.




다음날. 단풍이는 코피와 언제 그런 사투가 있었냐는 듯 학교로 씩씩하게 향했다.

그리고 침대시트를 빨며 스스로를 반성하던 내게 문자 한 통이 전해져 왔다.


“안녕하세요 단풍이 어머니, 오늘 2교시부터 단풍이가 코피를 흘렸습니다.

양은 많지는 않았지만 점심시간까지 오른쪽 코를 솜으로 막고 있었기에 연락드립니다.

그리고 내일 급식에 웨지감자가 나옵니다.

이 음식도 감자튀김처럼 먹지 않는 것이 좋을지 답 글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코피가 또 났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엄마의 죄책감모드는 또 발생한다.

코피하나 알레르기 하나가 모두 엄마의 책임인 마냥 안타깝고 마음이 시큰 거린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 답장의 문자를 전송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요즘 환절기라 코가 예민해져서 코피가 자주 나더라고요.

건조하지 않게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그리고 웨지감자는 먹지 않도록 해주세요, 단풍이 에게도 제가 말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점심시간이 되도록 코에 솜을 넣고 있었을 아이를 상상해 본다.

불편함과 답답함을 싫어하는 아이가 수긍하며 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을 시간을.

알레르기로 인해 다른 아이들이 먹고 있을 때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 참아야만 하는 아이의 세상을.


나라면 어땠을까. 어떤 마음이 들까.

겪어보지 않아 아이의 마음을 다 헤아려 줄 순 없다.

그저 짐작만으로 그 세계를 헤아려 볼 뿐.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단풍이의 표정과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여 주는 엄마가 되는 것.

조금 더 영민하고 세심하게 아이를 돌보며 살피는 것뿐.


하교 길에 아이를 기다린다.

아이는 어김없이 단번에 나를 알아보고 해맑은 웃음으로 뛰어와 안긴다.

그 웃음과 따스함이 나를 위로한다. 이것이면 됐다는 듯.

그 안정감이 아이에게도 편안함과 위로가 되었길 바라본다.